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자산 매입 프로그램으로 이른바 ‘머니 프린팅’을 추진중인 중앙은행 정책자들이 당혹스러운 표정이다. 공격적인 통화완화 정책에도 자국 통화 가치가 상승 탄력을 받고 있기 때문.
장기적으로 지속된 양적완화(QE)가 더 이상 금융시장에 새로운 재료가 아닌 데다 중국발 충격이 투자자들의 안전자산 선호 심리를 자극한 데 따른 결과로 풀이된다.
엔화 <출처=뉴시스> |
14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최근 엔화는 달러화에 대해 4년 6개월래 최고치로 뛰었다. 지난해 통화정책 엇박자를 빌미로 바닥 없는 하락을 연출했던 유로화 역시 달러화에 대해 무역가중지수 기준으로 2주 최고치를 나타냈다. 스웨덴의 크로나 역시 유로화에 대해 10개월래 최고치로 뛰었다.
일본은행(BOJ)과 유럽중앙은행(ECB)가 QE를 지속하고 있을 뿐 아니라 올해 확대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공감대에도 이들 통화는 시장의 기대와 반대 방향으로 움직이고 있다. 스웨덴의 크로나화 역시 마찬가지다.
유동성 공급을 늘려 금리를 떨어뜨리고, 자국 통화의 수요를 위축시켜 수출을 부양하는 한편 인플레이션을 끌어올리겠다는 이들 중앙은행의 계산이 빗나가기 시작한 것.
투자자들은 올해 외환시장의 변동성이 크게 치솟을 것으로 예상하는 한편 올 들어 2주 사이의 움직임이 지속될 것인지 여부에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다.
아울러 특정 통화의 방향을 점친 베팅이 갈수록 어려워지고 있다는 불평이 트레이더들 사이에 날로 높아지고 있다.
지난해 3월 말 기준 9개월 사이 달러화가 25% 랠리 했을 당시 외환 트레이더딩은 땅 짚고 헤엄치기나 마찬가지였다. 대부분의 통화에 대한 달러화 상승 베팅이 쏠쏠한 수익률을 창출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상황은 급변했다. 지난해 12월 금리인상을 단행한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최소 두 차례의 추가 금리인상을 실시할 것으로 보이지만 달러화의 최근 강세가 지속될 것으로 장담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닐 멜로 BNY 멜론 외환 전략가는 “궁극적으로 43개 중앙은행이 지난해 일제히 환율전쟁에 가담했다”며 “이들의 움직임은 상호배타적이며, 따라서 마이너스 금리에도 통화 가치가 오르는 현상이 벌어질 수 있다”고 말했다.
정책자들의 의도대로 환율이 움직이지 않는 것은 중앙은행의 양적완화가 더 이상 금융시장에 ‘서프라이즈’가 아니기 때문이라는 주장도 나왔다.
헤지펀드 업체 SLJ 매크로 파트너스의 스티븐 옌 대표는 “각국 중앙은행이 비전통적인 통화정책으로 거둘 수 있는 효과가 한계를 맞았다”며 “이들의 정책은 더 이상 투자자들에게 충격이 아니며, 낯익은 기조일 뿐”이라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투자자들의 ‘리스크-오프’ 심리 역시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훼방을 놓고 있다는 지적이다. 위안화 충격과 지정학적 리스크에 따른 안전자산 ‘사자’가 엔화를 포함한 일부 통화를 끌어올리고 있기 때문.
세계은행에 따르면 통화 평가절하에 따른 수출 부양 효과가 20년 전에 비해 절반 수준으로 떨어졌다. 글로벌 공급망이 성장하면서 완성 제품의 상당 부분이 수입되고 있어 통화 평가절하가 양날의 검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