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보람 기자] 대법원이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일한 노동자에게 발병한 희귀질환 '다발성경화증'을 업무상 재해로 처음 인정했다.
대법원 3부(주심 대법관 김재형)는 A씨가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낸 요양 불승인 처분취소 청구소송 상고심에서 원고 승소 취지로 사건을 서울고법에 돌려보냈다고 29일 밝혔다. 원고 패소 판결을 내린 원심을 뒤집은 것이다.
서울 서초구 삼성전자 서초사옥 /이형석 기자 leehs@ |
A씨는 지난 2002년 재학 중이던 고등학교 추천으로 삼성전자 LCD 천안공장에 입사, 4년 넘게 LCD 모듈 검사과에서 판넬 화질 검사 업무를 맡았다.
그는 재직 중 손과 발이 저리고 마비되는 증세가 나타나면서 2007년 2월 퇴사했다. 그러나 이후에도 증상은 계속됐고 오른쪽 시력도 잃었다.
이듬해 그는 병원에서 희귀질환 '다발성 경화증'을 진단받았다. 이 질환은 우리나라에서 10만명당 약 3.5명이 앓고 있으며 발병원인이 명확하게 밝혀지지 않았다.
이 씨는 2010년 7월 업무상 재해를 주장하며 공단에 요양급여를 신청했다.
하지만 공단은 이 씨의 신청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 씨는 소송을 제기했다.
그는 재판에서 삼성전자 근무 당시 전자파와 유해물질에 노출됐고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거나 악화됐다는 주장을 펼쳤다.
이에 대해 1·2심 재판부는 "제출된 증거만으로 원고 업무로 발병하였거나 기존 질환이 급격하게 악화됐다고 인정하기 어렵다"며 원고 패소 판결을 내렸다.
이 씨가 어떤 유해물질에 어느 정도 노출됐는지 알 수 없는 상황에서 유해물질 노출이 발병의 원인 중 하나가 됐다고 단정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대법원은 "이 씨의 발병과 질병 악화는 업무상 상당한 인과관계가 인정될 여지가 크다"고 판단했다.
특히 "이 씨는 입사 이전에 건강 이상이나 가족력 등이 없었다"며 "삼성전자 LCD 공장에서 근무하던 중 평균 발병연령보다 훨씬 이른 나이에 다발성 경화증이 발병했다"고 설명했다.
또 "유기용제 노출이나 주·야간 교대근무, 업무 스트레스 등 질환을 촉발하는 요인이 다수 중첩될 경우 발병 또는 악화에 영향을 줄 가능성이 있다"고 덧붙였다.
이외에 삼성이 자체적으로 외부에 의뢰한 역학조사 방식에 한계가 있었고 노동자인 이 씨가 직접 발병과 근무환경 간 연관관계를 입증하기 어렵다는 점 역시 근로자에게 유리한 판단을 내린 근거로 작용했다.
[뉴스핌 Newspim] 이보람 기자 (brlee19@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