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노민호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 한·미 연합군사훈련 연기 카드를 꺼내들며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성공 개최를 위한 승부수를 띄웠다. 평창올림픽은 물론 북핵문제 해결을 위해 대화 계기를 마련하겠다는 다목적 카드다. 관건은 미국과 북한의 호응이다.
문 대통령은 19일 미국 NBC 방송과의 인터뷰에서 내년 초 평창동계올림픽·패럴림픽 때까지 한·미 연합훈련을 연기할 수 있다는 입장을 확인하고 이를 미국 정부에 제안했음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일반적으로 매년 3월 초에 열리는 키리졸브 연습과 독수리훈련은 평창동계올림픽 기간(2월 9일~25일)과는 겹치지 않을 것으로 보이나 패럴림픽(3월 9일~18일)과 겹칠 가능성이 높다.
연례적 방어적 성격의 한·미 연합훈련을 두고 북한은 그동안 극도로 예민한 반응을 보여 왔다. 2010년에는 키리졸브 연습 마지막 날 '천안함'을 폭침시키기도 했다.
이러한 선례 때문에 정부 입장에서는 평창동계올림픽 개최 준비에만 집중할 수 없는 상황이다. 정부는 평창동계올림픽을 '평화올림픽'으로 치르겠다는 포부를 밝혔지만 북한 도발이라는 '변수'는 늘 존재한다.
문 대통령의 이번 한·미 연합훈련 연기는 일단 평창 동계올림픽의 안전 개최를 위해 북한을 자극할 수 있는 요소를 줄이는 데 무게를 두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문재인 대통령이 19일 대통령 전용 고속열차 '트레인1'에서 미국 NBC와 인터뷰를 했다. <사진=청와대> |
◆ 미·북 호응 여부 '촉각'…'한반도 운전자론' 탄력 받나
결국 문 대통령의 이번 파격 제안의 성공 여부는 미국과 북한의 호응에 달려 있다. 먼저 한·미 동맹을 감안할 때 한·미 연합훈련 연기는 한국 정부 단독으로 결정할 수 있는 사안이 아니다. 훈련 연기를 제안한 한국 정부 입장으로 볼 때 사실상 미국에 결정권이 넘겼다고 볼 수 있는 것이다.
미국이 훈련 연기에 호응한 이후 북한에게 공이 넘어갔을 때도 문제다. 북한이 평창올림픽 선수단 파견과 도발 중단 등 긍정적인 신호를 보낼지는 미지수이기 때문이다.
북한이 도발을 유예하고 평창올림픽에 순수단 참가 의사를 밝힌다면 한국 정부 입장에서는 올림픽 성공 개최에 동력을 얻게 되고 한반도 긴장 국면 완화의 발판을 만들게 된다. 특히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한국 정부가 미국에 먼저 제안한 만큼 문 대통령의 '한반도 운전자론'에도 힘이 실리게 된다.
임재천 고려대 북한학과 교수는 20일 뉴스핌과의 통화에서 "북한이 호응해올지를 가늠하는 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다만 일단 군사훈련이 연기된다면 북한은 상당한 압박을 받을 것"이라고 예상했다.
임 교수는 "북한 입장에서는 한국과 미국이 이 정도까지 평화 제스처를 보였는데 쉽사리 추가 도발을 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만약 추가 도발을 하게 되면 더욱 강력한 대북제재가 필요함을 북한 스스로가 증명하는 꼴이 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렉스 틸러슨 미국 국무부 장관 <사진=블룸버그통신> |
◆ 미국 사전조율 거쳤나…'자충수' 전락 우려 제기
미국 의회전문매체 더 힐에 따르면 렉스 틸러슨 미 국무장관은 19일(현지시각) 크리스티아 프릴랜드 캐나다 외무장관과 회담 후 가진 공동기자회견에서 "2018 동계올림픽에 앞서 한국, 일본과 연합 군사훈련을 연기하려는 어떤 계획도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문 대통령이 한·미 연합훈련 연기 계획을 밝힌 이후에 나왔기 때문에 미국과의 사전 조율이 이뤄졌는지를 두고 의문이 증폭되고 있다.
청와대 관계자는 이날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틸러슨 장관의 발언은) 제가 알 수 없는 부분"이라며 "(한·미 연합훈련 연기 관련) 의견을 저희가 전달한 것은 확실하다. 이야기가 있었던 것도 맞다"고 설명했다.
미국에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제안한 시기와 관련해서는 "시기가 좀 됐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정의용 국가안보실장과 허버트 맥매스터 백악관 국가안보보좌관 사이의 '핫라인'을 통해 이뤄졌는지를 묻는 질문에도 "추측에 맡기겠다"고만 답했다.
한국과 미국의 미묘한 입장 차이를 두고 일각에서는 한·미 간에 엇박자가 야기될 수 있다는 우려를 제기하기도 한다. 문 대통령의 전략적 승부수가 자칫 자충수로 전락할 수 있다는 지적이다.
박휘락 국민대 정치대학원장은 "북한 입장에서는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긍정적으로 보고 말 것도 없다. 이미 '핵무력 완성'을 선포했고 최종 목표인 적화통일에 점점 가까워지고 있다고 판단할 것"이라며 "미국과의 의견 차이와 한·미 동맹 균열은 북한이 바라는 것"이라고 우려했다.
해군 제1함대사령부 제3특전대대(UDT/SEAL) 대원들이 지난 3월 20일 강원 동해시 해안 일대에서 키리졸브(KR) 및 독수리 훈련(FE)의 일환으로 적진을 침투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 "한·미 연합훈련 연기 가능성 있다…일종의 배드캅-굿캅 전략"
한·미 연합훈련이 실제 연기될 가능성이 높다는 시각도 있다. 평화를 강조하는 올림픽 정신에 비춰 볼 때 군사훈련 연기에 명분이 있다는 것이다.
아울러 미국 정부 인사들이 한국의 제안에 즉각 호응하는 모습을 보여주지 않는 것은 대북 강경책을 천명한 상황이기 때문이라는 진단이다.
김동엽 경남대 극동문제연구소 교수는 "그간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발언도 있고 미국 스스로가 북한에게 먼저 (대화 제의 등) 뭔가를 할 수 없다"며 "이는 북한에게 굴하는 모습으로 비춰질 수 있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김 교수는 "또 대북 강경책을 밝힌 미국 정부는 한국 정부의 한·미 연합훈련 연기 제안을 쉽게 수용하는 것으로 대내외에 비춰지는 것을 경계할 것"이라고 지적했다.
이어 "때문에 미국은 단호한 입장을 유지하면서 한·미 동맹과 세계 평화의 차원의 대의를 위해 (한·미 연합훈련 연기를) 수용한다는 모양새를 취할 가능성이 있다"며 "일종의 배드캅-굿캅 같은 역할 분담이 있지 않을까 본다"고 내다봤다.
임재천 교수는 "올림픽 기간 중 군사훈련 중단은 명분이 있다"면서 "전반적으로 긍정적으로 받아들일 가능성이 높다"고 말했다.
임 교수는 "다만 내년 초 북한의 평화공세가 예상되는 만큼 한·미 연합훈련 연기는 연기이고 대북제재는 별도로 가야한다"면서 "이는 북한이 일정정도 비핵화 의사를 보일 때까지 유지돼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뉴스핌 Newspim] 노민호 기자 (no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