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파죽지세로 오르던 달러화에 마침내 브레이크가 걸렸다. 1월 고용 지표가 일보 후퇴할 것으로 보이는 데다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 기대감이 꺾이면서 ‘곰’이 깊은 수면에서 깨어나고 있다.
지난 1년 6개월 사이 달러화의 강세는 전례 없는 현상이라는 것이 시장 전문가들의 얘기다. 유로화와 엔화에 대해 달러화는 각각 23%와 17% 뛰었고, 브라질 헤알화에 대해서는 무려 76% 폭등했다. 남아공 랜드화와 러시아 루블화에 대한 달러화 상승폭은 각각 51%와 121%에 달했다.
유가를 포함한 상품 가격 하락과 이머징마켓을 필두로 한 신용시장의 한파, 여기에 중국의 위안화 평가절하 압박까지 글로벌 금융시장에 커다란 혼란을 초래한 굵직한 현안들이 달러화와 맞물려 있다.
달러화 <출처=블룸버그통신> |
달러화 강세는 미국 기업의 수익성과 연준의 통화정책 향방에도 결정적인 변수로 작용하고 있다.
달러화 하락 베팅 움직임에 투자자들의 시선이 꽂힌 것도 이 때문이다. 달러화 강세가 진정되면서 금융시장 전반에 걸친 악순환의 고리 역시 일정 부분 해결의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다.
3일(현지시각) 업계에 따르면 100을 향해 치솟던 달러 인덱스가 장중 96선까지 밀렸다. 지난달 29일 일본은행(BOJ)의 마이너스 금리 시행에 2개월래 최고치로 뛰었던 달러 인덱스가 최근 이틀 사이 급반전을 이룬 셈이다.
외환시장과 파생상품 시장의 트레이더 사이에 달러화 하락 베팅이 확산되기 시작한 결과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판단하고 있다.
직접적인 도화선은 5일 발표되는 1월 고용 지표에 대한 전망이다. 업계 이코노미스트는 지난달 미국 비농업 부문 신규 고용이 20만건을 밑돌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이 경우 이미 한 풀 꺾인 연준의 금리인상 여지가 더욱 낮아질 수 있다. 금리인상과 통화정책 엇박자를 겨냥해 달러 상승에 베팅했던 트레이더들이 전략을 재검토해야 하는 상황을 맞은 셈이다.
로베르토 미알리히 유니크레디트 외환 전략가는 “연준의 긴축으로 달러화가 가파르게 오를 것이라고 예상했던 투자자들이라면 최근 움직임에 흔들리고 있을 것”이라며 “12월 예상보다 연준의 긴축 속도가 느릴 것이라는 의견이 확산될수록 달러화가 약세를 지속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달러화의 하락은 글로벌 금융시장의 ‘발작’ 증세를 크게 진정시킬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된다. 무엇보다 신용시장이 달러화 약세를 반길 것으로 보인다.
지난 수년간 달러화 표시 회사채를 대규모로 발행한 이머징마켓 기업들의 신용 리스크가 크게 진정될 수 있기 때문이다.
일례로, 터키의 경우 리라화가 달러화에 대해 1년6개월 사이 38% 급락한 데 따라 달러화 회사채를 발행한 기업들이 원리금 상환에 난항을 맞고 있다.
자국 통화 가치가 대폭 떨어졌거나 달러화 매출이 미미한 이머징마켓 기업들이 모두 흡사한 상황이다. 특히 원자재 업체들의 경우 상품 가격 하락까지 맞물려 이중 압박에 시달리고 있다.
중국 위안화를 둘러싼 리스크도 달러화 약세와 함께 상당 부분 진화될 수 있다는 분석이다. 달러화가 가파르게 오를수록 성장률 둔화되는 중국이 위안화의 달러화 페그를 유지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미국 경제 역시 달러화 하락이 ‘약(藥)’이라고 시장 전문가들은 입을 모으고 있다. 강달러가 미국 수출 기업의 경쟁력에 흠집을 냈고, 이에 따라 수출이 둔화되고 있기 때문이다.
이날 월스트리트저널(WSJ)은 미국의 무역수지 적자가 확대되지 않았다면 지난 4분기 미국 경제성장률이 0.5%포인트 높았을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 밖에 정책 목표를 크게 밑도는 인플레이션 역시 달러화 가치가 떨어질 경우 개선될 것으로 기대된다.
블룸버그통신은 해외 중앙은행의 통화정책에 시선을 고정했던 외환시장 트레이더들이 미국 경제 지표와 연준의 행보를 직시하기 시작했다고 전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