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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이영기 기자] 경영 위기에 직면한 현대상선과 채권금융기관이자 국책은행인 산업은행간 구조조정을 위한 신경전이 한창이다. 이달말 추가자구계획안 제출 시한을 앞두고 긴장감이 고조되고 있다.
산업은행은 현대그룹이 내놓을 자구안이 현대상선의 위기를 감당하기에 충분하기를 기대하지만, 설사 기대에 못미치더라도 별다른 방안을 강구하기가 쉽지 않다는 입장이다.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통해서도 회생시키기 어렵다는 분석이다. 특히 현대상선의 오너인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와 친척관계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가 고려대상이 될 수 없다고 선을 그었다.
23일 현대그룹과 금융감독원 등에 따르면, 현대상선이 지난 9월말 기준으로 1년 이내에 상환해야 할 부채는 3조5000억원 내외다. 유동자산이 1조5000억원 수준임을 고려하면 상환에 필요한 자금규모는 2조원 수준이다. 내년에 만기도래하는 회사채도 5200억원이다.
산은의 한 관계자는 "기한을 정한 것은 아니지만 11월말까지 추가자구계획안 제출을 요구해 놓고 있다"면서 "최근 4500억원의 자금확보로 올해 필요한 유동성은 메꾸겠지만 내년도 만기되는 회사채 상환 자금 확보 등이 관건"이라며 마음을 졸였다.
현대상선은 부채도 부채지만 수익성이 나아지지 않아 '밑빠진 독'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지난 2011년 이후 매년 2000억~5000억원 정도의 손실을 기록했을 뿐만아니라 올 3분기에도 680억원 적자를 봤다. 3분기는 해운업의 최대 성수기다. 이 때문에 특단의 자구 대책이 나오지 않는다면 내년 회사채 상환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이런 상황에서 산업은행이 현대그룹의 지배구조 변화를 지켜보고 있다. 최근 자금조달 과정에서 현대그룹은 현대상선 대신 현대엘리베이터 중심으로 재편되는 양상을 보였다. 현대상선은 반얀트리호텔을 보유하고 있는 현대엘앤알과 현대아산 지분을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했다. 또 현대증권 지분 19.77%와 현대종합연수원 지분을 담보제공해 총 4500억원의 자금을 조달했다.
현대그룹이 현대상선을 매각(포기)하겠으니 그때까지는 회사를 유지해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는 시나리오를 염두에 둔 것으로 해석할 수 있다. 산업은행은 이 경우 마땅한 대안이 없다는 게 채권단 안팎의 관측이다.
현대상선은 현재로선 워크아웃이나 법정관리를 통해 회생할 수 없다는 게 산은이나 구조조정업계의 분석이다. 우선 워크아웃은 회사채 비중이 높아 불가능하다는 것. 은행 등 금융기관 대출이 많으면 만기연장 등을 통해 지원할 수 있으나 회사채 비중이 높으면 안된다는 얘기다. 회사채 비중이 높았던 팬오션(구 STX팬오션)도 결국 법정관리에 들어갔다.
현대상선은 법정관리에 들어가면 청산하는 것과 다름없다는 것이 업계의 진단이다. 컨테이너선사들은 글로벌 얼라이언스를 맺고 협업하며 상호이익을 추구한다. 현대상선도 G6 얼라이언스에 속해있다. 현대상선이 법정관리에 들어간다면 얼라이언스의 다른 선사(APL,Hapag-Lloyd, NYK Line 등)들이 피해(현대상선의 물량이 선적돼 압류조치 등)를 우려해 바로 퇴출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선주협회 관계자는 "회사채 때문에 워크아웃이 어렵다는 점은 팬오션(구STX팬오션)과 비슷하지만 팬오션이 벌크위주의 해운사라서 법정관리가 가능했다"면서 "현대상선은 컨테이너선사라 법정관리로 회생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결국 현대그룹이 현재 선택할 수 있는 건 시간벌기라는 게 구조조정 업계의 관측이다. 앞서 현대증권 매각도 수차례 지연되며 시간을 끌었으나 결국 매각되지 않은 것처럼 현대그룹이 구조조정 속도를 계속 늦출 가능성이 있다는 얘기다.
구조조정업계의 한 관계자는 "현대그룹의 이번 자금조달에서 현대상선이 보유한 지분을 직접 현대엘리베이터에 매각하거나 현대증권의 지분 우선매수청구권을 현대엘리베이터에서 확보하는 등의 수순을 눈여겨 볼 필요가 있다"며 "현정은 회장과 친인척 관계인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정치적 무게도 무시하지 못하는 요인이 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김무성 대표를 중심으로 한 정계의 구도변화가 현대상선의 처리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점을 시사한 것이다.
이에 대해 산은 관계자는 " 채권기관도 현대그룹이 자기 살길을 모색하는 것을 존중하므로 무리한 요구를 하지 않을 것"이라면서도 "현대그룹도 과도한 지원을 바라서도 안될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이 관계자는 "업계 등에서 추측하는 특정인물을 중심으로 하는 정계구도의 변화 등 정치적인 변수는 전혀 고려대상이 아니다"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이영기 기자 (00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