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선엽 기자] "삼성이 퀄컴을 물먹인 것은 패배주의를 깨는 대한민국 기술 역사의 한 획이다."
"삼성전자가 CDMA 원천 특허를 먼저 출원하지 못했던 한을 풀었다."
"지난해 여름까지만 해도 핀펫 때문에 고생한다고 들었는데 대단하다"
이달 초 서울 모처에서 열린 한 전자공학 관련 학회 회식 자리에서 삼성전자 시스템반도체 사업부의 최근 성과가 참석자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당시 모임에 참석했던 업계 전문가들은 하나같이 삼성전자가 장족의 발전을 했다며 혀를 내둘렀다는 전언이다.
전문가들의 이 같은 반응은 삼성전자가 시스템반도체(시스템LSI) 분야에서 '항상 한 발 늦는다'는 평가를 뒤로 하고 지난달 세계 최초로 14나노(㎚) 모바일 공정에 성공했기 때문이다.
업계 최초로 14나노 공정이 적용된 삼성전자‘엑시노스 7 옥타’ 시리즈<사진=삼성전자 제공> |
특히 모바일 AP 분야에서 퀄컴의 아성을 깨뜨린 것은 기념비적인 사건이란 평가다.
삼성전자는 90년대 중반 이후 코드분할다중접속(CDMA) 기술에 대한 특허로 핸드폰 1대당 판매가의 5% 가량을 특허료로 지불해 왔다.
스마트폰 시대로 넘어오면서 퀄컴 측에 지불하는 금액은 오히려 더 커졌다.
퀄컴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 1대를 팔 때마다 LTE칩 로열티로 판매가의 약 2.5%를 받아온 것으로 알려졌다.
동시에 스마트폰 AP를 삼성전자에 공급하면서 막대한 이익을 챙겨 왔다. 업계는 한 해 스마트폰 매출액이 100조원을 넘어서는 삼성전자가 매년 5조원 이상의 금액을 퀄컴에 지급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하지만 올해 들어 삼성전자가 반격에 나섰다. 퀄컴의 스냅드래곤810 AP가 발열 문제로 진통을 겪는 사이 삼성은 14나노 모바일 AP 양산에 성공, 다음 달 출시되는 갤럭시S6에 장착한다고 밝혔다.
시장조사업체 스트래티지애널리틱스(SA)에 따르면 지난해 전 세계 모바일 AP 시장에서 퀄컴이 52.9%의 점유율로 독주하고 있다. 삼성전자는 4.2%로 4위에 그쳤다.
그 동안은 삼성전자가 스마트폰을 많이 팔수록 퀄컴의 점유율이 올라갔다. 하지만 삼성전자가 모바일 AP 시장에서 독자 노선을 걸음에 따라 향후 비메모리 반도체 시장에서 삼성의 입지가 크게 올라갈 전망이다.
스티브 몰렌코프 퀄컴 최고경영자(CEO)는 올 초 열린 지난해 4분기 실적 발표 컨퍼런스 콜에서 "스냅드래곤 810이 대형 고객사의 플래그십 스마트폰에 탑재되지 않을 것으로 예상하며 이는 회사의 전체 AP 출하량에 영향을 미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업계 최고가 아니면 아무리 자사 제품이라도 외면하는 삼성전자가 비장한 각오로 내놓는 갤럭시S6에 스냅드래곤 대신 엑시노스를 선택했다는 것은, 성능 측면에서 삼성의 AP가 퀄컴을 객관적으로 압도한 결과로 해석된다.
실제 삼성전자가 업계 최초로 14나노 핀펫 공정을 적용해 내놓은 엑시노스 7420은 사용전력, 속도, 발열, 생산성 등에서 단연 발굴이란 평가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20나노 공정에서 14나노 공정으로 전환되면 같은 면적의 반도체 웨이퍼에서 더 높은 효율의 제품을, 훨씬 더 많이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여기에 더해 삼성전자는 갤럭시S6 시리즈의 통신모뎀으로 엑시노스 모뎀333을 장착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이렇게 되면 삼성전자의 '脫 퀄컴' 기세는 더욱 거세질 전망이다.
다만, 삼성전자가 내놓고 있는 스마트폰 모델이 국가마다 워낙 다양해 특허권료의 변동 규모는 쉽게 가늠이 어렵다.
삼성전자 관계자는 "퀄컴과의 로얄티 계약 문제는 복잡하게 얽혀 있어 향후 로열티 지불액이 얼마나 달라질 것인가에 대해 추산하기 어렵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