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한태희 기자] 일본 공적연금(GPIF)은 세계 최대 규모 연기금이다. GPIF가 주무르는 돈은 2016년 기준 약 1476조원이다. 기금 운용 규모는 한국 국민연금기금(약 612조원)보다 두 배 넘게 많다.
GPIF는 2015년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했다. 스튜어드십코드를 적용한 투자 원칙도 발표했다. 주식 투자를 모두 위탁한 GPIF는 주주 행사 권한도 위탁운용사에 위임했다.
<사진=GPIF홈페이지> |
GPIF가 위탁운용사에게 준 지침은 단 하나로 수렴한다. 장기 주주가치 극대화. 중장기 투자 수익률 증대란 목적에 맞춰 의결권을 행사하라는 얘기다. 이 지침 어디에도 사회책임투자와 같은 단어는 없다. 오로지 수익률을 높일 수 있는 방향으로 의결권을 행사하고 사후 보고를 제대로 하라는 내용만 있다.
이는 스튜어드십코드 도입 논의가 한창인 한국과 다른 모습이다. 한국은 염불(기금 투자 수익률)보다 잿밥(공공임대주택 확대 등 공공투자·기업 지배구조 개선·코스닥 투자 비중 확대)에 관심이 많다.
한국기업법연구소 황인학 수석연구위원은 "국민이 가입 여부도 선택할 수 없는 국민연금으로 수익성이나 재무적 안정성 고려 없이 공공의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활용한다는 계획은 상당히 위험스럽다"고 지적했다.
◆ "바보야, 문제는 수익률이야!"
6일 학계 교수와 투자업계 전문가는 국민연금이 안정적인 방법으로 국민연금기금 투자 수익률을 높인 후 국민에게 수익을 돌려주는 일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야 한다고 말한다. 이 목표는 스튜어드십코드를 도입한 후에도 변하지 말아야 한다는 설명이다. 국민 노후생활 보장이 국민연금제도 도입 목적이기 때문이다.
국민연금은 이런 전문가 시선과 반대 방향으로 달릴 운명이다. 기업 지배구조 개선이나 공공투자 돈줄 마련 방안으로 국민연금기금이 거론돼서다. 국민연금 스튜어드십코드 도입과 더불어 사회책임투자 원칙에 입각한 주주권 행사는 문재인 정부 100대 국정과제에 담겼다.
정부는 국민연금기금이 보유한 기업 지분을 활용해 대기업 길들이기에 나서는 일은 없다고 강조한다. 정부 해명에 시장 반응은 싸늘하다. 정부가 목적(수익률)과 수단(기업지배구조 개선 등)을 혼동한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나온다.
윤창현 서울시립대 경영대 교수는 "국민연금은 국민 노후 주머니를 두둑하게 한다는 수익성 중심의 사고와 의사 결정 체계를 가지고 있어야 한다"며 "국민연금이 재벌 개혁을 위해 있는 게 아니다"라고 꼬집었다.
이런 우려를 줄이려면 GPIF나 해외 자산운용사 의결권 행사 원칙을 파악한 후 국내 형편에 맞게 적용해야 한다. 전문가는 참고할 사례로 GPIF와 함께 블랙록(blackrock)을 꼽는다.
◆ 수익률 높이고 스튜어드십 활동 제대로 하려면 전문성 길러야
블랙록은 5000조원이 넘는 돈을 굴리는 미국 자산운용사다. 블랙록은 주식을 보유한 모든 회사 주주총회에 참석해 의결권을 행사하는 자산운용사로 유명하다. 블랙록은 의결권을 행사할 때 해당 안건이 기업 장기 성과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먼저 검토한다. 친환경적인 활동이라도 수익률에 영향을 주는 과도한 주주 제안에 과감히 반대표를 던진다.
미국 캘리포니아 공무원연금 캘퍼스(좌)와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우) <사진=유진투자증권> |
이를 수행하려면 전문성 강화가 필수다. 기금 운용 관련 전문 인력 충원은 기본이고 의결권 행사 관련 전담 인력도 뽑아야 한다.
실제로 GPIF는 스튜어드십코드 활동을 제대로 하기 위해 전담 부서를 꾸렸다. 2016년 내부 태스크포스(TF) 수준의 '스튜어드십강화 그룹'을 '스튜어드십&ESG'로 격상하고 전문가로 채웠다. 블랙록 또한 전문가 30명으로 구성된 전담 조직 'BIS'를 구성했다.
전담 조직 구성과 외부 의견을 듣는 일도 필요하다. 민간 의결권 자문사를 활용하라는 얘기다. 미국 최대 규모 연기금으로 캘리포니아 주정부 공무원 연금을 운용하는 캘퍼스(CalPERS)는 독립된 전담 부서에 의결권 행사를 위임한다. 전담 부서는 ISS와 같은 의결권 대행 전문기관 자문을 참고한다.
국내 의결권 자문 회사인 서스틴베스트 류영재 대표는 "민간 의안 분석기관 의견을 복수로 받아 이를 참고해 결정하면 국민연금이 연금사회주의 논란이나 관치 논란을 피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