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나래 기자] 오늘 9월 시행을 앞둔 김영란법(부정청탁 및 금품 등 수수의 금지에 관한 법률)은 논의 과정에서 당초 취지와 다르게 변질됐다는 비판을 받고 있다. 당초 김영란법은 공직자들을 규제 대상으로 삼았지만 심의 과정에서 사립학교 교사와 언론인 등 민간영역으로 확대되며 혼란을 가져왔다는 것이다.
김영란법의 개정을 촉구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는 가운데 헌법재판소의 위헌 여부 결정이 주목된다.
대한변호사협회 등이 제기한 헌법소원은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제재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 배우자 신고의무 조항이 양심의 자유를 침해하는지 등이 핵심 쟁점이다. 정치권에선 헌재의 결과를 지켜본 후 본격적인 논의가 이뤄질 것으로 예상된다.
◆ 김영란법 논의과정에서 '법안 취지' 변질
지난해 3월 국회 본회의에서 통과된 김영란법은 2011년 6월 김영란 당시 국민권익위원장이 국무회의에서 ‘공정사회 구현, 국민과 함께하는 청렴 확산 방안’을 보고하며 처음 제안됐다. 2010년 '스폰서 검사', 이듬해 '벤츠 여검사' 사건 등 공직자의 잇단 부정부패 사건이 계기가 됐다.
초안은 '공직자의 청탁 수수 및 사익추구 금지법'으로 "대가성과 직무관련성이 없더라도 부정한 청탁을 받은 공무원은 처벌하겠다"는 것이 주요 골자였다. 이후 2012년 8월 권익위는 공직자가 금품 등을 100만원 초과 수수하면 형사 처벌을 받는 내용의 원안을 입법 예고했고, 2013년 7월 국무회의를 통과했다. 국회로 넘어가 정무위원회에 법안이 상정됐지만 ‘법의 적용대상이 광범위하고 위헌소지가 있다’는 이유로 더 이상 진전되지 않았다.
하지만 2014년 4월 발생한 세월호 참사가 김영란법 통과의 계기가 됐다. 참사의 원인으로 '관피아'(관료+마피아) 문제가 지목되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국회에 김영란법의 조속한 처리를 요청하게 된다.
그러나 논의 과정에서 원안에 없던 민간 영역인 사립학교 교원과 언론인이 포함되면서 '과잉입법' 논란이 일었다. 시민단체와 변호사 등 사회적 영향력이 큰 전문직이 제외되며 형평성 논란이 더해졌다. 부정청탁 기준의 모호성, 수사기관의 수사권 남용 가능성, 배우자 신고 의무 등도 도마에 올랐다.
당시 정무위 법안소위에서 김영란법 논의를 주도했던 김용태 새누리당 간사는 "처음에는 국회의원, 장차관 등 고위공직자 5만명만 시작해 보고 넓히자고 했다"며 "또 부정청탁 범위가 넓으니 금품수수만이라도 먼저 해보자. 특히 직무와 관련이 있어 대가성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만원짜리라도 처벌하자"라고 주장한 바 있다.
김기식 더민주 전 의원(당시 정무위 더민주 간사)도 "김영란법은 전 세계 유례없는 포괄적이고, 강력한 입법인 것은 분명하다"며 "처음 이 법이 제출될 당시 나는 '이런 포괄적인 입법은 문제가 있다'고 주장했다"고 밝혔다. 김 의원도 김영란법 일부를 개정할 필요성에는 공감한다는 입장을 보였다.
당초 고위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뿌리잡자는 취지에서 출발한 김영란법은 법안 논의 과정에서 민간의 교육자와 언론까지 포함되면서 과잉 입법 논란이 번졌다. 특히 김영란법 대상이 공공기관과 언론사, 교육기관의 정규직뿐 아니라 계약직까지 포함되는 것으로 확인돼 전혀 상관없을 것 같던 서민들까지 범법자로 만들 것이라는 우려까지 나오고 있다.
◆ 정치권 수정론 봇물…김영란법 헌법소원 핵심 쟁점들은?
시행이 3개월여 앞으로 다가온 가운데 마지막 변수는 헌법재판소의 판단이다. 현재 가장 큰 쟁점은 언론인과 사립교원을 적용 대상에 포함시키는 게 과잉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 여부다. 법적용 대상을 민간 영역까지 확장한 것은 위헌 소지가 있다는 것이 변협의 지적이다. 현재 김영란법은 공무원이나 공공기관 임직원뿐만 아니라 사립학교 교직원과 언론사 임직원까지 적용 대상자로 규정한다.
채명성 대한변호사협회 법제이사는 변협이 개최한 토론회에서 "엄격한 법 적용이 요구되는 공직자의 범위에 그 성격이 전혀 다른 민간영역, 그 중에서도 언론과 교육으로 한정해 법적용 대상에 포함시킨 것은 헌법상 평등권을 침해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공직자가 배우자의 금품수수 사실을 인지했으면 배우자를 반드시 신고하도록 한 조항도 논란의 대상이다. 헌법상 양심의 자유를 지나치게 제한하고 가족 관계를 악화시킬 수 있다는 비판과 함께 배우자가 금품을 받았을 경우 공직자를 처벌토록 한 조항은 헌법에서 금지한 '연좌제'에 해당하다는 비판도 있다.
이와함께 법조계는 김영란법의 애매모호함을 지적하고 있다. 김영란법 위반자의 경우 형법으로 다스리는 만큼 명확성이 결여된 조항이 있다는 것이 문제라는 것이다. 김영란법 제5조는 누구든지 공직자 등에게 법령에 위반되는 부정청탁을 해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6조는 부정청탁을 받은 공직자 등은 청탁에 따라 직무를 수행하지 못한다. 하지만 법적용의 기본이 되는 '부정청탁'이라는 개념 자체가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도 있다.
헌재는 또 금품의 범위를 법률에 대강이라도 한정하지 않고 시행령에 위임한 것이 포괄위임금지 원칙에 위배되는지도 판단해야 한다.
검찰의 권한이 지나치게 비대해지고 이로 인한 권한 남용, 자의적 수사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지적도 나온다.
헌재는 9월28일 법 시행일 전에 위헌 여부에 대한 결론을 내릴 방침이다. 헌재가 대통령령 위임조항을 위헌으로 선고한다면 시행령안은 사실상 효력이 사라지게 된다. 하지만 헌재가 해당 조항에 대해 위헌이라고 판단해도 김영란법 전체가 위헌이라는 의미는 아니기 때문에 해당 조항만 빠질 뿐 법 시행에는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보인다는 것이 대다수 전문가들의 관측이다.
헌재의 판결과 별개로 김영란법이 국회의 소관 상임위인 정무위원회에서 재검토가 이뤄질 것이라는 전망도 나온다.
이진복 정무위원장은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오는 9월 시행을 앞두고 관심이 집중되고 김영란법에 대해 이해단체들이 우려를 표하고 있어 가볍게 넘길 수는 없다"며 "업무 보고와 여러 의원들과 얘기를 나눌 예정"이라고 밝혔다.이 위원장이 그동안 발언을 비추어 봤을 때 개정 가능성을 열어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온다.
여야가 김영란법을 보완해야 한다는 데 대체로 의견이 일치하기 때문에 위헌 결정이 나거나 법 시행 이후 부작용이 노출되면 본격적으로 법 개정 작업에 나설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
[뉴스핌 Newspim] 김나래 기자 (ticktock0326@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