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최유리 기자] 지난 1월 23일 서울 삼성 서초사옥 다목적홀. 고동진 삼성전자 무선사업부 사장이 무거운 표정으로 무대에 섰다. '갤럭시노트7' 발화 원인 발표에 나선 고 사장은 묵묵히 고개를 숙였다. 그는 "제품 출시 전에 제대로 검증하지 못한 책임을 통감한다"면서 "재발 방지 대책으로 소비자 신뢰 회복에 나서겠다"고 말했다.
지난 4월 14일 서울 삼성 서초사옥 다목적홀. '갤럭시S8' 국내 출시를 일주일 앞둔 고 사장이 미디어데이를 열었다. "전 세계 초기 반응이 기대했던 것보다 좋은 편"이라며 "소비자 신뢰를 되찾는 첫 제품이 될 것"이라고 말하는 그의 목소리에는 힘이 들어가 있었다. 자신감을 반영하듯 갤럭시S8의 국내 예약 판매 목표는 역대 최대치인 100만대로 잡았다.
80일 만에 같은 무대에 오른 고 사장은 전혀 다른 모습이었다. 단지 갤럭시S8에 대한 자신감을 넘어 단단해진 느낌이었다. 노트7 위기로 얻은 교훈을 내재화한 시간이 단단한 모습에 투영됐다.
성급한 자신감이 아니냐는 지적이 나올 법 하지만 그 배경에는 뼈를 깎는 채찍질이 있었다. 고 사장은 지난해 9월 노트7 배터리 발화 사태 이후 신뢰 회복에 총력을 기울였다. 1차 리콜 이후 사장단회의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을 정도로 바쁘게 현장을 누볐다. 3~4개월 동안 주말도 없이 임원 및 개발자들과 안전 대책 마련에 몰두한 것으로 알려졌다.
품질에 대한 절치부심은 위기 극복을 위한 지지대가 됐다. 고 사장은 지난달 뉴욕 갤럭시S8 언팩 행사에서 "힘든 시기였지만 시간이 지나니 왜 진작 이렇게(세부 공정 점검) 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면서 "노트7으로 인한 경영 손실을 손실이 아닌 투자로 만들 것"이라고 다짐했다.
단호한 채찍질과 함께 혁신의 긴 호흡도 놓지 않았다. 6년 전부터 개발한 인공지능(AI) 서비스 '빅스비'를 비롯해 집 안팎에서 가전기기를 제어할 수 있는 '삼성 커넥트', 데스크톱 PC처럼 사용할 수 있는 '덱스 스테이션' 등 갤럭시S8에 혁신을 집대성시켰다.
갤럭시S8을 중심으로 스마트홈, AI 비서 등 새로운 서비스 생태계를 구현하는 첫 스타트를 끊은 셈이다. 고 사장이 5~10년 후를 돌이켜봤을 때 새로운 스마트폰 경험이 시작됐다고 평가받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소개한 이유다.
시장의 신뢰를 회복하기 위한 첫 결과물을 내놨지만 고 사장의 담금질은 이어질 전망이다. 최근 중국 시장에서 분위기 반전을 위해 책임자를 교체한 삼성전자는 빅스비 음성인식 기능을 최종 점검 중이다. 갤럭시S8뿐 아니라 경영 전반에 걸쳐 품질 경영 제체를 강화하기 위한 고민도 이어가고 있다.
남은 것은 담금질을 뒷받침할 안정된 경영 환경과 글로벌 기업 이미지 회복이다. 그러나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이 두달 가까이 자리를 비우면서 혼란스러운 분위기가 이어지고 있다. 이 부회장이 피아트크라이슬러그룹(FCA)의 지주회사인 이탈리아 '엑소르(Exor)' 사외이사에서 제외되는 등 글로벌 경영 차질도 현실화되고 있다.
자신감이 넘쳤던 고 사장이 "지난 몇 년을 돌이켜보면 치열한 글로벌 경쟁에서 모든 순간이 절체절명의 위기였다"며 "지금은 그 어느 때보다 힘들고 중요한 시기"라고 토로한 것도 같은 이유에서 일 것이다. 채찍질과 혁신으로 시장의 평가를 기다리고 있는 삼성전자가 재기에 힘을 받을 수 있도록 경영의 불확실성이 걷혀야 할 때다.
[뉴스핌 Newspim] 최유리 기자 (yrcho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