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이지현 기자] 가상통화 거래의 제도화와 관련해 업계와 정부간 이견이 팽팽하다. 업계에서는 가상통화 거래 시장을 제도화해 안정성을 부여해야 한다고 보지만, 정부에서는 가상통화 거래 제도화는 도박자산 보호 신호로 보일 수 있어 경계해야한다는 입장이다.
국회 정무위원회는 4일 국회에서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를 개최했다. 이날 공청회에는 가상통화 업계에 해당하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학계, 정부 관계자 등이 참석했다.
◆ 업계 "거래소 인가제 등으로 규제해 안정성 확보해야"
김진화 블록체인협회 준비위원회 공동대표는 "현재 가상통화 시장이 과열되어 있고 불순한 행위가 있다는 건 인정한다. 그런데 2년 전부터 오히려 업계가 유사수신행위나 다단계 판매를 막기 위한 규제를 마련해달라고 요구했다"면서 "등록제든 인가제든 규제를 도입해 건전한 업체들은 제대로 영업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 대표는 이어 "미래에 기계 간 금융거래나 자율주행자동차 결제 등에는 암호화폐가 보편화될 것"이라면서 "향후 5~10년을 내다보고 결정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정부의 기조처럼 유사수신으로만 가상통화 거래를 규제하면 사기 행위는 막을 수 있겠지만, 거래소의 부실 운영이나 서버 오작동에 따른 소비자 피해는 아무도 책임지지 않게 된다는 지적이다.
4일 오후 서울 여의도 국회 정무위원회 회의실에서 열린 가상통화 거래에 관한 공청회에서 김진화 블록체인 공동대표가 발언하고 있다. 왼쪽부터 김진화 블록체인 공동대표, 이천표 서울대 명예교수, 정순섭 서울대 법과전문대학원 교수, 차현진 한국은행 결제국장, 한경수 위민 대표변호사, 홍기훈 홍익대 경영대 교수, 김용범 금융위 부위원장. <사진=뉴시스> |
◆정부 "가상통화 거래 제도화 않겠다"…입장 확고
하지만 정부의 입장은 확고하다. 공청회에 참석한 김용범 금융위원회 부위원장은 "가상통화는 정부뿐 아니라 누구도 보장하지 않으며, 거래소를 통한 투기 역시 금융업으로 포섭해 거래소에 공신력을 부여해서는 안된다"면서 "대신 자금세탁과 유사수신 등의 부작용을 야기하는 상황을 심각하게 주시하고 있으며 이를 막기 위한 대응방안을 마련 중"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가상통화공개(ICO)와 관련해서도 기술과 수단이 불확실한데 일반 국민을 대상으로 하는 것은 용인할 수 없다"면서 "전문 투자자 풀 내에서 머물러야 한다고 봐 ICO를 전면 금지한 것"이라고 덧붙였다.
가상통화를 금융업으로 보지 않는다는 정부 입장을 확고히 한 셈이다. 이날 오전 최종구 금융위원장은 혁신성장을 위한 청년창업 콘서트에 참석해 가상통화 거래소 인가제는 하지 않겠다고 언급하기도 했다.
박용진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오늘 국회에서 거래소 인가제를 둘러싸고 공청회를 여는데 금융위원장이 오전에 거래소 인가제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것은 입법권 침해라고 생각한다"면서 "금융위가 금융혁신과 금융소비자 보호에 앞장서야 하는데 투자자 보호 노력은 가로막고, 혁신성장을 방해하고 있는 것 같다"고 말했다.
한편 이날 공청회에 참석한 최성일 금융감독원 부원장보도 가상통화 거래 제도화의 위험성을 강조했다.
최 부원장보는 "우리나라 GDP가 전 세계의 1.6%인데 가상통화 거래량은 많을 때 20%, 보통 10% 내외의 비중을 차지한다. 리스크가 다른 나라에 비해 편중되어 있다"면서 "리스크 관점에서 볼때는 적절한 대응 조치가 필요하다고 본다"고 말했다.
다만 그는 "가상통화를 규제한다는 것은 제도화한다는 것과 같은 얘기인데 이는 투자자들이 더 안심하고 투기할 수 있는, 즉 도박자산을 안전하게 보호해준다는 시그널일 수 있어 우려된다"면서 "그래서 첫번째 규제 방식은 은행을 통한 본인확인 시스템 강화이며, 이를 통해 불법자금 유입이 되지 않도록 거래를 쿨다운 시키는 차원"이라고 덧붙였다.
<사진=셔터스톡> |
◆"과세 논의는 아직 확정 안돼"
가상통화 과세와 관련해서는 아직 정부의 입장이 최종적으로 확정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김용범 부위원장은 "과세 문제에 대해서는 현재 기재부에서 고민 중인데, 아직 가상통화 TF에 의견이 마무리됐다는 보고가 오진 않았다"고 말했다.
한편 전문가들은 이날 공청회에서 가상통화의 정의와 해외 사례를 세심하게 살펴야 한다고 조언했다.
한경수 법무법인 위민 대표 변호사는 "가상통화나 그 거래에 대한 규제를 논의하기 위해서는 가상통화를 어떻게 정의할 것인가가 가장 중요하다"면서 "가상통화를 어떻게 규제할 것인지 그 유형과 거래 방식 및 형태와 관련해 논의가 진척되려면 정의 부분을 더 세밀하게 봐야 한다"고 말했다.
차현진 한국은행 금융결제국장은 "사석에서 일본 당국자의 얘기를 들어보면 일본은 몇년 전 있었던 가상통화 거래소 파산과 관련해 소비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여론 때문에 법률을 만들었지만, 예상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가 당혹스러워 하는 경우가 많다"면서 "대부분의 주요국은 기존 통화질서나 금융시스템을 벗어나기 위해 등장한 가상통화에 대한 규제입법이 정부가 이를 공인하는 것처럼 인식될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 신중한 입장"이라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이지현 기자 (jhle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