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조인영 기자] 현대중공업이 3조5000억원의 자구안을 내놨다. 인력 구조조정을 실시하면서 일부 사업은 분사하기로 했다.
현대중공업이 기대하는 것은 흑자경영과 재무건전성 제고다. 그러나 노조는 분사는 정기선 전무의 경영승계를 염두한 작업이며, 다단계 하청화로 노조를 무력화시키려는 음모라고 주장한다.
일과를 마치고 울산조선소에서 퇴근중인 현대중공업 직원들. 곳곳에 크레인이 보인다. <사진=방글 기자> |
지난 20일 파업을 앞두고 전운이 감돌고 있는 울산조선소를 찾았다. 이날 울산은 현대중공업의 경영위기와 노사갈등 상황을 대변하듯 을씨년스러운 분위기를 풍겼다.
수 차례 연락에도 구조조정 이슈로 줄곧 면담을 거절해오던 노조를 울산을 방문해서야 가까스로 만날 수 있었다. 야드 출입을 차단해 정문 근처 후생관에서 노조가 말하는 구조조정의 쟁점을 물어봤다.
노조 관계자는 “조선업이 어려운 마당에 뭘 해도 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언론을 등에 업고 마음대로 비핵심업무로 지정해 자회사로 만들겠다는 거다. 그래놓고 반발하니까 임금 보전해주고 정년도 3년 더 연장해주겠다고 꼬시고 있다. 우리는 다단계 하청시키겠다고 본다. 이윤을 더 많이 뽑겠다는 거다. 일단 이것만 정리해놓으면 이후엔 자연스럽게 계열회사 수순이 된다”고 설명했다.
인력감축에 대해선 “매년 1000명에서 1200명 사이 자연감소자가 발생한다. 안 그래도 나갈 사람 천지다. 일도 안 시키고 일시금을 줘가면서 내보내는 게 뭐하는 건지 모르겠다. 부채비율 제일 낮고, 수주잔량 제일 높고, 계열사 제일 많은 회사가 가장 설치는 꼴”이라고 비판했다.
이어 “작년 매출 23조원에 인건비는 2조(8.8%)원이다. 직원 2만5000명 중 10%를 자르면 2500명이 나가게 된다. 2000억원 줄이자고 2500명을 거리로 내모는 것이 맞나. 2000억원 아끼려면 오일뱅크 지분 10%만 팔아도 충분하다”고 꼬집었다.
그러면서 현대터보기계 사례를 예로 들었다. “지금은 임금을 지켜준다고 하지만 법적 효력을 가질 수는 없지 않나. 자회사라고 해서 모회사 따라 임금체계가 적용되는 것은 아니다. 현대터보기계가 실제로 그런 상황 아닌가. 비조합원들이 거기로 갔는데 연봉제를 적용했다. 특근 수당이 없다. 항의하니 그제서야 60시간 기준 연봉이란 걸 얘기해줬다. 회사와 노동자가 생각하는 연봉 기준을 마음대로 달리 잡아 놓은 거다.”
노조는 인력조정 없이 오일뱅크 상장만으로 유동성을 만회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오일뱅크를 상장하면 에쓰오일(10조 시가총액) 정도의 가치가 된다고 전문가들이 보고 있다. 지분 92% 중 30%만 팔자. 그러면 3조원이 들어온다 하니 회사는 절대 못한다고 말한다. 자구안 계획 안에도 들어가 있지 않다. 사람은 잘라도 그건 아깝다는 거다.”
결국 이번 구조조정은 대주주인 정기선 전무의 경영승계를 위한 포석이라는 판단이다. “입수한 문건엔 ‘비핵심 업무의 외주화’가 적혀 있다. 조선·해양 다 빼놓고 분사하겠다는 건데 붙이기 나름이다. 조선 업무에서도 신호수 같은 경우 ‘너 비핵심업무’ 해버리면 조사대상이 되는거다. 한 문장 안에 회사가 원하는 게 다 들어있다. 자기네 말로는 ‘독립경영체제 확립’이라고 적혀있다. 입수 문건의 최초 유포자로 의심되는 직원이 최근 징계위원회에 올라갔다.”
이와 함께 “권오갑 사장은 오일뱅크에서도 구조조정했던 사람이다. 지금도 경영쇄신 보다는 구조조정에 몰두하고 있다. 정기선 전무는 이대로 진급하면 내년에 사장이 된다. 이런 맥락으로 보면 큰 덩어리는 축소하지 않되, 지주 형태에 가까운 조선·해양만 남기고 나머지는 계열사 형식으로 문어발처럼 만들어놓겠다는 그림”이라고 밝혔다.
이어 “기업활력제고법이 통과되면 계열사끼리 분할·합병을 이사회에서만 충분히 할 수 있다. 회사가 왜 막가파로 나가는 지 알 수 있는 대목이다. 다른 이유는 없다. 분사하고 임금 줘서 내보내는 거 구조조정에 별로 도움되지 않는다는 것은 계산하면 다 나온다. 외려 분사하면 출자해야 되고 돈이 필요하다. 돈 없다면서 돈을 내놓고 있다. 희망퇴직도 가만히 있어도 나갈 사람들을 돈 줘서 내보내나. 대주주의 의지가 반영됐다고 본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노조는 경영진 퇴진운동 뿐 아니라 불합리한 임금체계도 정상화시키겠다고 말했다. 노조 측은 “경영진 퇴진 운동을 하고 있다. 최길선 회장은 현대미포로 쫓겨났던 이유 중 하나가 방만경영 때문이다. 이런 사람들이 노사 갈등을 일으키는 장본인”이라고 말했다.
이어 “조합원들은 이번에 왜 기본급이 중요한 지 느꼈을 거다. 그 전엔 성과급 400%, 1000만원씩 받으니까 좋아했지만 지금은 다르다. 임금협상 마무리가 잘 되더라도 격려금이나 가져갈 몫이 굉장히 줄어든다. 이번기회에 고정급에 대한 중요성을 노조원에게 강조할 생각이다. 임금 기준에 변화를 갖도록 조합의 방향을 바꿀 생각”이라고 덧붙였다.
노조의 주장에 대한 회사의 입장도 들어봤다. 사측 역시 사업장 방문을 상당히 조심스러워하며 야드가 아닌 외부에서 만날 것을 요청했다.
회사는 현대중공업의 현재 재무건전성이 상당히 건전하다는 것에 대해 공감하면서도 노조가 말하는 구조조정안 반대이유에 대해선 조목조목 반박했다.
사측은 유동성 리스크에 대해 먼저 설명했다. 그는 “우리 부채비율은 134%다. 130%만 해도 기업은 정상이다. 근데 수주 절벽이 있다보니 은행에서 돈을 못빌려주겠다고 한다. 안 빌려주면 자산을 팔아 메우는 것이 문제가 아니다. 만기가 돌아올 때 제대로 안 돌아가는 것이 문제”라고 말했다.
이어 “노조가 말하는 사내유보금 13조원 중 현금성으로 분리할 수 있는 건 2조원 밖에 안된다. 건물이나 이런 것도 팔면 되지 않냐고 얘기하는 데 그 다음에 우리가 쓸 수 있는 여력은 사라진다. 쉽게 말해 카드 한도를 다 쓰자는 말이나 다름없다”고 덧붙였다.
오일뱅크 지분 매각에 대해서도 언급했다. “무작정 상장 시키면 기업 입장에선 마이너스일 수 있다. 최대 주주이긴 하지만 회사 가치를 깎을 수 있는 부분이다. 지분을 파는 건 근본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또 안 좋아졌을 때는 팔 게 없는데 그 때 가선 어떻게 할 거냐.”
현대중공업은 올해 매출이 지난해 보다 12.5% 줄어든 21조원 수준에 그칠 것으로 보고 있다. 내년에는 30% 더 축소될 것이라는 전망이다. 매출이 하락하는 데 케파와 인력 효율화는 불가피하다는 주장이다. 사업 영역 축소에 따른 분사의 필요성도 언급했다.
"우리는 매출 대비 인건비 비율이 타사와 맞지 않는다. 타사들은 조선·해양 비율로 매출 대비 인건비를 계산한다. 우리는 전기전자나 건설장비, 엔진 등 여러사업본부가 있다. 전기전자는 효성이나 LS산전, 건설장비는 두산인프라코어, 엔진은 두산엔진이나 STX엔진 등과 눈높이가 맞아야 한다. 근데 대우조선이나 삼성중공업에 맞춰져있다. 당연히 경쟁이 안된다."
이어 "정비보수 같은 경우는 사전예방도 있지만 실제로 문제가 발생했을 때 일을 진행하는 거다. 회사입장에선 별도로 빼서 이 사람들만의 경쟁력을 만들게 해야 한다는 입장이다. 연봉 8000~9000만원인 사람들이 전기 갈고 있으니 회사에선 경쟁력이 떨어진다고 판단하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하청화 우려에 대해선 "하청은 별도로 업체가 물량을 받아서 진행하는 거다. 여긴 100% 자회사다. 자회사가 어떻게 하청이 되나. 그렇게 되면 현대오일뱅크나 삼호중공업도 하청"이라며 전면 부정했다.
반면 분사에 따른 이득도 설명했다. "이분들을 월급을 깎아서 내보낼 수는 없다. 동일한 조건으로 보낸다. 이 업체는 분사 후 새로 들어오는 사람들에게 새로운 인건비 체계를 정할 수 있다. 또 독립법인이 되면 현대중공업 뿐 아니라 유사업종과도 거래할 수 있다."
그러면서 사업 축소의 당위성에 대해 재차 강조했다. "우리는 2014년 9월부터 선제적으로 자구노력을 해왔다. 그런데도 지금 이 단계에서 예측치 못한 수주절벽에 또 다시 부딪쳤다. 선제적으로 준비하지 않으면 죽을 수 밖에 없다. 기업 입장에선 생존을 위한 몸부림이 필요하다. 안일하게 대처했다가는 더 큰 피를 흘리는 것은 불 보듯 뻔한 일 아닌가."
한편, 현대중공업 노조는 지난 17일 파업 결의를 한 데 이어 20일엔 중앙노동위원회에 노동쟁의 신청을냈다. 중노위선 열흘간 조정 절차를 진행하고 조정안을 내릴 예정이다.
중노위의 조정중지나 행정지도 명령에 따라 노조의 합법적 파업이 가능하다. 올해 노사 갈등이 장기화될 것으로 전망되면서 재작년 사례처럼 임단협이 해를 넘길 가능성도 제기된다.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