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유리 기자] # 서울 강남구 역삼동 사무실 인근 식당에서 점심식사를 마친 한국타이어 영업본부 막내 김영식(가명) 대리. 회사에서 나눠준 종이 식권이나 지갑을 챙기지 않았지만 당황할 필요는 없다. 스마트폰으로 발급된 전자 식권을 보여주면 터치 한 번으로 결제가 완료되기 때문이다. 사무실 서랍에 선배들 식권까지 넣어두고 매일 장수를 셌던 김 대리 입장에선 단비 같은 서비스다. 총무팀 식대 관리자도 "식비는 월 평균 3%가량 줄었고, 관련 업무 시간도 기존보다 70%가량 단축됐다"고 엄지손가락을 추켜세운다.
벤디스의 기업 식대관리 서비스 '식권대장'이 바꿔놓은 점심시간 풍경이다. 종이 식권을 주거나 식대 장부를 작성하는 아날로그 방식을 모바일로 옮겨오면서 나타난 변화다. 단순한 발상이지만 조정호 벤디스 대표는 숨은 1인치에서 10조원의 가능성을 발견했다.
◆ 신림동 고시촌에서 움튼 창업
조정호 벤디스 대표 <사진=벤디스> |
조 대표의 창업은 서울 신림동 고시촌에서 시작됐다. 한국외대 법대생이었던 그는 사법고시를 한 달 앞두고 법전을 모조리 헌책방에 팔았다. 고시원 휴게실에서 뉴스를 보다 문득 그럴듯한 사업 아이템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서울과 분당을 오가는 광역버스 증설을 놓고 갈등이 빚어지고 있다는 뉴스였습니다. 직장인을 대상으로 전세버스를 운영하면 돈이 되겠다 싶었죠. 운수사업법 문제로 실행에 옮기진 못했지만 그 이후로 사업에 대한 생각을 지울 수 없었습니다. 결국 3년 동안 준비했던 사시 도전을 접고 맨몸으로 창업에 뛰어들었죠."
창업 경험이 전무했기 때문에 아이템을 갈아엎기를 반복했다. 소상공인 대상 모바일 상품권부터 시작해 기업용 식권 서비스 '식권대장'을 내놓기까지 3년이 걸렸다.
"시장조사차 갔던 오피스 주변 식당을 보니 '식권 받습니다' '장부 거래합니다'라는 안내문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회사 총무팀에서 왔다고 하니 식사를 내주며 거래 제안을 하더군요. 그간 소상공인에게 모바일 상품권을 소개할 때와 전혀 다른 우호적인 반응이었습니다. 점주들은 잠재 고객보다 당장 식당으로 올 손님을 원한다는 걸 그때 체감했죠."
조 대표는 B2B(기업 간 거래)로 방향을 틀어 2014년 9월 모바일 식권 서비스 '식권대장'을 만들었다. 이용 방식은 간단하다. 직원들이 원하는 식당과 메뉴를 고르고 결제를 누르면 스마트폰으로 전자 식권이 발급된다. 이를 식당에 보여주면 종이 식권을 내거나 장부에 이름을 적을 필요가 없다. 기업은 식권대장으로 식대사용 데이터를 전송받아 월별 식대를 정산하면 된다. 대신 벤디스는 기업에서 거래대금의 일정 비율을 서비스 이용료로 받고, 가맹점에는 매출액의 5%가량을 수수료로 부과한다.
◆ 잡상인 취급 1년…고객사 100개로 성장
문제는 B2B 시장의 높은 문턱이었다. 식대 관리에 드는 비용과 시간을 줄일 수 있다고 공감했지만 기업들은 새로운 시스템 도입에 보수적이었다. 더구나 이렇다 할 고객사 유치 이력이 없는 스타트업을 믿어줄 리가 없었다. 수백 통의 콜드메일(임의로 메일을 보내 거래를 성사시키는 영업방식)을 보내고 주요 오피스를 무작정 찾아갔다.
"잡상인 취급을 당하면서 쫓겨나길 반복하다 보니 고객을 만나기도 쉽지 않았죠. 그렇게 영업망 뚫는 데만 1년이 걸렸습니다. 돈은 떨어져 가는데 고객 유치는 안 되니 스트레스로 안면마비가 오기도 했어요."
문턱을 넘은 것은 서비스 경쟁력과 입소문이었다. 같은 스타트업 업계를 첫 고객사로 확보한 후 그나마 새로운 기술 도입에 열려 있는 IT 기업을 공략했다. 식권대장 도입 효과는 뚜렷했다. 기업의 식대 비용은 평균 12% 절감됐고 담당부서의 업무는 80%가량 대폭 줄었다. 효과가 확실하니 입소문이 났다. 중소기업뿐 아니라 한국타이어, 현대오일뱅크, 한미약품 등 대기업도 식권대장을 도입했다.
서비스 개발 2년 4개월 만에 식권대장 고객사는 100개를 돌파했다. 지난해 말 기준 거래금액은 100억원을 넘어섰다. 매년 2배 이상의 성장세를 기록한 결과다.
◆ 42억원 투자 유치…기업인 종합 복지 플랫폼 목표
투자업계도 벤디스의 가능성을 높게 평가했다. 벤처캐피탈(VC) 본엔젤스파트너스가 벤디스 관련 기사를 보고 연락을 해온 게 시작이었다. 2015년 초 음식배달 앱 인기를 필두로 푸드테크(Foodtech, 음식과 IT가 융합한 산업)가 주목받던 때였다. 본엔젤스파트너스의 소개로 배달 앱 1위 배달의민족을 운영하는 우아한형제들과도 인연을 맺으면서 벤디스는 양사로부터 7억원의 투자를 유치했다. 이후 2016년 7월 우아한형제들은 네이버, KDB산업은행과 함께 벤디스에 35억원을 공동 투자했다.
"사실 지난해 추가 투자를 받기 전까지는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서비스 성과 지표는 좋았지만 생각보다 투자 공백이 길어졌기 때문이죠. 그때 주변에서 많이 들었던 얘기가 돈을 좇다 보면 필패한다는 말이었어요."
서비스 자체의 근간이 흔들리지 않으면 투자는 자연스레 따라온다는 믿음이 조 대표를 지탱했다. 스타트업이 흔히 부딪히는 데스밸리(death valley, 창업 초기 기술개발과 사업화 단계를 넘어 시장에 안착하기까지 과정)에서 살아남으려면 이를 꼭 기억해야 한다고 그는 강조했다.
창업 4년차를 맞은 벤디스의 다음 목표는 직장인 종합 복지 플랫폼이다. 직원 식생활 데이터에 기반한 건강관리 솔루션이나 인센티브 제공 서비스를 고려하고 있다. 인센티브를 다양한 복지 포인트로 주고 식당뿐 아니라 헬스클럽, 대형마트, 주유소 등에서 쓸 수 있게 하는 방식이다.
"올해는 기업 구내식당에 진출, 식대 관리 사업을 본격화하고 이를 전국 주요 거점으로 확대할 계획입니다. 10조원 규모의 기업 식대 시장을 모바일로 완전히 대체하는 날도 멀지 않았습니다."
벤디스 서비스 소개 <이미지=벤디스> |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