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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칼럼]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하는 진짜 속내는?

기사등록 : 2015-11-04 14: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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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 대통령, 권력유지 위해 한국사회 통합 대신 분열시키나

박근혜 정부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 작업이 일사천리로 진행되고 있다.

국사편찬위원회(국편)는 4일 단일 중·고교 역사교과서를 쓸 집필진을 닷새간 공모한다고 발표했다. 황교안 국무총리는 전날 대국민담화를 발표했으며, 황우여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관보에 국정화안을 확정 고시했다. 지난달 12일 교육부가 중학교 ‘역사’와 고등학교 ‘한국사’ 교과서를 국정으로 발행한다는 내용의 ‘중·고등학교 교과용도서 국·검·인정 구분(안)’을 행정예고한 지 20일 만이다. 바로 전날 행정예고 기간이 종료된 시점으로 보면 불과 11시간 만이다.

이로써 중·고교 한국사 교과서는 2011년 검정교과서로 완전히 바뀐 지 6년 만에 국정으로 회귀하게 된다. 이제 국정교과서가 나오기까지 남은 과정은 국편의 집필진 구성과 교과서 집필뿐이다. 새해 예산안에 국정교과서 발행 예산 100억원을 편성해놓은 교육부는 2017년 3월부터 새 교과서를 중‧고등학교에 보급할 방침이다.

“대한민국은 민주공화국”이라고 명시한 헌법을 보유하고 세계 10위권의 경제규모를 자랑하는 나라의 역사교과서 국정화 전환이란 프로젝트 추진과정으로 보기에는 졸속의 느낌이 강하다.

‘교육은 백년지대계’라는 말은 차치하더라도 어떻게 한 국가의 역사교과서를 국정화한다면서 공청회 등을 통해 국민의견을 수렴하는 과정조차 제대로 거치지 않고 진행하는 것일까? 아무리 국정교과서라도 친일과 독재로 기록된 역사를 반일과 민주주의로 기록하거나 읽게 할 수는 없을 텐데 왜 박근혜 대통령은 일부 보수세력까지도 반대하는 국정화를 추진하는 걸까?

박 대통령은 ‘선거의 여왕’, ‘수첩공주’ 등으로 불린다.

‘선거의 여왕’은 박 대통령이 1997년 정계 입문 후 자신의 선거는 물론, 당 대표 등으로 치러낸 대부분의 선거에서 기대 이상의 승리를 거두면서 생긴 별명이다. 박 대통령이 경험한 유일한 패배가 2007년 한나라당 경선에서 일반 당원과 대의원, 국민선거인단을 모두 이겨놓고도 1표를 5표로 환산하는 여론조사에서 뒤져 당시 이명박 후보에게 진 것이다.

얼마나 선거를 잘 했으면 대한민국 역사상 유례가 없는, 개인의 이름을 정당명으로 사용한 ‘친박연대’가 탄생해 무려 14명의 국회의원을 당선시켰을까?

여왕은 늘 수첩을 갖고 다닌다. 그래서 ‘수첩공주’다. 대통령이 되기 전 수첩에는 집권 후 해야 할 우선과제들과 함께 일할 사람들의 이름과 됨됨이 등에 대한 정보가 빼곡히 담겨 있었을 법하다. 지금은 집권기간 중 할 일과 임기 후 권력유지를 위한 전략이 메모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즉 짧게는 내년 4월 총선과 2017년 대선, 길게는 5년 내지 10년 후를 내다보는 선거전략의 핵심이 바로 역사교과서 국정화라는 말이다. 왜냐고?

혹자들은 박 대통령의 국정화 추진이 일부 합리적 보수세력과 역사학자, 지식인, 진보세력의 반발을 사 조기 레임덕을 불러올 수 있다고 경고한다. 또 1년 안에 집필될 국정교과서의 유효기간은 2017년 대선까지 불과 1년도 안될 것이라며 무리한 국정화 추진으로 국론만 분열될 것이라고 우려한다.

◆ ‘100% 대한민국’ 약속한 박 대통령의 ‘배신’

박 대통령의 노림수가 바로 여기에 있다. 역사교과서 국정화에 대한 반대의 목소리가 클수록, 국론이 분열될수록 ‘니편’과 ‘내편’은 분명해진다. 6·25전쟁을 겪고 ‘빨갱이’라는 말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키는 한국사회의 특성상 역사나 이념을 주제로 판이 커지면 국민들의 선택지는 좁아진다. 줄서기 싫어도 어쩔 수 없이 한쪽 편을 들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된다. 중도층은 줄어들거나 선거를 포기하는 정치무관심층으로 변한다.

한국 사회는 통합은 어려워도 분열하기 쉬운 구도다. 산업화세력 대 민주화세력, 영남 대 호남, 보수 대 진보, 나이 든 세대 대 젊은 세대 등등. 이미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화두는 교과서 문제가 아닌 ‘이념전쟁의 장’으로 변질됐다.

산업화와 영남, 보수, 나이 든 세대 등의 콘크리트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는 박 대통령으로선 국정화에 따른 국론분열이 결코 손해 보는 장사가 아니다. 나아가 역사교과서 국정화란 이슈가 한국 사회의 보수와 진보를 나누는 ‘핫아이콘’으로 기능하면서 앞으로 당분간은 보수세력이 이 문제를 재론할 여지가 없어진다. 국정교과서에 반대하거나 재론하는 행위는 ‘이적행위’에 해당하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전개는 내년 총선은 물론 후년 대선과 임기 후까지도 박 대통령이 정치적 영향력을 유지할 수 있는 기반이 된다.

당장 새누리당의 유력 대선후보라는 김무성 대표는 3일 고위 당·정·청 회의에서 황우여 교육부장관의 고시발표에 대해 “역사교과서는 정치적 유·불리를 떠나 대한민국 미래세대의 올바른 역사관 확립을 위한 것”이라며 “(국정) 역사교과서는 진취적이고 긍정적인 미래세대를 키우기 위해 꼭 필요한 자양분”이라고 환영했다.

‘친박계’의 눈치 속에서 내년 총선과 후년 대선까지 자리보전을 잘 해야 하는 김 대표로서는 박 대통령의 ‘탁월한’ 줄세우기 전략에 동참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다. 박 대통령으로서는 야당 대표와 공천권 없는 ‘오픈프라이머리’에 합의한 김 대표를 버릴 수도, 꼭두각시 대선후보로 만들 수도 있는 ‘꽃놀이패’를 쥔 셈이다.

이미 새누리당 내에선 공정위가 검·인정 체제인 현행 역사교과서 시장에서 담합행위가 있는지, 불공정행위는 하지 않았는지 조사해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좌편향 역사교과서가 교과서 시장을 독점하고 있으니 조사하자는 충성경쟁의 시발이다. 여당 내 일부 수도권 의원들의 반대 목소리가 나오긴 하지만 판이 커질수록 그들의 목소리는 줄어들 게 자명하다.

박 대통령은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에 앞서 지난달 30일 김수남 대검 차장을 신임 검찰총장 후보로 내정하면서 믿을 수 있는 친위부대(대구·경북)로 검찰과 경찰, 국세청과 공정거래위원회 등의 사정기관 장악을 마무리했다. 정치·경제·사회 모든 분야에 걸쳐 필요하면 언제든지 사정기관을 동원해 반대파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사전준비를 마친 것이다.

문제는 통합해도 모자랄 한국사회의 분열이 고착화되고 확산되는 것이다. 박 대통령의 권력의지가 아무리 강하다 하더라도 ‘레드콤플렉스’에 빠져 선진사회로 진입하지 못하고 있는 상처투성이의 한국사회를 또다시 이념전쟁의 수렁에 빠트려서는 안된다.

박 대통령은 대선 때 ‘100% 대한민국’과 ‘국민대통합’을 약속하고 당선됐다. 박 대통령이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덕목은 ‘신뢰’라고 한다. ‘100% 대한민국’을 약속한 박 대통령이 국민들에게 ‘배신의 정치’를 경험하게 만들어서야 되겠는가!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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