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전세계 증시의 연이은 폭락과 중국을 둘러싼 불확실성에 주요국 중앙은행이 유동성 공급 카드를 다시 꺼내들고 있다.
중국이 역레포 시장을 통해 대규모 유동성을 방출하고 나선 가운데 유럽중앙은행(ECB)이 21일(현지시각) 통화정책 회의에서 이르면 3월 부양책을 확대할 뜻을 밝혔다.
달러화 <출처=블룸버그통신> |
이와 함께 국채시장 트레이더들은 미국 연방준비제도(Fed)가 올해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못할 것으로 점치고 있다. 긴축 속도가 당초 예상보다 더딜 것이라는 전망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지난해 12월 금리인상을 끝으로 상당 기간 추가 긴축을 단행하지 못할 것이라는 관측에 무게가 실리는 상황이다.
유로존의 인플레이션은 장기간 0%에 고착될 것이라는 전망이 지배적이다. 서부텍사스산중질유가 배럴당 30달러 아래로 밀리면서 인플레이션이 정책자들의 목표치인 2%에 근접할 것이라는 기대는 물 건너 갔다는 것이 투자자들의 시각이다.
지난 달 회의에서 시장의 기대와 달리 양적완화(QE)를 동결했을 때 ECB는 인플레이션이 2017년 1.6%까지 오를 것으로 내다봤으나 불과 1개월 사이 입장이 전면적으로 뒤집힌 셈. 브렌트유가 배럴당 약 60달러까지 회복될 것이라는 지난달 ECB의 전망은 보기 좋게 빗나간 상황이다.
미국 경제 펀더멘털에 대해 대다수의 투자자와 정책자는 신뢰를 유지하고 있다. 강달러에 따른 기업 수익성 악화가 예상되지만 고용 지표가 지속적으로 개선되고 있고, 실물경기의 완만한 회복이 이어질 것이라는 기대다.
하지만 글로벌 금융시장의 패닉과 중국을 필두로 한 성장 둔화를 연준 정책자들이 외면하기는 어려운 실정이다. 이미 신용경색 조짐을 보이는 이머징마켓 채권시장도 연준의 발목을 붙드는 요인이다.
이 때문에 국채시장의 트레이더들 사이에 연내 연준의 추가 금리인상이 단행되지 않을 것이라는 의견이 번지고 있다.
문제는 비전통적 통화정책과 장기 초저금리 시행이 간단치 않다는 점이다. 연준의 정책 행보를 주시하는 월가의 이코노미스트들은 시장과 정책자들이 결정적인 지표를 간과하고 있다고 주장하고 있다.
변동성이 높은 음식료와 에너지 가격을 제외한 핵심 인플레이션의 상승 추세가 예사롭지 않다는 것. 미국 핵심 물가는 지난해 12월 연율 기준 2.1% 상승했다. 이는 2012년 7월 이후 가장 가파른 상승이다.
로버트 브루스카 FAO 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금융시장을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며, 여기에 핵심 물가가 2% 선에 진입한 것은 통화정책 결정에 커다란 딜레마”라고 주장했다.
햄 밴드졸츠 유니크레디트 리서치 이코노미스트는 “연준이 이달은 물론이고 3월 회의에서도 금리인상을 단행하지 않을 여지가 높다”며 “다만 고용 지표 개선과 인플레이션 상승이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강조했다.
스티븐 스탠리 앰허스트 피어폰트 이코노미스트 역시 “인플레이션 상승이 올해 연준의 통화정책 결정에 단 한 가지 가장 커다란 현안”이라고 말했다.
ECB도 딜레마에 빠진 것은 마찬가지다. 인플레이션을 높이기 위해 QE를 확대해야 한다는 데 이견의 여지가 없지만 문제는 자산 가격이다. 정책자들 사이에서도 이미 논란이 불거졌다.
옌스 바이트만 독일 분데스방크 총재는 장기 초저금리가 은행권 이익을 압박하는 한편 자산 버블을 양산할 것이라고 경고한 바 있다.
ECB의 지난 11월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비전통적인 통화완화 정책이 자산 가격을 띄우고 있고, 이에 따른 조정 리스크가 더욱 높아지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독일 주택 가격 지수는 2011년 3월 말 100을 밑돌았으나 이후 가파르게 상승해 지난해 9월 말 120을 넘어섰다.
하지만 ECB가 QE를 확대하는 것 이외에 당장 취할 수 있는 다른 대응책이 없다는 것이 금융업계 전문가들의 판단이다.
프레드릭 듀크로제트 방크 픽텟 앤 시에 이코노미스트는 “성장률이 저조한 데다 중국발 충격에 따른 하강 리스크가 높고, 인플레이션은 상당 기간 0%에 머물 것”이라며 “ECB는 비둘기파 행보를 취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