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범준 기자] 한낮 기온이 30도를 넘는 폭염이 이어지고 있는 요즘. 거리마다 여성들의 옷차림이 가볍다. 미니스커트는 물론, 속옷과 구분하기 어려울 정도로 짧은 숏팬츠를 입은 여성들도 많다. 더워서다. 더우니까 시원하고 싶은 마음은 당연하다.
그런데, 시원하게만은 입지 못할 속사정도 있다. 직장인 최모(여·27)씨는 아무리 더워도 사람이 많은 곳에서는 얇거나 짧은 옷은 피한다. 더위를 안 타서도, 멋 부릴지 몰라서도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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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씨는 "짧은 치마나 속이 살짝 비치는 옷, 심지어 노출이 없더라도 좀 달라붙는 옷을 입고 나서면 거리에서나 직장에서나 어김없이 '시선강간'을 당한다"며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이어 "한번은 지하철에서 너무 노골적으로 쳐다보는 한 남성에게 양해를 구했더니 '별 생각없이 시선이 스쳐간 것 뿐인데 왜 치한 취급하냐'며 도리어 역정을 내더라"면서 "그 이후로 출근할 땐 노출이 있는 옷은 가급적 피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국성폭력상담소가 지난 2015년 4월부터 지난해 10월까지 온라인으로 제보를 받은 길거리 고충 사례 186건 중 '시선·몸짓'은 총 45건(24.2%)에 달했다. 접촉이 있는 '성추행'(46건)과 비슷한 수준이다.
음흉한 시선으로 인해 강간에 준하는 정신적 피해를 입는다는 의미로 사용되기 시작한 '시선강간'이라는 표현에 대해 남성들은 불만을 제기한다.
직장인 조모(남·32)씨는 "단지 쳐다봤다는 이유로 강간이라고 하는 것은 너무 심한 표현"이라며 "'시선강간'이란 말은 마치 '탁 치니 억하고 죽었다'는 말처럼 그 자체로 어불성설이다"고 거부감을 드러냈다.
또 다른 직장인 신모씨는 "그럼 남자는 눈 감고 다니라는 말이냐"면서 "너무 과민한 여성들이 괜히 애먼 상대방 탓하는 것"이라고 불평을 쏟아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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반면 대학생 정모(여·24)씨는 "물론 음흉한 시선을 두고 강간이라고 하기엔 어폐가 있지만, 그만큼 (여성들이) 고통받고 있다는 경각심을 주기 위한 비유적인 표현일 것"이라며 문제없다는 입장을 취했다.
그렇다면, 법으로는 어떨까?
서울 서초동의 한 성폭력전문변호사는 "'시선강간'을 당했다면서 성폭력 소송을 상담하는 여성 의뢰인들이 종종 있다"면서 "하지만 단순히 불쾌한 시선을 느꼈다는 이유로는 곧장 성폭력(성희롱·성추행·성폭행을 모두 포괄하는 개념) 혐의로 인정받긴 어렵다"고 설명했다.
형법 혹은 성폭력처벌법 상 성폭행은 강간 혹은 강간미수를 의미하며, 성추행은 폭행이나 협박이 수반된 강제추행을 뜻하기 때문이다.
성희롱을 넓게 해석해 '시각 성희롱'으로 볼 수 있지 않느냐는 주장도 있다. 하지만 성희롱 피해는 타인의 언어와 행동에 의해 성적인 불쾌감을 받는 것을 지칭한다.
성희롱에는 '시각적 성희롱'이라는 것도 있는데, 이는 외설적인 사진·그림·음란출판물 등을 게시하거나 성과 관련된 특정 신체부위의 고의적 노출 혹은 만지는 모습을 보여주는 것을 말한다. 시각적으로 본인이 고통을 받는 경우이지, 타인의 시선은 해당 사항이 아니다.
일각에서는 아무리 경각심이 필요하다고 해도 강간이라는 표현은 너무 과하니 '시선폭력' 정도로 순화하자는 의견도 있었다.
국가인권위원회 한 전직 전문위원은 "지나치게 자극적인 표현은 상대의 인격을 짓밟는 또 다른 문제를 낳을 수 있다"면서 "남녀 간의 성대결로 가기보다, 서로 배려하고 존중하는 자세를 가지면서 사회적 담론을 이어가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범준 기자 (nunc@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