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기업과 가계에 유동성을 공급해 실물경기를 부양한다는 복안으로 마이너스 금리를 시행한 마리오 드라기 유럽중앙은행(ECB) 총재가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은행과 보험업계가 비전통적 정책에 대응하기 위한 ‘꼼수’를 부리면서 의도했던 정책 효과를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유로화[출처=블룸버그통신] |
독일 한 지역 은행은 ECB와 동일한 수준의 마이너스 금리를 예금 고객들에게 적용하기로 했고, 유로존 금융권은 ECB에 지급해야 하는 이자 비용을 절감하기 위해 대형 금고를 포함해 현금을 보관하기 위한 대책 마련에 잰걸음을 하고 있다.
16일(현지시각) 주요 외신에 따르면 독일 라이파이젠은행은 10만 유로 이상 예금 고객에게 마이너스 0.4%의 금리를 적용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 은행에 10만달러를 예금한 고객은 연 400유로의 비용을 지급해야 하는 셈이다. 이 같은 규정을 적용 받는 고객이 제한적일 것으로 보이지만 시장 전문가들은 지역은행 및 시중은행의 마이너스 금리의 확산 여부에 주목하고 있다.
이와 함께 은행 측의 결정이 ECB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에 따른 의도하지 않았던 부작용이 본격화되는 신호로 볼 수 있다는 지적이다.
코넬리아 슐츠 독일은행협회 대변인은 CNN머니와 인터뷰에서 “은행권에 전례 없는 마이너스 금리가 등장한 것은 ECB의 파괴적인 정책 때문”이라고 비판했다.
마이너스 금리 정책은 ECB 이외에 스위스와 스웨덴, 덴마크 중앙은행도 시행하고 있다. 정책자들은 이를 통해 유동성을 공급, 기업 투자를 촉진해 실물경기를 부양하겠다는 계획이지만 오히려 은행권은 예금 고객과 기업에 비용을 전가하고 있다고 국제결제은행(BIS)은 최근 지적했다.
마리오 드라기 ECB 총재 <출처=블룸버그> |
예상 밖의 상황은 유로존 은행권과 보험 업계에서도 포착되고 있다. 금융업체들이 중앙은행에 예치한 자금을 빼 금고에 현금을 쌓기 시작한 것.
ECB가 추가 금리인하 가능성을 내비치자 이 같은 움직임이 더욱 확산되고 있다. 또 금융업체는 보다 저렴한 비용에 현금을 저장할 수 있는 방안을 찾는 데 골몰하는 움직임이다.
여기에 ECB가 2018년 500유로짜리 지폐 발행을 중단하기로 한 데 따라 금융권은 더욱 고민에 빠졌다. 현금을 고액권으로 저장할수록 필요한 공간과 비용이 줄어들기 때문에 같은 금액을 200유로짜리 지폐로 저장할 때 부담이 그만큼 커진다는 지적이다.
더 나아가 현금을 실물로 저장해야 하는 은행권은 강도와 지진, 그 밖에 예측할 수 없는 재난에 따른 리스크도 골칫거리라고 지적하고 있다.
하지만 정작 골치를 앓는 것은 드라기 총재다. 예치금을 되찾아 현금을 쌓아두는 현상이 금융권에 확산되면 의도했던 유동성 공급에 차질이 불가피하기 때문이다.
보험사 뮌헨 재보험이 ECB 예치금 중 수백만 유로를 현금화 해 저장하는 데 성공했고, 코메르츠 방크를 포함한 일부 은행 역시 같은 행보를 취하고 있다.
한편 2014년 ECB의 마이너스 금리 정책 이후 은행권이 부담한 이자 비용은 26억유로를 넘어선 것으로 집계됐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