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오승주 기자] 기획재정부의 체면이 바닥에 떨어졌다. 정부의 예산심의권을 앞세워 부처 사이에서 ‘갑’으로 군림하던 기재부가 청와대의 관세청장 인사로 자존심이 상했다.
김동연 경제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이 지난 20일 오전 서울 종로구 정부서울청사에서 열린 경제관계장관회의에서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사진=뉴시스> |
청와대는 지난 30일 신임 관세청장에 부장검사 출신인 김영문 변호사를 임명했다. 검사 출신이 관세청장에 임명된 것은 재무부 세관국이 관세청으로 독립한 1970년 이후 세 번째다.
박정희 정부 당시 제주지검장 출신 이택규(70~74년) 초대 청장과 대통령 사정비서관을 지낸 최대현(74~78년) 제2대 청장이 잇달아 관세청장을 맡은 이후 40년 만의 ‘이변’인 셈이다.
40여 년 전에 검사 출신이 관세청장에 임명된 것은 시대적 배경이 상당한 역할을 했다. 즉 1970년대만 하더라도 금괴 등 밀수가 성행해 수사에 능통한 검사가 필요했다는 분석이다.
하지만 이후 관세청장은 검사 출신이 아닌 재무부를 비롯한 기재부 관료들이 청장을 역임하는 게 관례가 됐다. 특히 2000년대 이후에는 기재부 출신들이 독식했다.
2001년 이후 관세청장은 이용섭 현 일자리위원회 위원장 등 6명이 역임했다. 특히 2006년 이후에는 기재부 세제실장을 거친 인사들이 관세청장을 줄지어 맡았다.
23대 허용석 청장을 필두로 윤영선(24대), 주영섭(25대), 백운찬(26대), 김낙회(27대) 청장까지 5대를 내리 세제실장들이 관세청장을 지냈다.
김낙회 전 청장 이후 임명된 천홍욱 전 청장은 관세청 내부 출신으로 두 번째 청장이었지만, 국정농단의 중심에 선 최순실과 연루돼 최근 옷을 벗었다.
때문에 기재부 직원들은 이번 관세청장 인사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김낙회 전 청장 이후 기재부 출신이 다시 관세청장 자리를 되찾아 올 수 있을지 주목한 것이다.
무엇보다 관세청장 인사가 문재인 대통령과 새 정부 핵심 인사들이 기재부 출신들을 어떻게 판단하고 있는지 가늠할 수 있는 잣대로 여겨 직원들의 주목도가 높았다. 여기에 문재인 정부 출범 이후 세금 인상 등 세제개편을 둘러싸고 여당인 더불어민주당과 청와대가 ‘궁합’을 맞추는 가운데 정작 주무부서인 기재부는 정책결정 과정에서 소외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컸기 때문이다.
정부 내에서도 국회 재정위원인 김부겸 행정자치부 장관이 지난 20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증세없는 복지’를 주장하는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을 상대로 “국민을 속이지 말라”며 직격탄을 날리는 바람에 체면을 구기기도 했다.
기재부의 한 관계자는 “면세점 입찰비리 의혹에 관세청이 맞물려 있어 검사 출신 청장이 임명된 것은 일정부분 이해는 되지만 새 정부에서 기재부가 소외된다는 느낌을 떨칠 수 없다”며 “새 정부의 기재부에 대한 시선을 확인하게 돼 내부적으로도 분위기가 상당히 가라앉아 있다”고 귀띔했다.
[뉴스핌 Newspim] 오승주 기자 (fair77@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