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징= 뉴스핌 홍우리 특파원] 중국의 위상이 눈에 띄게 달라졌다. 막대한 투자와 수출로 미국과 함께 G2로 부상하더니 이제는 아예 미국 주도의 경제질서를 바꾸겠다고 나섰다. 자국의 내부적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해결책을 국내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국경을 마주한 인접국가, 나아가 전세계 주요 경제국들을 포괄하는 국제 범위에서 제시하며 글로벌 리더로의 부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육상을 관통하는 실크로드 경제벨트와 해상 거점을 잇는 21세기 해상 실크로드를 의미하는 일대일로(一帶一路)’는 아시아와 유럽, 아프리카 대륙을 포함해 그 주변 해상을 아우르는 전 지구적 프로젝트다. 여기에 포함되는 나라만 전 세계에 걸쳐 60개국이며 약 44억 명의 인구가 영향권에 포함된다. 일대일로는 향후 수년간 중국과 전 세계에 엄청난 경제효과를 가져다줄 전망이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도 '중국 기회'와 관련, 최근 열린 보아오 포럼에서 향후 5년 동안 중국의 수입상품액과 대외투자가 각각 10조 달러 이상, 5000억 달러에 달하고, 중국인 해외관광객수도 5억 명에 이를 것이라고 밝혔다.
일대일로 추진을 위해 중국은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을 적극적으로 주도하며 미국의 우방국인 영국∙이탈리아를 시작으로 우리나라를 포함, 50개 국의 참여를 이끌어냈다. 일대일로의 ‘든든한’ 자금원이 될 AIIB는 자본금 1000억 달러를 목표로 하고 있으며, 중국은 이와 별개로 400억 달러 규모의 실크로드 기금을 조성했다.
<사진=홍우리 베이징 특파원> |
박 교수는 일대일로 등장 배경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먼저 중국의 개혁 개방에 주목해야 하고, 그 다음으로 일대일로 개념이 최초 등장했을 당시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이 어떻게 달라졌는지에 대한 이해가 필요하다고 말한다.
박 교수에 따르면, 개혁개방 초기 중국 정부는 ‘선부론(先富論)’ 원칙에 따라 외국으로부터 기술∙자본 등의 도입이 유리한 연해 지역을 먼저 개발했고, 2000년부터 서부대개발 계획이 시작되었다. 지역 격차를 좁히고 서부 내륙지역을 개발하기 위해 막대한 자금이 투입되었으나 그 성과는 당초 예상에 못 미쳤고 결국 ‘서부대개발이 실패한 것 아니냐’는 비관론까지 등장했다.
이후 2008년 베이징올림픽이 개최되고 2009년 홍콩을 포함한 중국 국내총생산(GDP)이 일본을 능가하면서 세계 제2대 경제체로 부상, 일본과 미국 등으로부터의 압력이 커졌다. 이러한 때 글로벌 금융위기가 발발하고 위기에 대처하는 과정에서 거액의 외환보유고 처리 문제가 대두됐고, 더불어 생산과잉 문제, 연해지역의 지속가능한 발전 문제까지 겹치면서 서부지역 개발이 다시 주목을 받게 된 것.
그러나 서부지역 개발의 최대 걸림돌은 외국으로 향하는 ‘통로’가 없다는 점이었다. 서부지역에서 생산된 물건들이 연해지역 항구를 통해 수출되니 운송비 부담이 커졌고, 연해지역의 압력도 커질 수 밖에 없었다. 따라서 서부지역에 ‘문’을 내자는 제안이 중앙아시아 개발 지원으로 연결되었고, 많은 외화를 특정 나라에 대출해주거나 국채를 매입하는데 쓰는 것이 아니라 인프라 건설에 투자하는 것이 낫겠다는 구상까지 더해지면서 일대일로가 등장했다는 설명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일대일로 구상이 처음 선보인 것은 2013년 9월 당시, 일대일로에 대한 각국의 반응은 ‘미온적’이었다. 일부 국가가 참여를 원하기도 했지만 관망하거나 심지어 반대 뜻을 보인 나라도 적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날 일대일로와 AIIB에 대한 각국의 열정이 이토록 뜨거운 것은 지난 2년여 동안 중국 국내외적으로 많은 변화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박 교수는 지적한다.
그는 “첫째, 중국의 능력이 달라졌다. 2014년 11월 중앙외사공작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처음으로 ‘대국외교(大國外交)’라는 말을 사용했다. 과거의 대국외교라 함은 ‘대국과의 외교’를 가리켰지만, 지금은 ‘대국신문에 맞는 외교’를 해야 한다는 뜻”이라며 “중국을 ‘강대국’이라고 하는 것은 중국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이와 함께 과거에는 중국이 ‘화평굴기’를 이야기 했다면 지금은 ‘행동’으로 이를 증명할 때라고 박 교수는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어느 나라도 ‘화평굴기’를 하지 못하고, 결국 전쟁으로 귀결되었다”며 “중국은 100년이 걸리더라도 화평굴기를 행동으로 증명할 각오”라고 강조했다.
평화를 수호한다는 수동적 입장을 취하는 게 아니라 능동적으로 타국과 함께 평화를 창조해 나가며 ‘신형 국제관계’, ‘공동번영’을 실현하고, 그 구체적 노력인 일대일로를 통해 중국이 ‘특별한’ 영향력을 발휘할 것이라는 뜻이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일대일로의 ‘일대’가 중국 서부 내륙지방의 발전을 강조한 것이라면 ‘일로’는 새로운 해상질서를 만들겠다는 의지를 담은 것으로서, 중국과 국경을 마주한 20개 나라가 중심이 되겠지만 한국을 포함한 역외 국가와의 협력도 빼놓을 수 없다.
박 교수는 “중국과 한국 사이에는 각각 3-4개 도시가 중점적으로 교류하고 있고, 중국과 북한 사이에는 약 16개의 통로가 있다. 중국과 몽골의 국경 접경선 총장은 4200km에 달하지만 통로는 12개에 불과하다”며 “2만3000km에 달하는 중국 변경선을 주변국과 다 연결하기 위해서는 거대한 인프라 투자가 필요하고, 따라서 주변국과의 협력이 중요하다”고 강조했다.
박 교수에 따르면, 일찍이 시진핑 주석은 방한 당시 박근혜 대통령에게 중국의 일대일로와 한국의 유라시아 이니셔티브를 연결하자는 제안을 했다고 한다. 국가적 차원의 개방에 앞서 도시와 도시간 연결을 시작점으로 하며, 중국에서는 웨이하이(威海)와 옌타이(煙臺)가 중점 도시로 선정되었고 2차 중점 도시로는 옌볜(延邊)이 확정되었다는 설명이다.
중국과의 협력에 교두보 역할을 할 한국 지역에 대해서 박 교수는 “한국이 최종적으로 어느 곳을 중점 교류지역으로 확정할지 지켜봐야겠으나 지금으로서는 전북 새만금 지역의 잠재력이 크다고 생각되며, 옌볜의 물류가 훈춘(琿春)을 통해 한국으로 가는 노선을 생각한다면 포항도 괜찮을 것으로 생각한다”며 “그러나 근본적으로는 남북간 통로를 여는 것이 중요하며, 정경분리를 통해서라도 이 문제를 적극적으로 해결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일대일로 추진 중 한국과 한국 기업은 어디에서 기회를 찾을 수 있을까? 이 질문에 대해 박 교수는 한국은 물류∙항만 개발에 우위를 가지고 있고, 철도분야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다고 말한다.
그는 “몽골을 예로 들면, 몽골 화물이 밖으로 나가는 데 현지는 중국 톈진(天津)항을 쓰고 있지만 톈진항은 이미 포화상태라 다른 항구를 제공해달라는 요청이 나온지 오래다”며 “몽골 철도가 동북철도와 연결되면 다롄(大連)항이나 나선항까지 이어질 수 있는데, 자금과 기술력이 부족한 몽골은 분명 철도부설을 외국에 맡길 것이고, 이때 중국과 한국이 구간을 나누어 몽골 철도 부설권을 수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박 교수는 또 “얼마 전 북한 해운상이 몽골을 방문, 나선을 통한 몽골의 광산물 수출협력에 합의했다. 한국이 이를 잘 활용하려면 결국 남북화해를 통해 물류선을 트는 것이 중요하다”며 “러시아∙중앙아시와도 마찬가지”라고 덧붙였다.
통신은 우리나라의 우위 산업 중 하나. 이에 대해 박 교수는 “인프라 건설에는 통신이 반드시 따라가기 마련”이라며 “몽골만 하더라도 땅이 너무 커서 전선을 연결할 수가 없어 전기가 부족하다. 태양에너지 같은 기술이 빠질 수 없으며 휴대폰 같은 통신분야에서도 기회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서부지역의 유망 투자지역으로는 신장(新疆)이 꼽혔다. 박 교수는 “모험을 해야겠지만 신장지역의 투자가치가 높다고 본다. 이 지역에서 테러가 자주 발생하는 근본 원인 중 하나가 낙후한 경제에 있다”며 “중국 정부가 이 지역을 집중 개발할 예정인 만큼 기회도 많겠지만 단, 소수 민족이 많이 있는 등 신장 특징에 대한 이해가 뒷받침 되어야 과거 SK와 같은 실패를 피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홍우리 기자 (hongwoor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