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이규하 기자]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 순환출자 가이드라인과 관련해 공정위가 내용적 완결성은 물론 절차적 정당성도 지키지 못했던 점, 통렬하게 반성한다. ‘뼈를 깎는 내부혁신을 통해 공정경제의 버팀목이 되겠다’라고 한 각오를 다시 한 번 밝힌다.”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은 21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 브리핑을 통해 이 같이 소회(所懷) 밝혔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취임 직후 공정거래위원회의 내부사정을 파악하면서 ‘과거 공정위에 대한 반성과 각오를 밝힐 기회가 있다’는 점을 언급해 왔다.
사이다발언과 함께 잇단 설화(舌禍)에도 엮이면서 ‘사과 상조’라는 애칭이 붙였지만, 국민들에게 공개적인 사과와 반성을 표명한 것은 가습기 살균제 사건과 순환출자 가이드라인으로 꼽힌다.
김상조 위원장은 이날 공정위 전원회의 결과인 순환출자 해석기준 변경안을 발표하면서 또 한 번 고개를 숙였다. 2015년 삼성물산-제일모직 합병과 관련한 신규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쟁점 중 일부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김상조 위원장은 “문제는 2년 전 공정위가 판단 기준을 세울 때 ‘판단기준의 일관성을 상실했다’라고 하는 부분”이라며 “이 해석지침의 변경을 하고자 할 때 그 내용적 일관성을 회복하는 데 1차적인 초점을 맞췄다”고 운을 뗐다.
공정위는 2015년 합병 과정에 기준이 되는 순환출자 가이드라인 속 ‘고리 내 소멸법인과 고리 밖 존속법인’의 판단을 고리 강화가 아닌 신규 형성으로 정정했다.
21일 김상조 공정거래위원장이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합병 관련 신규 순환출자 금지 제도 법 집행 가이드라인’ 브리핑 현장에서 고개를 숙이고 있다. <사진=공정거래위원회 제공> |
신규 형성에 따라 신 삼성물산의 순환출자도 새로운 고리로 형성됐다. 합병 전에는 ‘삼성SDI→옛 삼성물산→삼성전자→삼성SDI’로 연결된 순환출자고리를 보여왔다. 하지만 합병 후 옛 삼성물산이 소멸되면서 삼성SDI가 보유하게 된 삼성물산 주식 904만2758주(4.7%)를 전량 매각해야한다는 결론을 내렸다.
삼성은 기존 가이드라인에 따라 삼성SDI 500만주(2.6%)를 매각한 상황이다. 이를 제외하면 추가 매각할 주식은 404만2758주(2.1%)가 된다. 해소금액은 20일 종가기준인 5276억원 규모다.
앞서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에 대한 특검 수사 과정에서 ‘청와대 등의 외압으로 삼성이 처분해야 할 주식 수가 900만주에서 500만주로 축소됐다’는 의혹이 제기된 바 있다.
당초 공정위 실무진은 합병으로 삼성SDI와 신 삼성물산 간 출자 고리가 ‘신규’ 형성됐다는 판단을 내려왔다. 삼성SDI가 삼성물산 주식 전량(900만주)을 매각해야한다는 게 기존 해석이었다.
그러나 위원회 최종 의견에서는 기존 고리의 ‘강화’로 해석하는 등 처분 주식 수를 500만주로 줄였다. 이를 놓고 올해 8월 법원은 이 부회장 1심 판결문을 통해 ‘공정위에 대한 삼성과 청와대의 로비가 성공했다’고 판단했다.
이 와 관련해 김상조 위원장은 “삼성의 입장에서는 기존의 신뢰가 침해됐다는 것을 근거로 소송을 제기할 수 있다. 이는 삼성에 헌법상 보장된 권리”라며 “만약 삼성이 소송을 제기한다면 그에 따른 판단은 최종적으로 법원의 몫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김 위원장은 이어 “이 부회장의 혐의에 대한 법원의 판단이 달라질 수도 있겠지만, 1심 법원에서 인정한 사실관계가 크게 변경되지는 않을 거라고 생각을 한다”며 “삼성의 미래전략실이 순환출자 문제와 관련한 여러 가지 접촉을 했고, 그 결과로 공정위의 실무안이 변경됐다고 하는 사실관계 자체가 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삼성의 순환출자 고리 관련 현황 |
그는 또 “삼성 문제 하나만을 놓고 본다면 과거의 판단을 변경하는 것이기 때문에 신뢰보호의 문제를 제기할 수 있을 것”이라며 “다만, 합병에 따른 순환출자 해소의 문제는 삼성 케이스 하나만 있는 것이 아니고 지금 진행되고 있는 롯데 케이스를 비롯해 많이 발생할 수 있다. 그런 면에서 형식 강화 형태로 제기하는 것이 시장의 예측가능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김상조 공정위원장은 특히 “비록 현직이 아니라고는 하나 김학현 전 부위원장의 특정개인의 문제에 대해 의견을 말하기는 어려울 것 같다”며 “단 500만주가 위법한 판단이라고 결론을 내리긴 어려운 문제다. 500만주와 900만주 오답·정답 문제가 아닌 판단의 문제”라고 부연 설명했다.
김 위원장은 “아직도 결론을 내리기에는 어려운 문제가 있다. 그 과정의 저촉과 변경 과정에서 공직자로서 지켜야 할 부분을 훼손한 부분이 있느냐는 것은 또 별개의 문제”라며 “공직자의 윤리준칙과 관련된 문제로 위법성을 말한다면 그럴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이규하 기자 (judi@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