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산=조인영 기자] 회생관리절차(법정관리)로 한진해운이 가압류된 선박은 4척. 육지로 들어오지 못한 채 부산항에서 멀찌감치 떨어져 법원의 가압류 철회만 기다리고 있는 '한진샤먼호'에 오르기 위해 부산항을 찾았다.
부산항에서 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한진샤먼호 <사진=조인영 기자> |
오전 9시30분 도착한 부산역에서 부산본부세관 통선장과의 거리는 자동차로 5분. 승선 허가가 늦어지는 우여곡절 끝에 10시 40분경 드디어 통선에 몸을 싣고 한진샤먼호가 있는 바다로 향했다.
조금씩 거세지는 바람을 타고 1시간 동안 바다 위를 가르자 마침내 '한진샤먼호'라고 적힌 컨테이너선의 모습이 눈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한진샤먼호는 6500TEU급 선박으로, 2007년 현대중공업이 건조했다. 선령(선박나이)는 9년으로, 길이 304m, 너비 40m이며 아시아 미주동안 노선인 AWH(All Water Hanjin)를 운항해 왔다.
컨테이너를 모두 내리고 휑뎅그레한 갑판. 저 멀리 부산 명지가 보인다. <사진=조인영 기자> |
부산을 출발해 파나마 운하를 거쳐 뉴욕, 윌밍턴 사바나항을 가는 한진샤먼호는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돌입하자 압류를 피해 파나마 대신 인도양과 대서양을 잇는 희망봉을 거쳐 부산으로 입항을 시도했으나 선박용 유류 공급업체인 월드 퓨얼 서비시즈가 연체된 기름값을 이유로 법원에 임의경매개시신청을 하면서 현재 가압류된 상태다.
기름값을 바로 갚고 억류된 한진샤먼호를 풀어주고 싶어도 해당 유류비가 법정관리 이전에 발생한 회생채권이어서 해결이 바로 되기 어렵다.
결국, 법원의 경매신청허가 철회만 기다리는 상황으로, 결정은 12월께 나올 예정이다. 그러나 한진해운과 한진샤먼호의 운명은 그 전에 결정될 가능성이 높다.
한진샤먼호는 한진해운이 매물로 내놓은 사선 5척 중 하나로, 매각 확정 시 배에 타고 있는 선원들의 고용승계 문제가 관건이다.
11시 50분께 한진샤먼호에 오르자 14명(외국인 선원 2명 포함)이 기자들을 반갑게 맞이했다.
선장, 기관장 등을 제외한 대부분의 선원들은 앳된 얼굴들이 많았는데, 해양대를 졸업하고 한진샤먼호에 오른 지 5년이 채 지나지 않은 사람들이 대부분이었다.
조종실 역할을 하고 있는 브릿지(Bridge, 선교)에 오르니 저 멀리서 부산 명지가 보였다. 한진샤먼호는 부산신항이 지정한 정박지 중 하나(W2)에 떠있는 상태로, 부산과의 거리는 불과 5km라고 한다. 바다에 떠있기만 하는 데도 부산항만공사에 내는 하루 정박 사용료만 400~500만원에 달한다.
브릿지 밖을 바라보니 컨테이너를 다 실어내려 휑뎅그레한 갑판이 보였다. 평상시엔 6~9개씩 컨테이너를 쌓아올리던 공간이었다.
▲임덕호 선장 "정치 문제에 한진해운 휩쓸려..선원들 군대 문제 안타깝다"
지난 6월 한진샤먼호에 오른 임덕호 선장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까지 오게 된 데에 상당히 안타까워하면서도 군대와 재취업 상황에 놓인 선원들을 가장 걱정했다.
임 선장은 한진해운이 법정관리에 놓였을 당시를 “갑갑했다"고 회상하며 “한진해운은 자구노력을 많이 해왔다. 조금만 돈을 투자하면 크게 될 회사를 오너와 금융사간 감정싸움으로 넘어지게 만들어 상당히 아쉽다”고 언급했다.
임덕호 한진샤먼호 선장. 그는 지난 6월 한진샤먼호를 탔고, 10월 가입류 사태를 겪으면서 "갑갑하다"고 말했다. <사진=조인영 기자> |
그는 “중국정부는 자국선사에 18조원 이상을 지원했고 머스크, MSC, CMA-CGM도 많은 지원을 받았다. 그러나 채권단이 막아놓은 상태서 어떤 회사가 운영될 수 있겠는가. 지원책이 너무 늦었다”고도 비판했다.
그러면서 앞이 막막해진 선원들의 미래를 가장 걱정했다. 임 선장은 “젊은 선기장, 선원들이 많다. 다른 회사에 갈 수도 있었으나 애사심으로 지금까지 한진해운을 지켜왔다”며 “2~3등 항해사들은 군대가 아직 끝나지 않았기 때문에 쉽게 움직이기 어렵다. 이 아이들이 해결돼야 마음이 편해질 것 같다"고 말했다.
해양대 졸업생들은 5년 이내 3년간 배를 타야 병역의무를 마친 것으로 인정 받는다. 그간 한진해운은 매년 선주협회를 통해 1년간 약 60명의 승선예비군(군 T.O)을 채용해왔다.
졸업 후 한진해운에 승선한 승선근무예비역은 3등 항해사 직위를 받는다. 1.5년 뒤엔 2등 항해사로, 2년 뒤 선장 다음 직위인 1등 항해사로 진급해 통상 1등 항해사까지 3~4년이 소요된다.
그러나 법정관리로 한진해운이 선박을 반선하기 시작하면서 3년을 채우지 못한 예비군들의 자리도 불안해졌다. 이들이 실직하면 타 선사로 이동해야 하지만 쉽게 군 T.O를 찾을 수 있을 지는 미지수다.
보통 100명의 3등 항해사가 있다고 가정할 때, 2등 항해사는 3등 항해사의 70%, 1등 항해사는 30~40%, 선기장 등은 10% 수준이어서 2~3등 항해사들의 군대 및 재취업 문제가 가장 시급하다.
항해사들은 예상보다 더 심각하게 받아들이고 있었다. 2등 항해사인 이성윤씨는 그는 한진해운 법정관리 당시 심경을 묻자 “허탈한 감이 있다. 2~3달 전까지만해도 행복했는데..”라며 말 끝을 흐렸다. 해양대를 졸업한 이성윤씨는 해양대를 올해로 3년째 한진샤먼호를 타고 있다.
그는 "(한진해운이 청산되면) 실업자가 된다. 구직 활동을 해야하는 데 배가 묶여 있으니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고 토로했다. 이어 “주로 회사가 보내주는 공문이나 뉴스를 통해 한진해운 소식을 듣는다. 무엇보다 회사 안정화가 됐으면 한다. (청산이) 불가피하게 되면 먹고 사는 게 끊긴다”며 “회사가 살아야 우리도 산다. 나라에서 도와주길 바란다”고 거듭 강조했다.
이영빈 3등 항해사는 “1등 항해사가 될 때까지 (한진샤먼호를) 타려고 했는데 (법정관리로) 9월 예정이었던 진급시험이 미뤄졌다”고 아쉬워했다. 1등 항해사인 김승용씨는 5년차이지만 아직까지 추후 미래에 대해 생각해보지 못했다고 전했다.
그러면서도 걱정하는 가족들을 위해 매일 안부를 전하고 있다. 떨어져 있는 가족들에 대해 임 선장은 “매일 연락하고 있는데 주로 걱정하지 말라고 한다. 뉴스 보고 전화가 오기도 하는 데 요새는 좋은 소식이 없으니 자주 안보려고 한다"고 말했다.
한진샤먼호는 12월분까지의 부식과 물을 남겨두고 있다.
'파이팅'을 외치고 있는 한진해운 선원들 <사진=조인영 기자> |
[뉴스핌 Newspim] 조인영 기자 (ciy810@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