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민호 기자] 중국 공산당 제19차 공산당 전국대표대회(당대회) 폐막일을 맞아 북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겸 국무위원장이 시진핑(習近平) 중국 국가주석에게 보낸 축전 내용이 5년 전과 비교해 호감을 표시하는 문구가 빠지고 분량도 주는 등 상당한 '온도차'를 보여 눈길을 끈다.
김 위원장은 지난 25일 시 주석에게 보낸 당대회 폐막 관련 축전에서 "나는 조·중 두 당, 두 나라사이의 관계가 두 나라 인민들의 이익에 맞게 발전되리라고 확신한다"고 밝혔다. 5년 전 제18차 당대회 축전에 들어갔던 '전통', '친선' 등의 표현이 빠졌다.
분량도 줄었다. 18차 당대회 때 김정은의 축전은 6문장, 810여 자였다으나 이번에 보낸 축전은 4문장 340여 자에 그쳤다.
중국 관영 매체의 보도도 눈에 띈다. 신화통신은 26일 관련 보도를 통해 베트남과 라오스, 쿠바, 북한이 시진핑 주석에게 축전을 보냈다고 소개하며 북한을 맨 마지막에 언급했다.
김 위원장은 5년 전인 2012년 11월 15일(중국 18차 당대회 폐막일 다음날) 처음으로 자신의 명의의 축전을 시진핑 주석에게 보냈었다.
당시 그는 축전에서 시 주석이 '중국 공산당 중앙위원회 총서기', '당 중앙위원회 주석'으로 오른 것을 언급하며 "당신에 대한 귀 당의 전체 당원과 군대와 인민의 두터운 신뢰와 기대의 표시로 된다"고 치켜세웠다.
그러면서 '친근한 이웃나라', '전통적인 북·중 친선' 등의 표현을 써가며 북·중 간 우호관계를 부각시켰다.
지난 9월 7일 열린 북한 노동당 중앙위원회 제7기 제2차 전원회의에 참석한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사진=북한 노동신문 홈페이지 화면 캡쳐> |
5년 전과 달라진 축전에서 알 수 있듯이 혈맹으로 일컬어지던 북·중관계의 균열은 지난 9월 3일 북한의 6차 핵실험을 기점으로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북·중 관영매체 간 설전이 오간 것도 대표적인 사례다. 북한 관영 조선중앙통신은 지난달 22일 중국 관영매체인 인민일보와 환구시보, 인민망, 환구망 등을 일일이 언급하며 "일개 보도 매체로서 다른 주권국가의 노선을 공공연히 시비하며 푼수 없이 노는 것을 보면 지난 시기 독선과 편협으로 자국 인민들과 국제사회의 신뢰를 어지간히 잃은 것도 당연하다는 생각이 든다"고 비난했다.
이에 중국 인민일보 영문 자매지 글로벌타임스는 같은 달 24일 자국 한반도 전문가들의 발언을 인용, "조선중앙통신사는 한반도 평화 유지를 위한 중국의 노력을 왜곡하고 있다"며 중국 매체에 대한 비난은 "매우 어리석은 짓"이라고 지적했다.
이 와중에 중국 상무부의 대북 석유제품 수출과 섬유제품 수입 제한 등 유엔 안보리 대북결의 이행을 위한 중국 정부의 조치도 뒤따랐다.
이런 상황에서 다음달 8일에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시 주석 간 미·중 정상회담이 열릴 예정이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의 독자적 대북제재를 시 주석에게 요청할 방침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때문에 중국이 독자 대북제재에 나설 경우 북중관계는 과거 혈맹이 무색해질 정도로 최악의 관계로 치달을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오고 있다.
다만 북한 전문가들은 온도차를 보이는 김정은의 축전과 최근 삐걱거리는 북·중 관계가 반드시 균열 조짐을 보이는 것이라고는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중국 시진핑 주석 <사진=바이두> |
홍석훈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뉴스핌과의 전화통화에서 "북한은 중국 당대회 개막·폐막일에 맞춰 축전을 보내왔다"면서 "이례적인 것은 아니다. 다만 중국 관영매체 보도에서 북한이 쿠바 다음으로 밀린 것은 눈에 띈다"고 말했다.
홍 연구위원은 '북·중 관계의 이상 신호라고 볼 수 있냐'는 질문에는 "기본적으로 북·중 관계는 협력이라는 게 깔려 있다"면서 "최근 중국이 미국에 우호적인 메시지를 주고 있다고 해서 북한을 무시한다고는 볼 수 없다"고 진단했다.
또한 "만약 미·중 간 묘한 기류가 흐른다면 중국은 다시 북한을 적극적으로 활용할 가능성이 있다"면서 "중국은 대한반도 정책인 '쌍중단'(雙中斷·북한 핵·미사일 도발과 한미 연합군사훈련 중단)과 '쌍궤병행'(雙軌竝行·비핵화 프로세스와 북한과의 평화협정 협상)을 포기한 게 아니다"고 지적했다.
홍현익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은 "최근 서먹해진 북·중 관계를 고려해봤을 때, 김정은은 갑자기 혈맹, 친선, 형제 같은 단어를 쓰면 너무 속보이는 행동이 될 것이고 이에 체면이 깎인다고 생각했을 것 같다"면서 "김정은도 북한 내부에서는 수령이기 때문에 고개를 숙일 수만은 없었을 것"이라고 분석했다.
홍 위원은 '트럼프 대통령의 중국 독자 대북제재 견인 방침'에 대해선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 보면 중국에게 북한을 제재하라는 것은 '꽃놀이패'라 할 수 있다"면서 "미국의 입장에서는 중국과 북한은 각각 경쟁자이자 적이기 때문"이라고 전망했다.
이어 "다만 중국 입장에서는 트럼프 대통령이 중국의 독자 대북제재를 계속 언급하는 것은 매우 곤혹스러운 카드일 것"이라면서 "이러한 상황에서 중국으로서는 북한이 매우 안타깝기도 하지만 야속하기도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뉴스핌 Newspim] 노민호 기자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