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 = 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올해 세계경제포럼(WEF)을 지켜본 투자자와 기업 경영자들은 두 가지 결론에 입을 모으고 있다.
약달러와 무역전쟁. 앞으로 글로벌 경제가 두 가지 사안과 한판 힘겨루기를 벌이게 될 것이라는 얘기다.
WEF 참석을 위해 다보스에 도착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출처=블룸버그> |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를 필두로 스위스 다보스에 모인 주요국 지도자들이 세계화의 중요성을 강조한 한편 보호주의 정책을 강하게 경계했지만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은 폐막일인 26일 연설에서 예상대로 ‘아메리카 퍼스트’를 앞세웠다.
기존의 불공정한 무역 관행을 용인하지 않겠다는 입장을 분명히 밝힌 것. 앞서 윌버 로스 미 상무장관을 포함한 그의 참모들 역시 같은 목소리를 냈다.
트럼프 대통령은 중국을 직접적으로 언급하지 않았다. 하지만 월스트리트저널(WSJ)을 포함한 주요 외신과 일부 투자자들은 그가 중국을 겨냥하고 있다는 데 의견을 모았다.
다보스로 향하기 앞서 태양열 제품과 세탁기에 대한 세이프가드를 발동한 트럼프 대통령이 앞으로 무역 장벽을 더욱 높일 것이라는 관측이다.
이탈리아의 피에르 카를로 파도안 재무장관은 다보스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미국의 무역 규제는 유럽 경제에 단순히 약달러가 갖는 충격보다 더 커다란 흠집을 낼 것”이라며 “미국의 자국 우선주의가 크게 우려된다”고 말했다.
트럼프 대통령은 보호 무역주의 정책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다보스에 모인 기업인들에게 미국을 비즈니스하기 훌륭한 장소라며 적극적인 ‘세일즈’를 펼쳤다.
25일 만찬 자리에는 10여명의 유럽 기업인들을 초대, 지난해 취임 직전과 흡사한 투자 유치 행보에 나섰다.
사실 이 같은 움직임은 트럼프 대통령에게 제한된 것은 아니다. 테레사 메이 영국 총리는 IT 기업 수장들과 별도의 모임을 갖고 EU를 탈퇴에 따른 파장에 선제적으로 대응했다.
특히 런던에서 영업이 정지된 우버에 대해 메이 총리는 WEF의 연설에서 “문제가 발생했지만 비즈니스가 완전히 봉쇄돼서는 안 된다”라며 해외 기업들을 포용하는 모습을 보였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필립 하몬드 영국 재무장관은 포럼 기간 중 가진 모임에서 EU와 기존의 자유무역협정(FTA)이 아니라 보다 야심찬 합의를 이끌어내야 한다고 주장했다.
유로화와 달러화 <사진=블룸버그> |
유럽 단일시장 잔류가 불투명한 상황에 소위 ‘이혼’ 이후에도 최대 교역시장을 포기할 수 없다는 입장을 드러낸 셈이다. 이는 최근까지 독일을 포함한 유럽 주요국들이 밝힌 입장과는 엇갈리는 것이다.
미국의 보호 무역주의 정책 행보에 중국을 기웃거리는 반응도 포착됐다. 네덜란드의 마크 뤼터 총리는 트럼프 행정부가 주도하는 새로운 국제 질서에 한 걸음씩 접근하는 한편 핵심 무역 파트너로 중국을 택할 것이라는 뜻을 밝혔다.
앙겔라 메르켈 독일 총리와 엠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은 보호주의에 강한 반대 목소리를 냈고, 세계무역기구(WTO) 역시 잠재적 리스크를 경고했다.
하지만 보호 무역주의를 앞세우는 미국과 세계화를 주장하는 그 밖에 주요국의 헤게모니 논쟁 이면에는 이미 무너지기 시작한 기존의 무역 질서 속에서 세력을 확대하려는 각개전투가 벌어지고 있다는 분석이다.
다보스가 던진 또 한 가지 예고는 약달러다. 무역시장에서 이점을 위해 약달러를 선호한다는 스티븐 므누신 미국 재무장관의 다소 노골적인 발언에 대해 트럼프 대통령이 강달러를 원한다며 수습하고 나섰지만 투자자들은 달러화가 아래로 기울 것이라는 데 공감대를 형성하고 있다.
BNP 파리바의 해리 칠링구리안 글로벌 상품 전략 헤드는 마켓워치와 인터뷰에서 “므누신 장관과 트럼프 대통령의 엇갈리는 발언 속에 유가도 갈피를 잡지 못하는 양상”이라며 “원유시장의 트레이더들은 트럼프 행정부가 적어도 단기적으로는 약달러를 선호한다는 쪽으로 결론을 내리는 움직임”이라고 전했다.
이날 달러 인덱스는 장중 0.45% 하락하며 89.05에 거래됐다. 전날 트럼프 대통령의 발언에 반등했던 달러화가 내림세로 돌아선 것. 트럼프 대통령이 달러화의 숏커버링을 이끌어냈지만 투자 심리를 진정시키지 못했다는 평가다.
월가에서는 약달러 수혜 종목을 가려내는 한편 그 밖에 투자 전략을 세우는 움직임이 두드러진다. 해외 매출 비중이 높은 다국적 기업과 원자재 섹터가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는 판단이다.
달러화 낙폭이 커질 경우 금융시장과 글로벌 경제 전반에 한파를 몰고 올 것이라는 경고도 제기됐다. 지난해 자산 가격과 실물경기의 상승 사이클 이면에는 약달러가 자리잡고 있다는 얘기다.
물가 상승이 확대되면서 연방준비제도(Fed)의 금리인상이 속도를 낼 경우 주식부터 정크본드까지 위험자산의 가격 상승을 꺾어 놓을 것이라는 지적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