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성수 기자] "석유수출국기구(OPEC) 저유가 전쟁은 막을 내렸다."
최근 OPEC이 주도한 석유 감산 합의가 연장될 것이라는 전망에 국제유가가 50달러 박스권을 넘어 상승할 조짐을 보이자, 미국 투자은행이 내린 결론이다.
작년 초 배럴당 30달러에도 못 미치던 서부텍사스산원유(WTI)는 이제 50달러 중반을 넘보고 있다. 사우디아라비아 등 주요 산유국이 감산을 거부하면서 40달러에 간신히 턱걸이하던 시절이 언제였냐는 듯 시장은 평온하다.
뱅크오브아메리카(BofA)-메릴린치(BAML)은 보고서에서 '저유가 전쟁이 막을 내렸다'고 진단했다고 지난 16일 자 배런스온라인이 보도했다.
최근 1년간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가격 추이 <사진=블룸버그통신> |
◆ "OPEC, 생산 안 늘리는 게 더 이익"
OPEC과 러시아 등 주요 산유국은 지난해 하루 180만배럴을 감축하기로 했다. 이 합의는 올해 1월부터 6개월간 이행될 예정이다. 현재까지 감산 이행률은 90%가 넘어, 대부분 OPEC 회원국들이 감산 합의를 이행하고 있는 것으로 조사됐다.
전문가들은 유가 하락으로 원유 수요가 증가하는 효과가 크지 않다면서, OPEC이 시작했던 저유가 전쟁이 막을 내렸다고 주장했다.
BofA-메릴린치에 따르면 유가가 배럴당 65달러에서 50달러로 하락할 때 원유 수요는 15년 동안 일일 170만배럴 증가한다. 원유 수요는 중기적으로 가격에 대해 비탄력적이기 때문에 유가가 떨어진다고 해서 큰 폭 증가하지도, 유가가 오른다고 해서 큰 폭 감소하지도 않는다.
OPEC의 종주국 사우디는 유가가 60달러를 밑돌자 재정 악화와 통화 약세 문제를 겪고 있으며, 이를 방어하기 위해 외환보유액을 소진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OPEC이 시장점유율과 원유 생산을 더 늘리기 위해 공격적인 투자를 실시하는 것은 비효율적이라는 지적이다.
BofA-메릴린치는 "OPEC 회원국들은 생산량을 늘릴 여력이 있지만, 추가 투자를 실시하지 않을 경우에 이익이 더 많이 날 가능성이 높다"며 "향후 5년간은 OPEC의 산유량 증가세가 제한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 "트럼프 국경세로 유가 더 오를 수도"
다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원유 시장에 강력한 변수라는 지적도 있었다.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사진=AP/뉴시스> |
이날 파이낸셜타임스(FT)는 트럼프 대통령이 수입산 제품에 국경세를 매길 경우, 미국이 수입하는 원유에도 세금이 붙어 유가가 오를 것이라고 전했다. 미국은 자국에서 필요한 원유의 약 절반을 수입하고 있다.
트럼프의 국경세 부과로 유가가 더 오른다면 미국 원유업체들도 생산을 늘리게 될 것이고, 미국은 원유를 수입할 필요 없이 자급자족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그 결과 세계 원유 공급업체들은 시장 규모가 줄어듦에 따라 다시 가격 경쟁에 내몰리게 될 수 있다.
또한 트럼프 대통령은 그동안 침체됐던 원유·가스 사업들을 부활시키기 위한 행보를 보이고 있다.
그는 키스톤 XL 송유관 재개와 다코타 엑세스 송유관 승인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또 인프라스트럭처 건설을 신속하게 추진하기 위해 환경 검토와 승인 과정을 간소화한다는 명령에도 서명했다. 원유 시추 기업들에 더 많은 국유지를 제공함으로써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지키기 위해서다.
OPEC 등 산유국의 감산으로 원유시장 공급과잉이 해소될 거란 기대가 높았으나, 미국의 원유 생산이 증가한다면 다시 원점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영국 금융전문지 머니위크는 "트럼프의 국경세 정책이 어떻게 가시화될지, 그리고 셰일업체들이 어떻게 반응할지는 알 수 없지만 원유 시추(rig)는 이미 증가하고 있다"며 "미국이 어떤 방향을 가느냐에 따라 잠잠했던 석유 전쟁이 다시 불붙을 수도 있다"고 진단했다.
[뉴스핌 Newspim] 김성수 기자 (sungsoo@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