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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종=뉴스핌 곽도흔 기자] # 이건희 삼성 회장과 제임스 호튼 미국 코닝 명예회장은 40여년간 합작사업을 진행하며 별다른 잡음 없이 돈독한 우정을 나누고 있는 것으로 유명하다.
코닝은 삼성코닝정밀소재에 49.9%의 지분을 투자했다. 그러나 코닝은 미국 본사가 아닌 헝가리 자회사를 통해 지분을 투자했다. 세금 때문이다. 한미 조세조약은 배당에 대한 원천징수세율을 10%로 정했으나 한-헝가리 조세조약은 이보다 낮은 5%다.
# 삼성토탈에 50%의 지분을 투자한 프랑스 토탈도 코닝과 같은 정책을 취했다. 토탈은 프랑스가 아닌 영국 지주회사를 통했다는 게 다를 뿐이다. 한-프랑스 조세협약은 세율이 15%인 반면 한-영국 조약은 5%에 불과하다.
토탈은 2011년 794억원, 2012년 906억원을 배당받았다. 토탈은 주소변경으로 배당소득세를 119억1000만원에서 39억7000만원으로, 135억9000만원에서 45억3000만원으로 2년새 총 170억원이나 줄였다.
우리나라에 투자한 외국 기업 입장에서는 조금이라도 세금을 덜 내기 위해 다양한 아이디어를 동원할 수 있다. 하지만 반대로 우리나라 입장에서는 징수할 조세수입이 줄줄 새는 것과 같다. 이에 정부 차원의 대책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고 있다.
◆ 벨기에 국적이면 세율 15%, 영국·스위스 통하면 5%
국책연구소인 한국조세재정연구원에 따르면 국외 투자자가 국내에 들어올 때 세금을 최소화하는 경로는 총 18개에 이른다. 이중에서 사우디아라비아와 일본을 경유하는 경로를 빼면 15개가 모두 스위스나 영국을 경유하는 길이다.
우리나라에 투자하려는 외국 기업은 중국, 일본, 사우디아라비아, 스위스, 영국에 주소를 두는 게 이익이다. 배당소득에 대한 세율이 가장 낮은 5%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벨기에에 거주하는 투자자는 배당소득에 대한 세율이 15%지만 스위스나 영국을 거쳐 투자하면 세금부담을 줄일 수 있다. 영국은 배당소득 비과세 국가이고 스위스는 벨기에 등 일부 국가의 거주자에 대해 선별적으로 비과세하는 혜택을 주고 있다.
외국투자자들의 한국 배당소득세 회피경로. <표=송유미 미술기자> |
하지만 국세청도 이같은 주소변경을 통한 세금 회피에 손을 놓고 있지 않다. 국세청은 코닝사의 배당소득이 미국 본사에 귀속된다며 문제를 제기했다. 그 결과 2006년 9월부터 2009년 5월까지의 원천징수분 532억원을 추징하는 데 성공했다.
오비맥주에 투자한 벨기에 맥주회사 AB인베브는 다국적 투자자로 구성돼 토탈이나 코닝보다 복잡하다.
벨기에 맥주회사인 AB인베브는 2009년 7월 오비맥주를 매각하기 전에 2007년 938억원, 2008년 1075억원을 배당했다.
AB인베브는 싱가포르, 네덜란드, 벨기에 회사가 각각 지분을 투자해 만든 회사다. 그렇지만 장부상으로는 네덜란드와 싱가포르 회사가 지분을 대부분 갖고있다. 네덜란드와 싱가포르는 배당소득세로 10%가 원천징수되고 벨기에는 15%가 원천징수되기 때문이다.
배당소득 외에도 국내 주식과 부동산에 투자해 발생한 양도차익에 대한 과세도 조세회피 수단으로 이용된다. 주식을 한국거래소를 통해 장내거래하면 양도소득세를 내지 않아도 된다.
◆ 혜택제한조항 주목적심사조항 등 도입해야
한국조세재정연구원은 조세조약 남용에 대응하기 위해 우리 정부가 주요 경유국과의 조세조약을 개정해야한다고 보고있다. 혜택제한 조항이나 주목적 심사 조항을 도입하는 방안을 검토할 필요가 있다는 것.
혜택제한 조항이란 조세제약의 혜택을 받을 수 있는 조건을 열거하고 이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는 경우에 대해 혜택을 받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주목적 심사 조항은 거래행위의 주목적이 조세조약 혜택을 얻는 것이라고 여겨지는 경우 혜택을 인정하지 않는 것을 말한다.
홍성훈 한국조세재정연구원 부연구위원은 "올해까지 OECD가 조세회피에 공동으로 대응하는 다자간 조약을 체결하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며 "우리 정부도 일본, 싱가포르, 홍콩 등 투자유치 경쟁국과 보조를 맞춰야 하고 우리만 (조세조약 개정 등)해서는 힘든 상황"이라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곽도흔 기자 (sogoo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