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정경환 기자] 문재인 대통령이 '개헌 가이드라인'까지 내놓으며 국회를 압박하고 나섰다. 문 대통령은 10일 신년기자회견을 통해 올 2월까지 국회에서 개헌안 합의가 안되면 3월에 정부안으로라도 6월 개헌을 추진하겠다는 데 방점을 찍었다. 하지만 국회 구성상 제1야당인 자유한국당의 협조 없이는 개헌안의 국회 통과가 사실상 불가능하다. 정치권에서 현실적으로 국회 처리가 불가능하다는 말이 일찌감치 나오는 이유다.
11일 정치권 및 학계에 따르면, 문 대통령이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개헌 국민투표 실시를 강하게 밀어붙이는 것은 개헌정국을 이슈화하는 한편 국정운영의 주도권을 정치권에 넘기지 않겠다는 의지로 풀이된다. 일각에선 '안 되더라도 손해 볼 게 없다'는 계산이 깔려있다는 분석도 내놓았다. 고도의 정치적 셈법에 따른 것이란 얘기다.
◆ "개헌 안 되면 지방선거서 '야당 책임론' 묻는 한 수"
윤태곤 의제와전략그룹 더모아 정치분석실장은 "대선 공약에 대한 강한 의지가 있을 것"이라며 "설사 한국당의 반대로 개헌이 안된다 해도 정치적으로 손해볼 것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다. 지방선거에서 한국당의 책임론이 대두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윤 실장은 이어 "(문 대통령이)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를 동시에 추진하지 못할 가능성도 충분히 염두에 두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앞서 문 대통령은 전날 신년 기자회견에서 ""6월 지방선거 때 개헌 국민투표를 함께 실시해야 한다"며 "그러기 위해선 늦어도 3월 중에는 개헌안이 발의돼야 한다"고 못박았다.
그러면서 "국회 헌법개정 특별위원회에서 2월 말까지는 개헌안에 대한 합의가 이뤄져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며 "개헌특위 논의가 2월 합의를 통해 3월 정도에 발의가 가능하다고 본다면 국회 논의를 더 지켜보고 따를 것"이라고 했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 10일 청와대에서 신년 기자회견을 개최, 신년사를 발표하고 있다. <사진=청와대> |
사실 이는 개헌특위가 계획한 기존 로드맵과 별 차이가 없다.
지난해 12월 29일 출범한 개헌특위는 2018년 2월 말 개헌안 마련을 목표로 잡았다. 이후 3월 개헌안을 국회에 제출하고, 6월 13일 지방선거에서 이를 국민투표에 부쳐 개헌을 완료한다는 계획이다.
하지만, 국회에서는 권력구조 개편 등 핵심 쟁점을 놓고 여야가 팽팽히 맞서고 있다. 개헌안이 국회를 통과하려면 국회 재적의원 3분의 2 이상의 동의가 있어야 하는데, 문 대통령은 국회를 달래기는 커녕 오히려 선전포고를 했다. 특히 현재 116석을 가진 한국당의 협조를 끌어내지 못하는 한 개헌은 불가능하다.
◆ "'밑져야 본전'...정치적으로 손해 안 봐"
정치평론가 신율 명지대 교수는 "'밑져야 본전'이라고 보는 것"이라고 전제한 뒤 "약속 지키려고 개헌 추진했는데 한국당 때문에 못했다고 하면 된다"고 분석했다.
합의가 어렵다면, 가장 이견이 심한 권력구조 개편은 차후 개헌으로 연기할 수 있다고도 했다. 국회와 정부 간 합의되지 않고, 만약 정부가 하게 된다면 아마 국민들이 공감하고 지지할 수 있는, 국회의 의결도 받아낼 수 있는 최소한의 개헌으로 좁힐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문 대통령은 "국회, 국민이 지지할 수 있는 최소 분모들을 찾아내는 것이 필요하다"며 "그런 최소분모 속에 지방분권과 국민 기본권 확대는 너무 당연하다. 다만 중앙권력구조를 어떻게 개편할지는 많은 이견들이 있을 수 있는 부분인데, 합의를 이뤄낼 수 없다면 개헌을 다음으로 미루는 방안도 있다"고 언급했다.
그러자 당장 논란이 일었다. 권력구조 개편이 가중 중요한 부분인데 그게 빠지면 개헌의 의미가 축소된다는 이유에서다.
◆ "권력구조 개편 빠지면 꼬리가 몸통 흔드는 '왝더독'"
신 교수는 "권력구조 개편이 핵심인데 그걸 뺀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된다"고 비판했다.
윤 실장은 "권력구조 개편이 빠지면 긴장도가 떨어질 것"이라며 "이리 되면 6월 개헌 자체를 위한 개헌이 돼버리는 것 아닌가"라고 반문했다.
한국당 잘못이 분명 있지만, 개헌 논의 자체만 보면 그렇게 볼 수도 있다는 설명이다.
그는 "원래 권력구조 개편이 필요하다고 해서 개헌 얘기가 나왔고, 거기에 지방분권, 기본권 강화가 추가된 건데, (이렇게 되면) 왝더독(Wag the Dog, 꼬리가 몸통을 흔들다), 즉 거꾸로 돼버린 느낌이 있는 거다"고 강조했다.
아울러 지방분권이나 기본권 강화 개헌 같은 경우는 당장 급한 것도 아니라는 지적도 나온다. 특히 지방분권은 현행 헌법으로도 얼마든지 가능하다는 것이다.
윤 실장은 "사실 지방분권 같은 경우는 개헌으로 뭘 하겠다는 건지 잘 모르겠다"면서 "선언적인 것을 담을 수는 있겠지만, 지방재정 늘리고 하는 것들은 헌법과는 상관 없는 법률사항이다. (현행 헌법 때문에) 지금 지방분권 못하고 있는 게 있나"라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지방분권과 기본권 강화를 뒤로 늦추면 안 되는 것인가"라며 "정치권이 다 약속을 한 것이니 6월에 하는 게 맞긴 한데, 지방분권 개헌한다는 게 무슨 말인지 좀 의아한 것은 있다. 한국당은 그런 지점을 파고들 수 있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오충환 충남대학교 헌법학 교수는 "재정부분 같은 건 헌법 아니라 기타 법률로도 가능하다"며 "상징적인 걸 담겠다는 의미로 본다. 구체적 조항보다는 헌법에 큰 지침을 넣자는 것"이라고 말했다.
◆ 6월 지방선거와 개헌 국민투표 동시 실시 당위성 의문
개헌 국민투표를 효율성 차원에서 올 6월 지방선거와 동시에 치러야 한다는 주장도 설득력이 떨어진다.
문 대통령은 전날 기자회견에 앞서 발표한 신년사에서 "이번 기회(6월 지방선거)를 놓치고 별도로 국민투표를 하려면 적어도 국민의 세금 1200억원을 더 써야 한다"고 했다.
그러나 문 대통령과 같은 논리라면, 이는 권력구조 개편을 따로 떼내는 것과 별반 차이가 없을 수 있다. 그 역시 별도의 시간과 비용을 각오해야 한다.
오 교수는 "그럴 수도 있다"면서도 "한국당이 올 연말에 개헌하자고 하는데, 그에 합의한다면 굳이 지방선거에서 서둘러 할 건 없을 것"이라고 했다.
신 교수는 "(문 대통령이) 앞으로도 (한국당을 향해) 손을 내밀지 않을 것"이라며 "시간을 놓고 그 안에 하려고 하지 말고 내용에 충실하려고 해야 한다. 시간을 공약한 게 아니고 개헌을 공약한 것"이라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정경환 기자 (hoa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