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곽도흔 기자]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정부의 간섭과 개입을 최소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자유시장주의(하이에크주의) 신봉자로 알려져 있다. 지난해 부총리로 취임 직후 추가경정예산(추경)이 아닌 46조+α의 재정보강을 선택한 것은 이런 철학의 연장선으로 볼 수 있다. 이달 초만해도 최 부총리는 추경에 부정적이었다.
그랬던 최경환 부총리가 추경을 추진하는 쪽으로 돌아섰다. 이에 관가에서는 내년 총선을 위해 신념을 버린 것 아니냐는 수군거림이 나온다.
최경환 부총리는 지난 22일 국회에서 열린 경제분야 대정부질문에서 "추경을 포함한 경기보강 방안을 고민하고 있다"고 밝혔다.
정부와 새누리당은 오는 25일 당정협의를 열어 추경 규모 등이 포함된 경기보강 방안을 확정 발표할 예정이다. 야당도 추경의 필요성을 인정하고 있어 당정협의를 거치면 추경이 일사천리로 진행될 전망이다.
지난 22일 서울 여의도 국회에서 열린 제334회 국회(임시회) 제4차 본회의에서 최경환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물을 마시고 있다. <사진=뉴시스제공> |
지난해 4월 세월호 참사 이후 전국민적인 애도 분위기로 인해 내수가 깊은 부진의 늪에 빠졌다. 최 부총리는 이런 상황에서 구원투수로 투입됐지만 추경 카드를 쓰지 않았다.
기재부 관계자에 따르면 기재부 내부에서도 추경의 필요성을 최 부총리에게 건의했다. 하지만 최 부총리는 추경 대신 46조+α의 재정보강을 택했다. 국채 발행으로 조달한 재정을 쏟아붓기 보다는 기금운용계획 변경이나 정책금융 확대 등 우회적인 방법을 사용한 것.
최 부총리의 이 같은 선택은 하이에크주의자로서의 면모를 보여준 것이라는 해석이 뒤따랐다. 하이에크를 비롯한 자유시장주의 경제학자들은 추경 같은 정부의 재정지출 확대는 재정건전성 등 문제만 악화시킬 뿐이라며 반대한다. 대신 정부의 간섭을 최소화하고 모든 것을 시장의 자율에 맡겨야 문제가 해결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최 부총리가 뒤이어 내놓은 규제철폐 , 구조개혁 카드 역시 하이에크주의자들이 선호하는 정책들이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첫 확진환자가 지난달 20일에 나타난 뒤 또다시 내수 부진이 나타나고 있다. 중국인을 비롯한 해외 관광객이 급감하고, 기업 학교 단체 공공기관들이 잇따라 각종 행사를 취소했다. 지난해와 판박이다. 이에 국내 주요 경제연구소나 해외 투자은행들을 중심으로 추경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다른 것은 최 부총리의 추경을 대하는 자세다. 이달초만 해도 최 부총리는 "추경 검토를 하지 않고 있다"는 입장을 견지했다. 메르스 대책에서는 추경 대신 예비비 동원으로도 감내가 가능하다고 밝히기도 했다.
그러다 10일 경제관계장관회의 즈음부터 "필요한 경우 경기보완방안을 마련하겠다"며 추경 가능성을 열어두기 시작했다.
최 부총리가 소신을 버리면서까지 추경을 꺼낸 것은 그만큼 경제상황이 급박했다는 해석이 가능하다.
하지만 재정보강이나 추경이나 즉각적인 효과가 나타나지 않고, 특히 추경은 자금집행까지 시간이 걸린다는 약점도 있다. 최 부총리는 지난해 7월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결산심사에서 추경 대신 재정보강을 선택한 이유로 "지금 (추경을)편성하면 실제 집행하는 것은 내년 예산과 비슷한 시기에 갈 수밖에 없다"고 설명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추경을 선택하는 것은 정치적인 이유라는 해석이 나온다. 최 부총리가 7~8월경 당으로 복귀해 내년 총선을 준비할 것이어서 대국민 메시지가 강한 카드를 선택을 했다는 얘기다.
이달말 추경이 결정되면 실제 추경이 이뤄지는 것은 빨라도 다음달이다. 지난해와 비슷한 시기다. 추경을 해도 그 효과가 내년에는 돼야 나타난다. 결국 최 부총리가 추경을 선택한 것은 경제회복보다는 '추경' 그 자체를 선택했다는 추측도 가능하다.
정진후 정의당 원내대표는 23일 의원총회에서 "이번 추경이 메르스와 가뭄에 고통 받는 서민을 핑계로 한 박근혜 정부의 경제정책 실패를 은폐하는 수단으로 이용돼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정 대표는 "메르스가 아니더라도 올해 한국경제 수출은 5개월 연속 감소세"라며 "불과 한 달 전까지 3.3%의 경제성장을 자신해왔던 최경환노믹스의 초라한 자화상"이라고 꼬집었다.
[뉴스핌 Newspim] 곽도흔 기자 (sogood@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