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이머징마켓이 다시 전성기를 맞았다. 미국 금리인상 움직임과 중국의 성장 둔화를 빌미로 자금 썰물을 이뤘던 신흥국 주식과 채권시장으로 자금이 밀물을 이루고 있다.
비관적인 목소리를 냈던 월가의 머니 매니저들도 적극적인 투자를 권고하는 한편 관련 지역의 자산을 늘리는 움직임이다.
파키스탄 증권거래소 <출처=블룸버그> |
한 가지 눈길을 끄는 것은 이들의 투자 논리다. 과거 브릭스(BRICs)라는 신조어가 등장한 이후로 어머징마켓은 늘 고성장을 앞세운 투자처였다.
중국의 경제 성장률이 둔화되긴 했지만 선진국에 비해 신흥국의 성장률이 상대적으로 높은 것은 지금도 마찬가지다.
하지만 월가의 투자자들이 다시 발길을 이머징마켓으로 돌린 배경은 따로 있다. 불황을 맞은 선진국 경제 및 자산시장에서 탈출, 대안으로 찾은 곳이 이머징마켓이라는 얘기다.
자산 규모 4조6000억달러의 블랙록의 세르지오 트리고 파즈 이머징마켓 채권 포트폴리오 매니저는 최근 글로벌 자산시장의 유동성 흐름을 ‘대이동’이라고 지칭했다.
대형 기관 투자자들을 필두로 마이너스 금리와 극심한 저성장의 늪에 빠진 선진국에서 이머징마켓으로 이전이 두드러진다는 얘기다.
파즈는 영국 파이낸셜타임즈(FT)와 인터뷰에서 최근 현상은 단순한 전략적 유동성 이동이 아니라고 강조했다.
그는 “선진국에서 신흥국으로 자금을 옮기는 기관은 연기금과 국부펀드 등 말 그대로 글로벌 자산시장의 ‘큰손’들”이라고 강조했다. 자금 추이의 변동성이 높은 뮤추얼 펀드에 제한된 얘기가 아니라는 것.
중국과 인도를 포함한 대표적인 신흥국 이외에 폴란드와 파키스탄까지 자금이 홍수를 이루는 것은 브릭스 전성기의 투자 패턴과는 전혀 상이한 논리를 배경으로 한 것이라고 그는 강조했다.
코메르츠방크의 피터 킨셀라 이머징마켓 리서치 헤드 역시 같은 의견을 내놓았다. 최근 이머징마켓의 유동성 홍수는 흡입 요인이라기보다 촉진 요인에 의한 것이라는 주장이다.
신흥국 자체의 투자 매력보다 자금을 몰아내는 선진국 측면의 요인이 자금 대순환의 배경이라는 얘기다.
선진국 중앙은행의 비전통적 통화정책이 대표적인 촉진 요인에 해당한다. 특히 연 7~8%의 수익률을 의무적으로 달성해야 하는 연기금 펀드 매니저들의 경우 마이너스 금리 정책을 시행 중인 선진국에서 답을 찾기 어려운 실정이다.
이와 함께 이머징마켓이 고성장-고리스크 특성을 지니는 반면 선진국 시장이 안전성을 확보하고 있다는 과거의 개념 역시 더 이상 통하지 않는다는 주장도 나왔다.
지난 6월23일 영국의 EU 탈퇴 결정에서 보듯 선진국에서 전세계 금융시장을 흔드는 충격이 발생하는 일이 부쩍 잦아졌다는 지적이다.
데이비드 호너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 이머징마켓 전략 헤드는 “신흥국 채권시장으로 뭉칫돈이 밀려든 가장 핵심적인 요인은 경제 펀더멘털 개선이 아니라 선진국의 전례 없는 금리 하락”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