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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드니= 뉴스핌 권지언 특파원/서울=김사헌 기자] 일본은행(BOJ) 발 통화전쟁이 혼전 양상을 보인 가운데, 일본보다 먼저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던 유럽중앙은행(ECB)도 유로화 가치가 상승하자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4일(현지시각) 블룸버그통신은 무역가중 기준으로 1년래 최고 수준으로 올라선 유로화가 통화전쟁의 패자로 부상하고 있으며 이는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의 디플레이션 타개 노력에 찬물을 끼얹고 있다고 지적했다.
ECB가 38개 통화바스켓을 바탕으로 산출한 유로화의 실효환율은 이날 119.9056으로 작년 1월2일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다. 이는 달러대비 상승폭보다 가파른 오름세로, 유로/달러 환율은 이날 장중 1% 넘게 오른 1.1239달러로 15주래 최고치를 찍었다.
◆ 유로화 추가 강세 시사
유로/달러 환율 1년 추이 <자료=블룸버그> |
캐피탈이코노믹스 이코노미스트 조나단 로인스는 "작년만 해도 유로화 평가절하에 성공했던 ECB가 최근에는 통화 약세를 통한 경기부양 및 디플레이션 타개라는 통화전쟁에서 뒤쳐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ECB가 환율이 통화정책 도구가 아니라는 점을 항상 강조하고는 있지만 인플레이션을 목표치로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유로화 약세가 필수라는 점은 자명하다"고 덧붙였다.
설상가상으로 투기세력들 사이에서는 당분간 유로화 가치가 계속 오를 것이란 전망이 고조되고 있다.
풋 옵션과 콜 옵션의 내재 변동성 차이를 나타내는 수치로, 미래 환율변동 방향을 예측하게 하는 '리스크리버설(risk reversal)'은 2012년 이후 처음으로 플러스(+) 영역으로 진입했다. 리스크리버설이 플러스이면 미래 환율이 상승할 것이란 기대를 보여주는데, 최근 미국 달러화 가치 하락과 더불어 유로/달러 리스크리버설 1개월, 2개월, 3개월물 모두 유로화 추가 강세를 시사하고 있다.
그간 강력한 유로화 약세를 가리키던 유로/달러 리스크리버설 6개월 등 장기물의 가격도 유로화 강세 가능성을 50%로 높여 잡는 등 분위기 변화가 감지되고 있다.
뱅크오브뉴욕 멜론 수석 통화전략가 사이먼 데릭은 "시장 환경이 '리스크 오프' 쪽으로 움직이면 유로화와 엔화 매수 움직임이 늘어날 것"이라며 "이는 일본과 유럽 중앙은행에 큰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고 지적했다.
미국 달러화지수(DXY) 5년 추이 <자료=블룸버그> |
◆ 궁지 몰린 드라기, 3월 '초강수' 예고
작년에는 유로화 약세를 통한 경기 부양에 성공적이었던 드라기 총재는 바닥을 모르고 추락 중인 국제유가에 유로 강세까지 겹치면서 상황이 난감해졌다.
시장에서는 오는 3월 통화정책회의에서 금리를 추가로 내릴 것으로 점치고 있지만 그 효과도 장담할 수 없다는 회의론까지 나오고 있다.
ECB는 지난 2014년 6월부터 마이너스 금리를 도입했는데 당시 마이너스 0.1%로 낮췄던 예금금리는 3개월 뒤에 -0.2%로, 작년에는 -0.3%로 추가 인하됐다.
시장은 오는 3월 회의에서 금리가 -0.4%까지 떨어질 가능성을 반영하고 있으며, 더불어 1조5000억유로 규모의 자산매입 프로그램 변경 가능성도 높게 잡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출처:AP/뉴시스> |
이날 독일서 드라기 총재도 "저물가에 굴복하지 않을 것"이라며 너무 늦게 대응하는 것보다 조기에 대응하는 것이 낫다고 강조해 추가 부양 가능성을 높였다.
하지만 트레이더들은 드라기가 예상보다 소극적인 완화책을 발표해 유로화가 급등했던 지난 12월 회의를 떠올리며 경계심을 늦추지 않는 모습이다. 당시 유로화 가치는 2009년 이후 최고치로 치솟았다.
단스케방크 수석 애널리스트 옌스 피터 소렌슨은 "유로 가치가 내려오려면 ECB가 지금보다 더 완화적인 기조를 보여야 한다"며 "드라기는 언제나 신중하지만 시장은 ECB 기조를 더 조심스레 읽으려 하는 경향이 있다."고 말했다.
◆ 구로다 총재도 고민 깊어
이런 면에서는 일본의 고민도 깊다. BOJ의 마이너스금리 정책 도입으로 121엔 선까지 급등했던 달러/엔은 불과 며칠새 116엔 중반까지 밀리면서 당국의 의지가 무색해졌다.
구로다 하루히코 BOJ 총재는 마이너스금리와 자산매입 정책에 한계는 없다면서 보다 과감한 완화정책을 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지만, ECB의 실패를 경험한 외환시장 참가자들은 냉담한 모습이다.
마틴 펠드스틴 하버드대 교수는 최근 '유럽의 양적완화의 결함'이란 제하의 칼럼에서 "유럽은 숨은 목표인 유로화 약세 유도를 통한 수출 부양 시도가 큰 효과를 보지 못했고, 수입물가 상승을 통한 물가 부양 시도 역시 높은 실업률과 수요 부족으로 실패했다"며 "더이상 중앙은행의 정책은 성공하기 힘든 상태가 됐다"고 경고했다.
일본 '아베노믹스' 역시 위험에 처했다. 유럽을 반면교사로 삼아 임금 상승과 내생적인 물가 압력 일으키기를 시도한 일본 당국 역시 마음대로 되지 않는 현실에 직면했다. 달러/엔 환율마저 재하락하면서 ECB와 마찬가지로 '초강력 완화정책'의 수를 둘 것인지 고민해야 하는 지경이다.
BOJ 역시 시장 기대에 못미치는 수를 둘 경우 '역화'에 직면할 가능성이 있기 때문이다.
달러/엔 최근 1년 추이 <자료=블룸버그> |
[뉴스핌 Newspim] 권지언 김사헌 기자 (kwonji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