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유럽중앙은행(ECB)의 회사채 매입이 8일(현지시각) 본격화됐다. 이에 따라 신용시장의 실질적인 개입이 단행된 셈이다.
채권시장은 이미 ECB의 정책 효과를 적극 반영한 가운데 시행 첫 날 행보에 관심을 집중했다. 투자자들은 ECB의 이번 결정이 유럽 회사채 발행을 폭발적으로 늘릴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출처=블룸버그> |
이날 업계에 따르면 ECB는 이탈리아 보험사 제네랄리가 발행한 회사채와 스페인 통신업체 텔레포니카의 10년 만기 회사채 및 프랑스 유틸리티 업체인 엔지의 5년 만기 회사채 등을 매입한 것으로 알려졌다.
ECB는 매입한 회사채에 대한 구체적인 내역을 오는 7월까지 공개하지 않을 예정이다. 하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거래 동향과 수익률 추이 등 지표를 통해 ECB의 움직임을 파악하고 있다.
지난 해 3월 이후 1조유로 규모로 국채를 사들인 ECB는 자산 매입 프로그램을 우량 회사채로 확대, 기업 투자를 진작시켜 실물경기를 회복시키는 한편 인플레이션을 목표 수준인 2.0%로 끌어올리겠다는 복안이다.
비전통적인 회사채 매입의 성공 관건은 일차적으로 채권시장의 왜곡을 일으키지 않으면서 기업에 자금을 공급할 수 있을 것인지 여부와 실제 기업들의 투자를 증가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데 있다.
유로존 채권시장은 이미 한 차례 파란을 일으켰다. 이날 영구 파이낸셜타임즈(FT)에 따르면 지난 3월 ECB의 회사채 매입 계획 발표 후 수익률이 가파르게 하락, 시장 전체 평균 수익률이 1% 아래로 떨어진 상황이다.
이날 장중 유로존 회사채 시장의 평균 수익률은 0.85%에 근접하며 사상 최저치 기록을 세웠다.
시장 전문가들은 유로존 신용시장이 폭발적인 외형 확장을 이룰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딜로직에 따르면 4월 둘째 주 회사채 발행액이 217억달러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한 바 있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는 특히 투자등급 회사채 발행이 5년 이내에 두 배 확대, 2021년까지 2조5000억유로에 이를 것이라는 전망을 내놓았다.
시장 전문가들은 ECB가 시장 왜곡을 초래하지 않고 회사채 매입 프로그램을 가동할 수 있을 것인지 주시하고 있다.
유로존의 투자등급 회사채 시장은 5000억~6000억유로로 파악됐다. 하지만 프랑스와 네덜란드 대기업이 상당한 비중을 차지하고 있고, 관련 기업은 이미 자금줄을 충분히 확보하고 있어 ECB의 값싼 유동성이 필요하지 않은 상태다.
아울러 회사채 매입이 기업의 투자로 이어질 것인지 의문이라는 데 투자자들이 입을 모으고 있다.
ECB가 회사채를 매입한 것으로 알려진 제네랄리와 텔레포니카는 앞으로 레버리지를 축소하는 데 주력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ECB가 공급한 유동성이 투자보다 기존의 부채를 상환하는 데 동원될 여지가 높다는 얘기다.
알베르토 갈로 알제브리스 인베스트먼트 매크로 전략 헤드는 CNBC와 인터뷰에서 “실물경제 회복을 위한 투자가 이번 ECB의 프로그램으로 활성화될 것인지 여부가 관건”이라며 “지금까지 ECB가 다른 통로로 저리 자금을 공급했지만 유로존의 고용과 투자는 여전히 침체 국면”이라고 지적했다.
한편 ECB는 회사채 매입 규모를 월 800억유로로 밝힌 바 있다. 업계 애널리스트는 ECB가 시장 움직임을 주시하며 속도 조절에 나설 것으로 내다보고 있다.
최근 모간 스탠리는 투자 보고서를 통해 거래가 한산한 여름철을 이용해 활발하게 매입하는 한편 발생시장뿐 아니라 유통시장에서도 적극 나설 것으로 예상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