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 = 전민준 기자] 세계1위의 한국조선이 경영난에 따른 구조조정으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는 가운데 앞선 2000년대 초 같은 처지에 몰렸던 일본 조선사들의 위기대처법에 관심이 모아지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 밀려 3류 조선국가로 전락했던 일본은 정부 및 조선업계가 강력한 선제적 구조조정을 펼쳐 재기에 성공했다는 평가다.
11일 조선업계와 일본 현지 언론에 따르면 2000년대 들어 일본 정부는 조선업 경쟁력을 한층 강화하기로 하고, 인수합병(M&A) 등 과감한 구조조정을 단행했다. 정부 주도로 조선사에 대해 통폐합을 실시해 수십 개에 이르던 조선사를 5곳으로 줄이고, 각 조선소마다 경쟁력 있는 분야를 집중 육성하는 정책을 펼쳤다.
실제 2003년 1월 건조량 2위 규모였던 조선사 유니버셜조선과 7위 규모였던 IHI마린유나이티드가 통합, JMU로 탄생했다. 또 같은 해 이마바리조선과 미쓰비시중공업은 LNG선 사업부를 합병해 MI-LNG를 신설했다. 이를 통해 일본산업은 JMU, 이마바리조선, 미쓰비시중공업, 가와사키중공업, MI-LNG의 5개사 체제로 재편했다.
그로부터 10여년 지난 지금 일본 조선사들은 앞서가던 한국과 중국의 위기를 틈타 새로운 조선 강자로 부상하고 있다.
이마바리조선은 지난해 6월부터 글로벌 수주량 3위를 꾸준히 기록하고 있고, 최근에는 초대형 도크를 신설하고 친환경 선박 개발 등 투자도 늘리고 있다. 아울러, JMU는 전국 조선소 7개소를 컨테이너선·자동차운반선·탱커 등으로 각각 특화해 효율성을 극대화하고 있다. JMU는 2013년 이후 매년 50~100억엔의 영업익을 창출하고 있다.
홍성인 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일본정부는 구조조정 종류에 따라 보증, 융자 등을 적극 지원하고 있다"며 "정부주도로 히타치조선‧나무라조선, 스미토모중공업‧오시카조선소 등을 구조조정 해 현재 5개 그룹까지 줄였고 시너지 극대화를 위해 준비 중이다"고 설명했다.
앞서 일본정부는 대형‧중소 조선소 상생전략을 구사하기로 하고, 경쟁력이 떨어지는 중소 조선업체들이 대형 조선업체라는 '우산 속에서 생존' 할 수 있도록 했다.
대표적인 사례로 미쓰비시중공업-이마바리조선, 히타치조선-나무라조선, 스미토모중공업-오시마조선의 상생협력을 들 수 있다. 대형 조선소는 비조선부문에 집중하는 한편 중소 조선사가 벌크선 등 차별화 전략을 구사할 수 있도록 기술적 측면에서 지원한 것이다.
이에 따라 2000년 이전 일본 전체 조선 시장의 80%가량을 웃돌던 대형 조선업체의 선박 건조 비중은 2000년 이후 중소 조선사에 따라잡혔고, 2010년 이후 20%대로 떨어졌다.
홍 연구원은 "중소 조선사들이 점차 현 일본 조선업을 이끌고 있는 중심축이 됐다"며 "중소 조선사가 상대적으로 수요 변동이 적은 벌크선 양산에 집중해 지금에 이르렀다"고 전했다.
일본정부 차원의 구조조정과 별도로 중소 조선사 자체적인 움직임도 있었다. 조선소와 제철소, 선주, 금융기관 등이 밀집된 지역에 '해사클러스터' 조성을 주도한 것이다.
대표적인 곳이 오카야마현 세토 내해연안지역이다. 이 지역에서 닛폰유센, 쇼센미쓰이, 가와사키기선 등 3대 해운사의 중소 조선사에 대한 발주량은 80%를 넘어설 만큼, 선사와 연계한 해사클러스터가 원활히 작동할 수 있는 여건이 갖춰져 있었다.
세토지역에서 해사클러스터를 육성한 결과 이마바리, JMU, 쯔네이시 등은 자국 물량을 기반으로 건조를 시작한 LNG선, 극초대형 컨테이너선 등의 경쟁력을 강화시킬 수 있었다.
조선업계 관계자는 "일본은 조선, 항만, 해운, 연계산업 등을 상호간 매우 강한 유기적 연결을 갖는 산업생태계로서 인식했다며 "해사클러스터는 조선업계를 일체화 해 리스크를 흡수했고 이는 중소 조선사들이 어려운 환경에서도 살아남을 수 있는 힘이 됐다"고 말했다.
일본 조선이 한국과 중국의 위기를 틈타 재기에 성공했지만, 계속해서 조선 강자의 자리를 유지할 지는 미지수다.
홍 연구원은 "연구개발(R&D)과 설계 인력이 대규모로 줄면서 조선업 발전 핵심 역량이 훼손됐다"며 "일본은 아베노믹스 이후 엔저(円低)로 가격경쟁력을 회복하면서 선박 수주가 늘었지만 단기적인 효과에 그칠 것"이라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전민준 기자(minjun84@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