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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NDA칼럼] 롯데家, 언제까지 황제경영에 목을 멜텐가

기사등록 : 2015-11-10 1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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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살 나이에 사업가를 꿈꾸며 무일푼으로 일본 밀항선을 탄 청년이 있었다. 이 청년은 '조센진(한국인에 대한 멸시의 단어로 쓰임)'이란 멸시에도 불구하고 고단한 사업가의 길을 걸었다. 포기하고 싶었던 때도 있었지만 이를 악물고 성공한 사업가를 꿈꾸던 청년. 그에게는 사실 몸에 밴 비밀병기가 있었다. 철저한 근검절약과 자기희생, 그리고 부단한 혁신 노력이다. 이 비밀병기는 일본식 경영과 맞아떨어지며 일본인들의 멸시를 관심과 격려로 돌려놨다. 꽤 오랜 시간이 걸렸지만 결국 그는 인정받는 사업가로 이름을 떨치게 됐다.

현재 국내 재계 서열 5위인 롯데그룹 창업자, 신격호 총괄회장의 이야기다.

일제 강점기와 한국전쟁을 거치며 모두가 배고프던 시절 일본으로 건너가 '몇 푼'짜리 껌을 팔아 사업 기반을 다졌다. 이렇게 번 돈을 일본과 한국에서 식품, 유통, 관광사업 등에 재투자하면서 롯데를 동북아 소비재 맹주로 키운 것이 신 총괄회장이다.

그의 고단했던 경영자 길은 미루어 짐작이 간다. 풀 한포기 나지 않는 마른 땅을 비옥한 땅으로 바꾸는 동안 수많은 도전과 실패, 그리고 얻은 값진 성공의 쾌락이 있었을 게다. '철옹성 롯데'. 신 총괄회장의 말이 곧 롯데에서는 법이되는 현실은 어쩌면 당연한 결과다.

'구순'을 넘긴 신 총괄회장의 경영시대가 저물어가면서 신격호가(家) 2세들의 경영권 분쟁 사태가 터져나왔다. 분쟁 사태는 이제 4개월째로 접어들었다. 신 총괄회장의 장남인 신동주 전 일본롯데홀딩스 부회장과 차남인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 간 공방전은 '막장드라마'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점입가경이다.

사실 이번 분쟁 사태는 신동빈 회장이 초반(분쟁 1라운드) 승기를 잡으면서 일단락되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신동주 전 부회장이 '롯데 황제' 신 총괄회장을 차지(?)하고 법정공방에 불을 지피며(분쟁 2라운드) 최근 더 혼선으로 치닫고 있다.

이 과정에서 흥미로운 것은 분쟁 2라운드의 시작이 신 총괄회장이라는 점이다. 신 총괄회장은 직접 "후계자는 장남"이라고 공개 발언하면서 분쟁 사태는 미궁으로 빠져들었다.

분쟁 2라운드의 시작점인 지난 10월 16일. 신 총괄회장은 서울 소공동 롯데호텔 34층 집무실에서 신동주 전 부회장을 뒤에 세우고 "한국 풍습이나 일본도 그렇고, 장남이 하는 것이 맞다"며 "장남이 후계자 인것은 당연한 일이고 간단한 문제인데 그 일을 차남이 시끄럽게 했다"고 발언했다. 이 발언 이후 분쟁 사태는 한층 더 격화된 양상이다.

이 발언 속에는 신 총괄회장이 조센진의 멸시를 견디며 성공기를 쓰는 과정에서 고착화된 롯데의 전근대적인 황제경영 문제가 단적으로 보여진다.

신 총괄회장의 입에서 나온 "후계자와 장자 승계"는 그간 기업 소유권을 내세운 '총수 일인(一人)'체제를 바탕으로 한 롯데의 경영행태를 압축적으로 보여주기 때문이다.

신 총괄회장의 혁혁한 경영신화 속에서 성장한 롯데는 그의 말 한 마디가 곧 법이 되는 황제경영의 산실이라 할 수 있다. 대부분의 계열사를 비상장사로 유지하고 반도체 회로만큼 복잡한 순환출자 고리를 통해 이같은 체제를 공고히 지켜왔다.

하지만 변화하는 세상 속에서 롯데만 변하지 않을 순 없다. 권력도 생명도 영원할 수는 없다. 공고한 일인지배 체제에서 최상위 권력자가 무너지면 그 지배구도도 무너지기 마련이다. 재계에서 이번 롯데가 경영권 분쟁 사태를 전근대적 황제경영이 불러온 인재라고 평하기도 한다.

물론 이번 사태를 부정적으로만 바라보는 것은 옳지 않다. 위기에서 기회가 찾아오듯 롯데가 이번 사태를 통해 새롭게 태어나는 기회가 될 수 있다. 실제 사회적 압박과 요구로 인한 고육지책이든 면피용 방책이든 이미 롯데는 변화의 닻을 올렸다.

현재 롯데 회장을 맡고 있는 차남 신동빈 회장은 국민들 앞에 고개를 숙이고 롯데의 근본적인 변화를 실천할 것을 약속한 바 있다. 그리고 그것이 면피용 약속은 아니라는 듯이 얼마 전 순환출자의 80%를 해소했다고 발표하기도 했다.

특히 한국 롯데의 지주사 격인 호텔롯데의 상장은 롯데가 지난 수 십 년간 감싸온 불투명한 장막을 걷어내고 투명한 기업으로 발돋움하는 상징적이자 실질적인 조치가 될 것으로 보인다.

장남과 차남과의 분쟁은 이제 송사로 넘어갔다. 이는 곧 분쟁이 장기전으로 돌입한 것과 동시에 법과 원칙의 테두리 안에서 어떻게든 마무리가 될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누가 경영권을 차지하든 차남 신동빈 회장이 국민들에게 공언한 약속들은 롯데의 미래를 위해 반드시 지켜져야 한다는 점이다.

투명한 지배구조와 경영, 선진화된 기업문화는 이제 더 이상 기업의 충분조건이 아닌 생존조건이 됐기 때문이다.

83개의 계열사와 10만명의 직원을 둔 재계 5위의 대기업집단 롯데. 이번 분쟁이 롯데의 변화와 혁신을 위한 성장통이 아닌 단지 씻을 수 없는 상처로만 남는다면 그건 비단 롯데 만의 비극이 아닌 우리나라 경제 전반의 손실임에 틀림 없다.

분쟁의 당사자인 장남과 차남은 이런 사실을 가슴에 깊게 새겨야 할 것이고, 시장에서도 막장 드라마 같은 모습을 즐기고 비난하기보다는 롯데의 약속 이행 여부를 보다 철저하게 감시하고 검증할 때이다.



[뉴스핌 Newspim] 이강혁 유통부장 (ikh@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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