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기락 기자]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K스포츠재단에 지원했다가 돌려받은 70억원에 대해 뇌물이라는 재판부의 판결이 나왔다. 대가성을 기대한 ‘묵시적 청탁’이 있었다는 판단에서다. 반면,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 항소심에서는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보지 않았다.
13일 서울중앙지법 형사합의22부(김세윤 부장판사)는 뇌물 공여 혐의로 불구속기소된 신동빈 회장 1심에서 징역 2년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했다.
재판부는 신 회장이 K스포츠재단에 건넨 70억원을 뇌물로 판단해 유죄를 선고했다.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로, 묵시적 청탁이란 것이다.
당초 기업별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은 삼성 204억원으로 가장 많았고, 현대차그룹(현대차·기아차·현대모비스 128억원), SK(111억원), LG(78억원), 포스코(49억원), 롯데(45억원), 한화(25억원), CJ(13억원) 등이다. 이 중 삼성만 구속기소됐다. 여기에 롯데와 SK그룹은 최순실 씨로부터 추가 출연을 받았다.
재판부는 “롯데는 2015년 11월 면세사업자 선정에서 탈락한 월드타워 면세점의 특허 재취득이 반드시 필요한 상황”이라며 “롯데그룹에서는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 취득 및 영업 공백 최소화를 위해 청와대, 국회, 관세청 관계자들을 접촉해 월드타워 면세점과 관련된 롯데그룹의 애로사항, 건의사항을 전달하는 등 전방위적인 노력을 했다”고 설명했다.
즉, 70억원의 돈이 월드타워 면세점 특허와 관련된 대통령의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로, 묵시적 청탁의 성격이 있다고 판단한 것이다.
'최순실 국정농단 사건'에 연루돼 뇌물공여 혐의를 받고 있는 신동빈 롯데그룹 회장이 13일 오후 서울 서초동 서울중앙지법에서 열린 1심 선고공판을 마치고 호송차에 오르고 있다. 신 회장은 이날 1심에서 징역 2년 6개월에 추징금 70억원을 선고 받고 법정구속됐다. /김학선 기자 yooksa@ |
게다가 박근혜 전 대통령이 신 회장과 단독 면담하는 자리에서 K스포츠재단에 대한 추가 지원 요청을 최순실 씨가 알고 있었고, 두 사람 사이의 대가 관계가 존재한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그런가 하면, 지난 5일 열린 이재용 부회장의 항소심 재판부에서는 이 부회장의 재단 출연금을 뇌물로 보지 않았다. 이 부회장이 박근혜 전 대통령에 대해 ‘묵시적 청탁’을 하지 않았다는 판단에 따라 범죄 성립이 되지 않았다.
이처럼 재단 출연금을 두고 신 회장과 이 부회장의 유무죄가 갈린 이유는 대가성으로 해석된다. 신 회장은 면세점 신규 특허 취득을 위해 박 전 대통령에게 부정한 청탁을 한 반면, 이 부회장은 부정한 청탁은 물론, 묵시적 청탁 조차 없었다는 게 재판부의 판단이다.
때문에 돈을 주거나, 주려고 약속했다고 하더라도 재판부가 ‘대가성’을 어떻게 판단하느냐에 따라 유무죄 판결이 나눠지는 것으로 보인다.
이 부회장 항소심 재판부는 “묵시적 의사 표시가 있으면 제3자 금품과 직무집행에 대한 대가라는 공통인식 양해가 있어야 한다”면서 “승계 작업이 명확하지 않으면 이 판단에 영향을 주므로 제3자 뇌물 법률 요건에 반한다”고 설명했다.
다만, 신 회장 1심에서는 SK의 뇌물공여 혐의가 언급됐다. 2016년 2월 SK그룹 최태원 회장이 박 전 대통령 독대 이후 최 씨 측에서 89억원을 K스포츠재단에 추가 출연해달라고 요청했으나, SK는 지급하지 않았다.
당시 SK는 K스포츠재단의 지원 요구에 대해 ‘사업 실체가 없고 금액이 과하다’며 지원액수를 30억원으로 낮추자, 최씨가 거절했기 때문이다. 이 때 최씨에게 추가 출연금을 냈다면, SK그룹 현안과 맞물려 최태원 회장은 신 회장과 같은 유죄를 받을 수 있다고 보이는 대목이다.
최태원 SK그룹 회장 [뉴스핌DB] |
재판부는 “대통령은 (최태원 회장과) 단독 면담 이전에 이미 워커힐 면세점, CJ헬로비전 M&A와 관련된 SK그룹의 현안에 대해 인식하고 있었다”면서 “SK그룹 역시 대통령이 SK그룹의 현안과 관련된 직무집행의 대가로 지원을 요구하는 점을 인식하고 있었다고 판단된다”고 설명했다.
앞서 검찰은 최태원 SK 회장의 뇌물 공여 혐의를 ‘무혐의’ 처리, 재판에 넘기지 않았다. SK의 재단 출연금에 대가성을 입증할 만한 증거가 충분하지 않았기 때문으로 풀이되는 대목이다. 삼성과 SK, 롯데 외에 현대차그룹, LG, 한화, CJ 등 재단에 출연한 기업의 총수도 기소되지 않았다.
법조계 관계자는 “기업들의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은 모두 무죄로 나온 것이고, 신동빈 회장은 면세점 관련해서 추가로 70억원을 낸 것이 롯데그룹의 현안을 해결하기 위한 청탁으로 재판부가 판단했다”며 “SK는 무혐의 처리에 이어 이번 재판을 통해 그동안의 혐의를 완전히 벗어났다고 볼 수 있다”고 말했다.
[뉴스핌 Newspim] 김기락 기자 (peoplekim@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