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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핌=김선엽 기자] 공룡펀드의 저주일까, 액티브펀드의 동반 몰락일까. 국내 자산운용사의 대표적인 액티브 펀드들이 고전을 면치 못하고 있다.
일각에선 펀드 수탁고가 1조원을 넘어감에 따라 운용에 어려움이 생긴 결과라고 지적한다. 반면 운용 당사자들은 펀드 규모와 수익률 사이에는 상관 관계가 없다는 입장이다. 단지 '장이 안 좋아서'란 설명이다.
11일 에프앤가이드에 따르면 지난달 30일 기준 1조원 이상의 주식형 액티브펀드 7개의 올해 수익률은 모두 마이너스다.
출시 2년 만인 지난해 돌풍을 일으켰던 메리츠코리아 펀드가 -9.94%로 가장 저조하다. 한국투자삼성그룹적립식2 역시 -9.38%로 부진을 씻지 못하고 있다.
특히 메리츠코리아의 경우, 펀드 규모가 1조5000억원에 이른 지난해 8월 이후 상승세가 확연하게 꺾이면서 많은 이들에게 공룡펀드의 저주를 떠올리게 했다.
공룡펀드의 저주란 펀드 설정액이 1조원을 넘으면 수익률이 떨어지는 징크스를 뜻한다. 2007년 시장을 휩쓸었던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인디펜던스·디스커버리 펀드가 글로벌 금융위기 때 직격탄을 맞으면서 부각됐다.
에셋플러스자산운용의 코리아리치투게더증권자투자신탁 역시 2014년 하반기부터 돈이 몰리면서 수익률이 꺾여, 공룡펀드의 저주에 시달렸다.
업계 일각에선 단순한 징크스가 아니라 운용상 불가피한 측면이 존재한다고 본다. 국내 주식시장이 작기 때문에 돈이 몰리면 담을 수 있는 종목에 한계가 있다는 것이다.
특히 하락장에서 펀드 환매가 몰릴 경우 '가격하락→환매 쇄도→보유종목 매도에 따른 가격하락'이라는 악순환이 발생한다는 것이다. 때문에 특정 펀드에 환매가 몰릴 경우, 그 펀드가 보유하고 있는 종목은 공격 대상이 되기도 한다.
이영진 유안타증권 상품기획팀 차장은 "공룡펀드의 저주는 실제 존재한다"며 "환매 자금이 몰리게 되면 포트폴리오 안의 종목을 시장에 매각할 수밖에 없는데 그게 조 단위면, 분산 투자를 했다고 해도 한계가 있다"고 설명했다. 이어 "특히 중소형주는 도저히 감당할 수 없는 수준에 다다를 수 있다"고 덧붙였다.
메리츠코리아 펀드 수익률 및 순자산 추이<출처:www.fundsupermarket.co.kr> |
하지만 반론도 만만치 않다. 운용 매니저의 투자 철학, 즉 가치주 투자 위주인지 성장주 위주인지에 따라 다르다는 것이다. 또 종목 관리 방식에 따라 1조원 이상의 펀드도 승승장구 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대표적인 경우가 신영밸류고배당 펀드다. 3조원의 자금이 몰리면서 업계 최대 수탁고를 자랑하지만 최근 1년 수익률이 1.55%로 다른 대형 펀드를 크게 따돌렸다. 다른 펀드들이 공룡펀드의 저주를 피해 '소프트클로징'(판매 잠정중단)을 택하기도 했지만 이 펀드는 그 조차 없었다.
전문가들은 신영이 초기엔 중소형주 종목을 위주로 담다가 펀드 규모가 커지자 대형주 비중을 늘리는 유연한 투자 전략을 취했기 때문에 수익률 방어에 성공한 것이라고 분석한다. 장기 가치투자에 집중한 것도 또 하나의 비결이다.
허남권 신영자산운용 부사장은 "우리가 투자하는 종목은 시장에서 좋아하는 핫 아이템이 아니므로 변동성이나 민감도가 낮다"며 "성장기업보다 성숙산업의 대표주, 즉 함께 오랫동안 갈 회사에 우리는 투자하고, 펀드 투자자들도 이를 잘 알기에 자금 유출입도 적다"고 설명했다.
한국투자네비게이터 역시 대형 펀드임에도 불구하고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과를 선보였다. 성장주에 투자하지만 벤치마크를 일정 정도 추종하는 전략을 선택한 결과로 해석된다.
그렇다면 많은 이들의 우려를 낳고 있는 메리츠코리아펀드는 앞으로 어떤 행보를 보일까. 이 펀드의 경우 보유 종목의 PER이 30.86으로 KRX100 평균인 11.10을 크게 웃돈다. 가치투자를 지향하면서도 화장품 등 성장주에 상당한 투자를 했기 때문이다. PBR 역시 4.03으로 업계 평균인 1.06을 크게 상회한다.
두 수치만 놓고 보면 투자자 입장에선 불안할 수도 있지만, 전문가들은 펀드 성격에 맞게 장기적 관점에서 성과를 지켜볼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메리츠의 경우 빠르게 회전을 시키며 매매차익을 추구하는 스타일이 아니므로 딱히 '공룡펀드의 저주'에 시달린다고 보기 어렵다는 것이다.
이민홍 한국투자증권 상품전략부 차장은 "(메리츠의) 담당 매니저가 장기적으로 성장 모멘텀이 있는 종목을 좋아하는데, 지금 시장은 그 동안 눌려있었던 대형 가치주가 올라오고 있는 상황"이라며 "현재의 시장 상황과 맞지 않아 수익률이 안 나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존 리 메리츠자산운용 대표 역시 "다수의 펀드 매니저들이 1조원 펀드를 운용하는데 어려움을 겪는 이유는 트레이딩을 하기 때문"이라며 "트레이딩의 개념이 아니라 투자의 개념으로 접근한다면 설정액 규모가 커져도 문제가 없다"고 자신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선엽 기자 (sunup@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