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조인영 기자] 정부가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가능성을 저울질하고 있다. 해운업의 장기 침체를 감안해 회사를 하나로 합쳐 경쟁력을 높여야 한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이번 합병은 재무환경 개선이나 시장 지배력, 영업력 제고면에서 어느 하나 득 될 것이 없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적인 의견이다. 오히려 두 해운사가 유지되는 방향이 바람직하며, 이에 맞는 적절한 지원이 요구된다는 지적이다.
▲ 로테르담 항에 입항 중인 현대상선 컨테이너선. <사진=현대상선> |
14일 해운 전문가들은 글로벌 해운사들의 합병 사례를 예로 들면서, 시너지가 전제된 합병이 바람직하며 그렇지 않은 단순 합병은 지양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글로벌 선사들은 합병으로 규모의 경제를 실현하며 지배력을 확대하고 있다. 지난해 12월 프랑스 선사인 CMA-CGM은 아시아와 북미항로에 특화된 싱가폴 APL 인수를 통해 노선 포트폴리오를 강화했다.
아시아~유럽/지중해, 아프리카, 라틴아메리카 위주로 노선을 운영하던 CMA-CGM은 이번 합병으로 북미 지역 시장점유율이 7%에서 19%로, 전체 점유율은 8.8%에서 11.5%로 늘어났다.
중국 양대 국적선사인 코스코홀딩스와 차이나쉬핑컨테이너라인(CSCL)도 하나로 합치면서 세계 컨테이너선복량 4위로 올라섰다.
최근 M&A를 추진중인 독일 하팍로이드와 쿠웨이트 UASC 역시 선대 보완과 노선 포트폴리오 다양화를 위한 시너지가 예상되면서 한진-현대와 대조를 보이고 있다.
해운업계 관계자는 "합병 시 하팍로이드는 UASC가 보유한 1만8000TEU급 이상의 선박 6척을 갖게 되며, 중동 지역 화주들을 유치하게 되는 이득도 생긴다. 얼라이언스도 서로 달랐기 때문에 선대 사업구조로 보완할 수 있는 시너지가 많다"고 설명했다.
특히, 하팍로이드는 92만4000TEU를, UASC는 53만3000TEU의 선대를 갖추고 있어 합병 시 선복량은 145만8000TEU로 늘어나게 된다. 이는 머스크, MSC, CMA-CGM(+APL), 코스코(+CSCL)에 이어 다섯번째 규모다.
반면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은 부정적으로 진단했다. 아무리 봐도 시너지가 나지 않는다는 판단에서다.
KMI 관계자는 "양사 모두 70% 이상을 컨테이너선으로 운영하고 노선도 북미와 유럽에 특화돼있는 등 사업구조가 상당히 겹친다. 합병 시 조직 축소로 일부 인건비 절감은 있을 것으로 보이나 그마저도 비중이 적어 큰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별다른 시너지 효과는 없을 것"으로 진단했다.
화주들의 이탈 가능성도 제기했다. 그는 "합병으로 사라지게 되는 회사와 거래하던 화주들은 거래 종료 후 이탈할 가능성이 높다. 외국계 선사들이 발빠르게 나서 국내 화주들을 대상으로 운임 경쟁을 시도할 것"이라고 말했다.
한종길 성결대 동아시아물류학부 교수는 합병 논의 자체가 "국제해운의 거래 관행과 영업질서를 고려하지 않은 우스꽝스러운 (합병) 논의"라고 꼬집었다.
그는 "1990년대 초반 미국과 EU의 공정거래법 개정으로 유명무실화된 해운동맹(쉬핑컨퍼런스)와 기업간 전략적 제휴(얼라이언스)를 구분하지 못하고 무분별하게 해운동맹이라고 지칭하는 것에서 알 수 있듯이, 해운에 대한 정부와 금융기관 이해가 아직도 부족하다"고 지적했다.
합병을 하더라도 운임만 높아질 것으로 우려했다. 한 교수는 "5대 외화획득 산업인 해운산업의 외화획득에 차질이 생기며, 우리나라 서비스 무역의 역조현상이 심화될 것"으로 예상했다.
다른 해운업계 관계자는 "단순 비용절감만 예상되는 합병이 이뤄져선 안된다. 뚜렷한 목적 아래 추진된다 하더라도 시너지를 보기까지는 상당한 시일이 소요된다는 것도 종합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며 "글로벌 경쟁력을 제고하기 위해선 오히려 선사들이 각자도생 할 수 있도록 현실적인 지원이 더욱 시급하다"고 말했다.
앞서 정부는 한진해운과 현대상선의 합병 가능성을 처음으로 공론화했다. 지난 13일 임종룡 위원장은 정례 기자간담회에서 "한진해운의 정상화 추진 상황을 봐가며 합병 또는 경쟁체제 유지 등 다양한 방안을 검토하겠다"고 밝혔다.
최근까지도 "시기상조"로 일관해오던 정부가 이날 처음으로 합병 카드를 꺼내면서 양사의 합병 가능성 및 효과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는 모습이다.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