[뉴스핌=김선엽 기자]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가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의 사업적 의중을 학습하는 자리로 변모하고 있다.
지난해 하반기부터 이재용 부회장이 스스로 미래 먹거리 발굴을 위해 뛰어다니면서 사장단 회의 주제도 이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종전에는 인문학적 소양이나 경영자의 덕목 등이 주를 이뤘으나 최근 들어서는 구체적 경영 현안이나 특정 과학기술로 주제가 예각화됐다. 강사 비중에서도 이공계 교수 비중이 늘어나고 있다.
특히 올해 주제인 개방형 사업모델, 생명과학 등은 최근 이 부회장의 적극적인 기업 인수합병(M&A) 행보와 맞닿아 있다. 삼성그룹의 미래를 고민하는 이 부회장의 고민이 사장단 회의의 주제에 고스란히 묻어난다는 평가다.
실제로 지난 18일 올해 열 번째 수요 사장단회의는 송기원 연세대 생화학과 교수를 초청, '생명과학과 인간의 미래'에 관해 청강하는 시간을 가졌다.
이날 강의가 유독 세간의 관심을 끈 것은 삼성이 그룹의 미래 5대 먹거리로 바이오제약과 의료기기사업을 일찌감치 점찍은 바 있기 때문이다.
계열사 사장들에게 생명과학 흐름과 산업적 특성을 이해하는 자리를 마련해 줬다는 평가다.
송기원 교수는 이 자리에서 '게놈프로젝트'가 진행된 이후, 인류에 찾아온 변화에 대해 설명하고 "인간의 유전정보를 해독하는 비용이 매우 낮아져 24시간이면 인간의 유전자를 다 들여다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삼성그룹 사장단 회의의 주제를 살펴보면 지난해 중반까지만 해도 외교·창의성·인간 등 사회과학 및 인문학적 주제가 곳곳에 배치됐다.
그러나 하반기로 갈수록 혁신과 리더십 등 기업경영에 대한 원포인트 강의가 늘어났고 올해 들어서는 세계경제, 개방형 사업모델, 생명과학 등 기업 현안과 관련된 주제들이 부쩍 증가했다.
지난해 10월 이후 온실가스 감축, 기업 보안, 미래기술 등 과학기술 분야 교수들을 주로 초청한 점이 눈에 띈다. 올해 들어서도 변화의 기술, 개방형 사업모델, 생명과학 등을 주제로 다뤘다.
외부 강사가 아닌 내부 인사를 호출해, 그룹의 나아갈 방향에 대해 사장단이 함께 고민하는 시간을 가진 것도 눈여겨 볼 대목이다. 백재봉 삼성안전환경연구소장, 손영권 삼성전자 전략혁신센터(SSIC) 사장, 전동수 삼성SDS 사장 등 내부 인사가 올해 차례로 강사로 나섰다.
삼성 사장단 회의에는 전통적으로 오너가 참석하지 않는다. 하지만 강사 섭외가 삼성그룹 미래전략실 주도하에 이뤄지는 만큼 업계에서는 이 부회장의 사업적 고민이 이 회의를 통해 그룹 전체로 전달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실제 지난해 7월 삼성은 '사물인터넷, Next 10년을 준비하라'라는 강연을 준비했다. 현재 사물인터넷 사업은 삼성전자 제 1의 미래전략사업으로 결정된 상태다.
그룹 관계자는 “강사 섭외와 강의의 주제는 통상 2~3달 전에 결정된다”며 “특정해서 누군가가 정하는 것은 아니고 공동의 논의를 거친다”고 설명했다.
삼성 사장단 회의는 창업주인 호암 이병철 선대회장 시절부터 시작된 전통으로, 2000년부터 현재의 방식으로 정례화됐다. 하계휴가와 연말·연초를 제외하고 매주 수요일 아침마다 열린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