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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영태칼럼] 박근혜 정부는 한반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기사등록 : 2016-03-14 16:4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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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안부·개성공단·사드 등 외교적 자산·레버리지 소진 심각

한·미·일과 북·중·러가 북한의 4차 핵실험과 장거리 로켓 발사, 주한미군의 사드(THAADㆍ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를 놓고 한반도에서 신냉전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가운데 1991년 냉전구도 붕괴 이후 쌓아올린 한국의 외교적 자산들이 빠르게 소진되고 있다.

박근혜 대통령이 취임 후 야심차게 추진해온 미중 간 균형외교는 물론, 남북 간 지속가능한 평화를 구축하자는 ‘한반도 신뢰프로세스’와 유라시아 대륙을 하나의 경제공동체로 묶자는 ‘유라시아 이니셔티브’ 등의 외치 기반도 송두리째 흔들리고 있다.

남측에선 지난 7일부터 ‘역대 최대 규모’라는 한미 군사연합훈련 키리졸브(KR)·독수리(FE)연습이 진행중이다. 13일에는 미군이 자랑하는 항공모함 존 C. 스테니스호(CVN-74)호가 스테니스호호넷(F/A-18) 전투기와 호크아이(E-2C) 조기경보기 등 첨단 전략무기들을 탑재하고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했다.

북측은 지난 12일 북한군 총참모부 성명을 통해 “우리 군대는 적들의 ‘평양진격’을 노린 반공화국 상륙훈련에는 서울을 비롯한 남조선 전지역 해방작전으로, ‘족집게식타격’ 전술에는 우리 식의 전격적인 초정밀기습타격으로 대응할 것”이라며 반발하고 있다. 북한은 지금까지 국방위원회나 외무성, 최고사령부 등의 명의로 한미연합훈련을 비난해왔는데, 남측 합동참모본부에 해당하는 북한군 총참모부가 성명을 발표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남북 대치는 군사연습과 호언장담에 그치지 않고 경제위기와 직결된다.

북한 대남기구 조국평화통일위원회(조평통)은 지난 10일 “남조선이 일방적으로 금강산 관광과 개성공업지구 가동을 전면 중단한 것만큼 우리는 우리 측 지역에 있는 남측 기업과 관계 기관의 모든 자산을 완전히 청산해버릴 것”이라며 “이 시각부터 북남사이 채택 발표된 경제협력 및 교류사업과 관련한 모든 합의들을 무효로 선포한다”고 밝혔다.

앞서 한국 정부는 지난 8일 ▲금융제재 ▲해운통제 ▲수출입 통제 ▲북한 영리시설 이용자제 계도 등의 대북 독자제재 조치를 발표했다. ‘유엔 역사상 가장 강력한 제재’라는 지난 2일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의 대북결의안에 이은 조치다.

남북 모두 실리보다는 “역사상 최대·최고 수준의 훈련과 제재”를 자화자찬하고 “서울해방작전과 남측자산동결”이란 엄포와 협박으로 맞대응하고 있다. 인공지능 알파고가 이세돌 9단을 압도하는 21세기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담보로 ‘치킨게임’을 벌이고 있는 것이다. 그래도 내치보다는 외치가 낫다는 평가를 받아온 박근혜 정부였는데 어디서부터 꼬인 것일까?

경기도 파주시 도라산 전망대에서 바라본 비무장지대 북한군 소초와 폐쇄된 개성공단이 쓸쓸한 모습을 보이고 있다.<사진=뉴시스>

◆ 위안부 합의부터 꼬이기 시작한 박 대통령의 외치

외치가 꼬이기 시작한 것은 지난해 12월28일 일본과의 위안부 합의로 보인다. 당시 윤병세 외교부 장관은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외무상과의 한일 외교장관 회담을 통해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의 사과와 일본 정부 출연 10억엔으로 위안부재단 설립 등을 조건으로 위안부 피해자 문제 해결에 합의했다.

한국 정부는 일본 정부가 두 가지 조치를 착실히 이행한다는 것을 전제로 이 문제가 ‘최종적 및 불가역적(irreversible)’으로 해결된 것이라고 확인해줬다. 아울러 향후 유엔 등 국제사회에서 이 문제에 대한 상호 비난·비판을 자제한다고까지 합의했다.

합의문에서 사용한 ‘최종적 및 불가역적(irreversible)’이란 단어가 눈에 거슬린다. 이 단어는 조지 W 부시 전 대통령이 6자회담에서 북핵 문제에 대한 미국의 목표를 천명할 때 사용한 CVID(Complete, Verifiable, Irreversible Dismantlement: 완전하고 검증 가능하며 불가역적인 핵폐기)에 나왔던 표현이다. 즉 한일 정부의 위안부 합의 뒤에는 한미일 공조를 통해 중국의 굴기를 억누르려는 미국의 외교전략이 작용했다고 볼 수 있다.

북한이 당시 CVID라는 용어에 대해 “패전국에나 강요하는 굴욕적인 것”이라며 강하게 반발하자 미국은 2004년 6월 중국 베이징에서 개최된 3차 6자회담부터 이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미국조차 상대국을 고려해 사용하지 않은 단어가 위안부 합의에 버젓이 명시된 것이다.

문제는 이 합의에 대한 책임을 2년도 채 남지 않은 박근혜 정부가 아니라 영속해야 할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이 져야 한다는 점이다. 불가피한 합의의 필요성이 있었다 하더라도 향후 한반도 평화체제 수립과 남북통일 과정에서 ‘히든카드’로 활용할 수도 있는 일본과의 역사문제를 이처럼 ‘불가역적인 합의’로 못박아버린 결과에 대한 후과를 누가 감당할 것인가?

새해 들어 한반도는 1월 6일 북한의 제4차 핵실험, 2월 7일 장거리 로켓 발사, 2월 10일 박근혜 정부의 개성공단 전면 중단 선언, 2월 11일 북한의 개성공단 전면 폐쇄 및 자산동결 등으로 격랑에 휩싸인다.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은 중국의 핵 억제력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주한미군의 사드 배치 카드를 사용했다. 유엔 안보리의 대북제재 강화 결의안에 중국을 끌어들이기 위해서다. 박 대통령이 미국과의 공조를 통해 사드 배치를 중국 압박용으로 사용했다는 점은 안보리 결의 전날 “과거의 예를 볼 때 중국으로서는 한반도에서 미국의 전략적 존재가 강화되는 데 굉장히 경계감이 많았다”는 청와대 관계자의 발언을 통해서도 확인된다.

결국 박 대통령은 취임 이후 미국의 눈치를 보면서까지 공을 들여온 중국과의 ‘라오펑유(老朋友·오랜 친구)’ 관계를 한 순간에 까먹었다. 사드 논의를 피할 수 없었다 치더라도 최소한 먼저 애걸하는 모양새보다는 미국 정부의 강요를 마지못해 받는 식의 외교적 수사를 구사할 수는 없었을까? 중국 대외정책을 대변하는 환구시보(環球時報)는 최근 “(사드 배치시) 한중 간 신뢰가 엄중한 손상을 입게 될 것이고, 한국은 그로 인해 발생하는 대가를 치를 준비를 해야만 할 것”이라고 경고했다.

전문가들도 전승절 참석과 사드 배치로 오락가락하는 현 정부의 대중국 외교를 우려섞인 시선으로 바라보고 있다. 신기욱 스탠퍼드대 아시아태평양연구센터 소장은 지난 9일 삼성그룹 수요 사장단회의 강연에서 ‘미중 관계에서의 한국의 역할’을 주제로 “한국이 미국과 중국 사이에서 ‘균형’을 잘 맞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중국이 당장은 미국의 힘에 눌려 사드 배치를 피하기 위한 전략을 고민하겠지만, 중국 정부가 한국을 ‘미국의 동북아 군사전략의 한 축’이라고 규정할 경우 앞으로 한중관계는 크게 위축되고 냉각될 수밖에 없다. 한국경제의 최대 파트너이자 미래 통일한국과 국경을 맞댈 중국과의 관계악화에 대한 책임은 누가 질 것인가?

외치에서 박 대통령의 최대 악수 중 하나는 아무래도 남북관계 최후의 보루였던 개성공단 전면중단이다. 개성공단 설립은 남북이 군사적으로 가장 첨예하게 대립하던 서부전선을 개성공업지구 이북으로 북상시켰다. 서울과 가장 가까운 휴전선을 지키던 북한의 전차와 자주포부대 등 많은 병력이 개성공단 이북으로 재배치됐다.

그동안 북한 군부는 개성공단 때문에 전략 요충지와 대남 진격로를 넘겨주고 훈련도 제대로 못하면서 경제적으로도 손해를 봤다는 불만을 강하게 표출해왔다. 결국 개성공단 중단 카드는 북한군의 재배치를 불러와 한국이 개성공단을 통해 얻었던 안보적·경제적 이익을 사라지게 만든다.

개성공단은 동서독 분단 당시 평화적 완충지대로 작동했던 동독 내 서베를린의 안보적 가치와도 비견할 수 있는 곳이다. 지난해 12월 한국의 신용등급을 상향조정한 국제신용평가사 무디스는 지난달 13일 “개성공단 폐쇄는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켜 한국의 국가신용에 부정적 영향을 줄 것”이라고 경고했다. ‘코리아리스크’를 ‘코리아프리미엄’으로 전환시켰다는 개성공단을 문 닫게 한 책임은 누구에게 물을 것인가?

◆ 외교에서 진보의 반대말은 보수가 아니라 퇴보

산업화와 민주화를 거치며 어렵게 쌓아올린 중견국가 한국의 외교적 자산과 레버리지(지렛대)는 많지 않다. 과거 미·소 냉전구도에서 북·중·러를 대상으로 북진정책을 펴온 결과가 바로 현 정부가 소진시키고 있는 자산들이다. 위안부 합의와 사드 배치, 개성공단 중단 과정에서 불가피한 외부의 압력이 있었더라도 국익을 최대한 지키는 방법으로 최소한 차기 정부가 운신할 수 있는 폭은 남겨줬어야 하지 않을까?

남북이 이성이 아닌 감정대결을 고집할 경우 “화약 냄새 나는 한반도”(왕이(王毅) 중국 외교부장)의 무력충돌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만에 하나 제2의 6·25전쟁이 발발한다면 한반도는 주변 강대국들의 전리품 신세를 면치 못할 게 자명하다. 지금 우리는 한민족의 공존이냐, 공멸이냐의 기로에 서있다. 박 대통령은 과연 임기 내에, 그리고 한반도에 무엇을 남길 것인가?

외교와 남북관계에서 진보의 반대말은 보수가 아니라 퇴보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선임기자 (medialyt@newspim.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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