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광수 이성웅 기자] 일용직 건설 근로자들의 새벽은 추웠다. 예년에 비해 일당은 올랐지만 인력 사무소를 거치면 정작 실수령액은 그대로였다. 상대적으로 고임금을 받는 기술직은 대부분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새해 첫 인력 시장. 전국 최대의 인력시장인 서울 구로구 7호선 남구로역을 찾았다. 2일 새벽 4시 30분. 역 인근에는 300여명의 일용직 근로자가 연휴에도 불구 일거리를 찾아 장사진을 펼치고 있었다.
승합차들이 오가며 건설 현장으로 인력들을 실어가는 와중에 마땅한 일거리를 찾지 못한 사람들의 얼굴에는 불안함이 떠올랐다.
◆ 일당 올랐지만..실수령액은 그대로
예년에 비해 일용직 건설 근로자들의 일당은 소폭 상승했지만 실수령액은 큰 차이가 없는 것으로 드러났다.
건설회사들은 일용직 근로자들에게 일당으로 평균 10만원 정도를 지급한다. 여기에 사무소에서 소개비와 세금 명목으로 7000원 정도를 가져간다. 또 퇴직금 명목으로 5000원을 추가로 제한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근로자들은 현장으로 이동할 때 탄 승합차 차주에게 5000원을 차비로 내야한다. 결국 손에 남는 돈은 8만원 초중반대다.
일부 사무소는 천원 단위를 지급하지 않기도 한다. 일용직 15년차 근로자 김주승(47) 씨는 "이것저것 떼고 8만5000원이 남으면 그거라도 온전히 줘야하는데, 만원 단위까지만 주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이에 대해 항의하면 '내일부터 나오지 말라'고 으름장을 놓기도 한다"고 불만을 토로했다.
임금을 아예 못 받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일용직 근로자 성혁진(38, 가명)씨는 "작업이 늦게 끝나고 사무실로 돌아오면 이미 직원들이 퇴근해 당일에 일당을 못 받기도 한다"며 "더 화가 나는 것은 분명 근무 확인증을 줬는데도 사무실에서 이를 '받은적이 없다'며 발뺌하고 돈을 주지 않을 때다"라고 하소연했다.
인력사무소는 건설현장에서 평균 2~3차 하도급업체에 해당한다. 이러한 사무소의 소개를 받아 일하는 일용직 근로자들은 스스로를 '을'도 아닌 '정'이라 칭했다. 이러한 계약관계 때문에 일용직 근로자들의 체감경기는 나아질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일거리를 찾고 있던 차성인(52, 가명) 씨는 "임금이 500원 올랐으면, 우리도 500원을 더 받아야 하는데, 겨우 200원 더 받는 셈이다"라며 "이래서 이쪽 일 하는 사람들이 돈 모으기가 쉽지 않다"고 성 씨를 거들었다.
인근 인력사무소 직원 문기준(49) 씨는 "요즘 아파트 공사가 늘다 보니 '단가'가 작년 초에 비해서는 조금 오른편"이라고 설명했다. 다만 근로자들이 주장한 '부당 공제' 부분과 관련해선 "요즘 그랬다간 큰일 난다"며 사실무근이라고 반박했다.
2일 서울 구로구 남구로역 인력시장에서 일자리를 찾고있는 근로자들이 거리를 매우고 있다. <사진=이광수 기자> |
◆ 중국인 대거 유입..목수 등 고임금 일자리 차지
기술을 요구하는 고임금 일자리는 중국인들이 대부분 차지하고 있다.
"오늘도 '데마찌'야"
일용직 6년차 진주영(55, 가명)씨는 이날 일자리를 구하지 못한체 길에 서 있었다. 일본에서 대학을 나와 큰 사업을 했다던 진씨는 5년전 남구로에 처음 발을 디뎠다. '데마찌'는 일을 구하지 못한 날을 뜻하는 은어다.
진씨를 비롯해 남구로 일용직 근로자들은 '데마찌'의 이유를 중국인이라고 말했다. 진씨는 "현장을 가보면 알겠지만 열에 여덟은 중국인이야." 2015년 기준으로 구로구에만 거주하는 중국인만 4만3000여명. "16만원 받는 목수나 철근을 중국인은 14만원에도 군말없이 한다 이거에요. 한국인을 찾을리 있나?" 그가 중국인들을 향해 눈을 흘기며 말했다.
실제로 현장 근로자들을 감독하는 목수나 철근 담당자의 경우 거의 중국인이 차지하고 있다. 최근 중국에서 기술을 배워온 중국인들이 많이 유입된 까닭이다. 잡일을 도맡아 하는 '잡부'만 한국인이 나눠 하고 있다는 게 인근 인력사무소의 설명이다.
특히 비자가 없거나 관광비자로 들어온 중국인의 경우 더한 저임금도 마다하지 않는 상황이다. 전라남도 해남에서 올라와 20년째 남구로로 출근한다는 권상호(54, 가명)씨는 남구로의 역사를 줄줄이 꿰뚫고 있다. 그는 "일자리 자체는 과거에 비해 줄지 않았다"면서도 "기술직은 전부 중국인이 차지하니 (잡부만 하기엔) 자존심이 상해서 일용직 자체를 하지 않고 노숙자로 흘러 들어가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실제로 이날 대부분의 중국인은 금세 봉고차를 타고 건설 현장으로 떠났다. 이와 반대로 몇몇 한국인들은 혹시 '나를 찾는 봉고차가 있을까'하는 희망을 갖고 새벽 거리를 서성이고 있었다. 아침 해가 뜨고있었다.
[뉴스핌 Newspim] 이광수 이성웅 기자 (egwangsu@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