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영태 기자] 이낙연 국무총리 후보자에 대한 29일 국회 임명동의안 처리 여부가 문재인 정부의 성공적 출범을 가름하는 최대 변수로 부각되고 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26일 박근혜 정부에서 임명된 국무위원들과 오찬 간담회가 열린 청와대 인왕실에서 유일호(왼쪽) 부총리 겸 기획개정부장관의 인사말을 듣고 있다.<사진=뉴시스> |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 야당은 애초 이 후보자 인사청문 심사경과보고서 채택에 긍정적인 입장이었지만 인사청문회 과정에서 이 후보자 부인의 위장전입 사실이 드러나고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의 위장전입과 증여세 탈루,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의 위장전입 문제 등이 계속 불거지자 청문회 보고서 채택을 미루고 있다. 국무총리 후보자 인준이 난항을 겪으면서 후속 청문회 또한 험난할 것으로 예상된다.
임종석 대통령 비서실장이 지난 26일 새 정부 출범 후 위장전입 논란 등에 대해 처음 사과하고 전병헌 정무수석 등 청와대 정무라인이 주말까지 여야 지도부와 인사청문특별위원들을 잇따라 접촉하며 설득전에 나서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 우원식 원내대표가 28일 기자회견을 열어 '대승적 협조'를 호소했으나 대치정국은 쉽게 풀리지 않을 형국이다.
우원식 민주당 원내대표는 이날 기자회견에서 "야당이 대통령 뜻을 대승적으로 수용해 협조해줄 것을 간곡히 요청한다"며 "국민이 납득할만한 고위공직자 검증기준을 국회와 청와대가 함께 마련할 것을 제안한다"고 말했다.
아울러 "문 대통령이 후보시절 약속한 인사 5대 원칙에서 후퇴했으니 직접 사과하라는 야당의 주장을 이해한다"면서도 "불가피한 상황과 경우를 감안해 달라는 청와대의 고민도 살펴봐야 한다"고 야당의 협조를 당부했다.
문재인 정부 인수위원회라고 할 수 있는 국정기획자문위원회도 나섰다. 국정기획자문위는 이날 '고위공직자 임용 기준안'을 새로 만들겠다고 발표했다.
김진표 국정기획위 위원장은 브리핑에서 "최근 고위공직자 인사를 둘러싼 소모적 논란을 없애고, 새 정부에서 국민의 뜻을 받들어 국정을 운영할 인재를 적소에 기용하기 위해 국민의 눈높이에 맞는 합당한 기준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국정기획위는 기획분과위원회에 태스크포스(TF)를 구성해 여야 정치권과 정계 원로, 언론계, 학계, 법조계, 시민사회를 비롯한 사회각계의 의견을 경청하고, 충실히 반영해 최적의 안을 마련할 방침이다.
그러나 자유한국당과 국민의당, 바른정당 등은 이 후보자 등 3명의 위장전입 논란과 관련, 문 대통령이 후보 시절 내세운 '5대 비리 관련자 고위공직자 원천 배제'라는 원칙이 파기된 데 대한 입장을 직접 밝힐 것을 요구하고 있다. '5대 비리'는 이전 정부부터 총리와 장관 후보자들의 단골 낙마 사유였던 병역면탈, 부동산투기, 탈세, 위장전입, 논문표절을 말한다.
청와대와 민주당은 야당을 최대한 설득하겠다는 입장이지만, 29일까지 전향적인 입장 전환을 이끌어내지 못할 경우 정상적인 정부 출범이 예상보다 더 지연될 수 있다는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 문 대통령이 '5대 인사 원칙' 해명 나서야 여야 협상 풀릴 듯
여야는 당초 29일 국회 본회의를 열어 이 후보자 임명동의안을 표결에 부칠 예정이었지만 청문보고서조차 채택하지 못한 상황이다. 여야가 시한으로 잡은 31일까지도 인준안 처리가 불발될 수 있다는 우려가 나온다. 만일 문 대통령의 '1호 인사'인 이낙연 후보자에 대한 인준이 불발될 경우 문재인 정부가 입을 타격은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심각하다.
당장 29일부터 서훈 국가정보원장 후보자 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 후보자는 오는 6월2일,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 후보자는 오는 6월7일 청문회에 나선다. 강경화 외교부 장관 후보자와 김이수 헌법재판소장 후보자 청문회도 다음달 초에 열릴 계획이다.
문제는 이낙연 후보자와 김상조 후보자, 강경화 후보자 모두가 위장전입과 탈세 등 문 대통령의 '5대 인사 원칙'에 걸리면서 야당이 강경한 자세를 취할 명분을 주고 있다는 점이다.
여기에 서 후보자는 과거 KT스카이라이프와 삼성경제연구소에서 고액의 자문료를 받았다는 의혹이 제기됐고, 김이수 후보자는 헌법재판관으로서 통합진보당 해산 사건에서 기각 의견을 내는 등 진보 성향의 결정들을 내렸다는 점 등이 자유한국당 등 보수야당의 반발을 사고 있다.
국무총리와 국정원장, 외교장관 등 1호 인사부터 스텝이 꼬이기 시작하면서 청와대가 애초 청문회를 거치지 않아도 되는 차관 인사부터 단행하겠다는 계획도 헝클어졌다.
청와대 핵심관계자는 차관 인사를 언제 단행할 예정이냐고 묻자 "만약 청와대가 지금 차관 인사를 발표하면 야당 쪽에선 이쪽 입장에 큰 변화가 없고 야당을 협치 대상으로 생각하지 않는구나 이런 인상을 줄 수 있다"면서 "이낙연 후보자 인사청문회에 대한 야당 입장의 변화, 이런 것들을 보면서 인사 발표 스탠스를 취하게 될 것"이라고 귀띔했다.
국무총리 인준이 실패할 경우에 대한 대안에 대해선 "저희는 이낙연 후보자가 오랜 국정공백 기간을 극복하고 새롭게 안정적인 국정을 출발시킬 적임자라 생각해 추천했다"며 "비극적, 아니 낙관적이지 못한 전제는 전혀 하지 않고 있다"고 일축했다.
문 대통령의 '5대 인사원칙'이 계속 논란이 되는 상황에 대해선 "임종석 비서실장이 26일 말한 대로 몇 가지 기준을 기계적으로 적용하다 보면 많은 부분이 위장전입이란 기준에 해당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며 "부동산 투기 등을 통한 부당 이득 편취와 같은 용도의 위장 전입은 높은 기준으로 최대한 걸러내겠다"고 말했다.
앞서 임 실장은 지난 26일 "선거 캠페인과 국정운영이라는 현실의 무게가 기계적으로 같을 수 없다는 점을 솔직하게 고백하고 양해를 부탁드린다"면서 "문재인 정부는 현실적인 제약 안에서 인사를 할 수밖에 없다"고 밝힌 바 있다.
이 관계자는 임 실장의 발언 의미에 대해 "어쩔 수 없는 주민등록법 위반 사안이라면 위장전입이란 정치적 용어나 잣대를 들이대기보다 사회적으로 기준안을 새로 마련해보자는 취지"라며 "그래서 국정기획자문위의 토론과 논의로 마련된 안으로 중장기적으로는 야당을 포함한 국민의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기를 바란다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이번 인사 파동은 위장전입 등에 대한 청와대나 국정기획자문위원회의 새로운 사회적 합의 마련과는 별도로 문 대통령이 직접 나서 적절한 입장표명을 해야 상황이 달라지지 않겠느냐는 목소리가 높아지기 시작했다. 이미 문제가 불거진 만큼 새로운 사회적 합의 마련을 위해서도 문 대통령의 입장표명 등 이번 논란에 대한 마침표가 필요하지 않겠느냐는 지적이다.
한 야당 의원은 "국정혼란 속에서 출범한 새 정부가 자리도 잡기 전에 야당이 발목부터 잡는다는 비판도 있지만 이번 청문회는 단순한 기선 잡기가 아니라 문 대통령이 약속한 '5대 인사 원칙'을 저버린 것에 대해 대통령의 입장과 해명이 필요하다는 것"이라며 "정치는 생물인 만큼 문 대통령의 대응에 따라 상황은 달라질 수 있지 않겠느냐"고 전망했다.
결국 29일부터 시작하는 6월 임시국회에서 문재인 정부가 추진중인 개혁입법과 추가경정 예산 편성 등도 인사 문제가 풀려야 여야 협치가 가능할 전망이다.
[뉴스핌 Newspim] 이영태 기자 (medialyt@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