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뉴스핌=황세준 기자 ] 삼성전자가 이번주 후속 임원인사와 조직개편을 마무리한다. 지난주 사장단 인사를 통해 대규모 세대교체 기조를 확인했다. 재계는 한동안 멈춰섰던 삼성전자의 경영시계가 다시 돌아가기 시작했다는 평가다.
반도체 호황 속에 영업실적은 이미 사상 최고치를 경신 중이고 주가도 고공행진이다. 이변이 없는 한 임직원들은 내년 1월말, 연봉의 최대 50%에 달하는 성과급을 받는다. 주주들은 2020년까지 29조원의 배당금을 받는다.
모든 상황이 좋아보이는 지금, 삼성전자는 '위기'를 말한다. 권오현 삼성전자 회장은 지난 1일 창립기념일 행사에서 "지금이 위기의 시작점일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같은날 김기남 DS부문장(사장) 역시 "엄중한 경영현실에 처해있다”고 경고했다.
회사측에 따르면 이는 경영진들이 의례적으로 하는 말이 아니다. 사상 최대 실적 행진에도 불구하고 회사의 중기 경영목표인 '비전 2020' 달성은 불투명하다. '비전 2020'은 2020년까지 연매출 4000억달러(445조), 브랜드가치 세계 5위 이내를 달성한다는 목표다.
서울 삼성전자 서초사옥 앞에 내걸린 깃발이 멈춰 서 있다. /김학선 기자 yooksa@ |
브랜드 가치는 올해 6위(인터브랜드 집계 기준)으로 이미 목표에 근접했으나 문제는 매출이다. 올해 시장 예상치는 241조원으로 목표 대비 절반 수준이다. 3년간 삼성전자를 2배 규모로 키워야 달성 가능하다는 얘기다. 올해 예상 성장률(19.4%)를 3년간 지속해도 목표에 미치지 못한다.
◆반도체 호황 2018년 이후 둔화 우려
시장에서는 반도체 호황이 2018년 이후 둔화된다는 전망을 내놓고 있다. 삼성전자는 '새 먹거리' 없이 사실상 목표 달성이 어렵다는 지적이다. 2010년 설정한 5대 신수종 사업을 재점검하고 소프트웨어 등 미래 먹거리를 설정해야 하는 시기라는 진단이다.
삼성전자를 둘러싼 경영 환경은 가시밭길이다. 글로벌 시장에서 기존 사업을 겨냥한 경쟁자들의 '태클'은 이미 깊숙히 들어오고 있고 자율주행차등 새로운 먹거리 선점 경쟁도 치열하다.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세탁기 세이프가드에 이어 반도체에 대해 특허침해 조사를 개시했다. 반도체 패키징 전문업체인 테세라가 삼성전자 갤럭시 S8와 노트8에 탑재한 전력반도체칩에 대한 수입 금지와 판매 중단을 요청했다.
세계 4위 반도체기업인 브로드컴은 퀄컴 인수에 나섰다. 퀄컴은 스마트폰을 비롯해 다양한 응용분야 반도체 특허를 보유한 기업으로 자율주행차 플랫폼도 갖고 있다.
'친 애플 진영'으로 알려진 브로드컴이 퀄컴 인수에 성공하면 삼성전자는 반도체뿐만 아니라 스마트폰, 스마트카 사업에도 위협을 받을 수 있다. 브로드컴은 최근 도시바 메모리사업 인수전에도 뛰어들어 업계를 긴장시킨 바 있다.
◆공정거래위원회 발 재벌 개혁..기업 옥죄기
이런 가운데 국내에서는 공정거래위원회 발 '재벌 개혁'이 기업들을 겨냥하고 있다. 공정위는 대기업의 공익재단도 조사하겠다며 칼을 뽑았다. 반면, 재계가 장기적 기업경영을 가능하게 하는 수단으로 제안해 온 신주인수선택권(포이즌필), 차등의결권 등 경영권 안정화 장치 도입도 법제화가 되지 않고 있다.
삼성전자 서초사옥 <사진=김학선 사진기자> |
회사 내부적으로는 이건희 회장이 여전히 와병 중이고 이재용 부회장은 구속재판 중이다. 2심은 오는 9일부터 증인신문을 시작해 연내 마무리할 수 있다는 전망도 나오는데 언제 끝나는지보다는 무죄 여부가 중요한 상황이다.
총수의 부재는 임원 인사를 앞두고 여러 '썰'을 만들어내는 재료가 됐다. 시장에서는 이부진 호텔신라 사장이 이재용 부회장 대신 삼성전자를 맡을 것이라는 전망까지 나왔다.
재계는 삼성전자가 임원인사를 통해 50대 '젊은 사장단'을 기용하면서도 기존 경영진들을 회장단으로 임명한 것은 안팎의 불안감을 잠재우는 '안정속 세대교체'라는 평가다.
권 회장은 위기의식을 강조하면서 "사업 재편, 경영 시스템 변화, 기업윤리, 사회적 책임" 등 4가지 방향성을 언급했다. 이는 새로운 경영진이 앞으로 달성해야 할 과제다.
◆과거와는 다른 '뉴삼성' 체질 개선 시급
삼성전자는 사상 처음으로 이사회와 경영진 분리에도 나섰다. 과거 미래전략실과는 다른 형태의 업무조율 조직인 '사업지원TF'도 신설했다. 재계는 '골든 타임'이 지나기 전에 경영 시계를 재가동했다는 평가가 나온다.
하지만 "지금 벌어지는 모든 상황이 낮설다"는 한 고위 임원의 말은 앞으로 '뉴삼성'을 세우기 위해 넘어야 과제가 많다는 말로도 읽힌다.
전문가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에 투명성이 없거나 회사가 왜 존재해야 하는지 철학적 기반 없이 기술에만 매진하면 살아남기 힘들다고 지적한다. 또 기업이 생존하기 위해서는 열린 시각을 갖고 끊임없이 혁신해야 하면 변화에 대응하는 속도나 유연성을 갖춰야 한다고 조언한다.
쇄신 인사는 이런 변화를 수용하기 위한 준비 과정일 뿐이다. 재계 관계자는 "삼성은 현재 한번도 가보지 않은 길을 정착하는 과도기에 있다. 이제까지와는 다른 새로운 경영체질이 필요하다"고 진단했다.
[뉴스핌 Newspim] 황세준 기자 (hsj@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