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민경하 기자] 2018년 2월19일 오후 2시. 서울시 송파구 풍납동에 위치한 삼표 풍납공장 주변에는 적막함이 감돈다. 공장 외벽과 담벼락 너머 내부 시설물에는 '생존권'을 호소하는 현수막이 보인다. 이어서 공장으로 들어오는 레미콘 차량에도 현수막이 달려있다. 1시간 동안 목격한 레미콘 10대 중 현수막이 없는 차량은 단 1대도 없다.
풍납공장으로 들어서는 레미콘. 앞부분에는 생존권 투쟁에 대한 현수막이 걸려있다. <사진=뉴스핌 민경하기자 204mkh@> |
A씨가 말하는 생존권 문제는 공장 이전에 관한 것이다. 삼표 풍납공장은 풍납토성 복원사업 문제로 국토부와 소송 중이다. 만약 소송에서 패하게 되면 삼표는 보상금을 받고 부지를 비워야 한다.
부지를 비우면 국토부와 송파구청은 공장 이전을 보장하지는 못한다는 반응이고, 회사는 보장 없이 공장을 이전할 수는 없다는 반응이다. 다른 레미콘 공장에는 이미 일자리가 꽉 차 기사들 입장에서는 일하던 공장이 사라지는 셈이다.
삼표 풍납공장에서 레미콘 기사로 일해 왔다는 A씨는 착잡한 목소리였다. 그는 "지금 상황은 우리에게 이전이 아닌 폐쇄다. 생존권이 보장된 대책이 전혀 없다"며 "생존권이라는 게 다른 게 아니다. 지금하고 있는 일자리만 보전해달라는 것"이라고 말했다.
A씨 같은 레미콘 기사들이 풍납 공장에 출입한 지는 평균 20년. 그중 공장 설립 때부터 40년 가까이 일하고 있는 기사도 15명에 이른다. 게다가 생계를 책임져야 하는 30~50대 기사들도 절반에 가까운 50여명으로 기사들에게 풍납 공장은 삶의 터전이다. A씨는 "한번 일하면 기름값 포함해서 4만원씩 받고 하루에 5번 정도 나간다"며 "주민들이 불편할까봐 도로 이용도 자제하고 항상 죄송한 마음으로 일해왔다"고 하소연했다.
풍납공장은 물론 인근 주거지역도 복원사업 부지에 포함돼있다 <사진=민경하기자 204mkh@> |
인근에서 만난 주민들은 공장 이전 필요성을 얘기하면서도 레미콘 기사들의 실정을 안타까워했다. 풍납공장 인근에서 식당을 하는 B씨는 "공장이 새벽에 가동돼서 소음이 크고, 먼지도 심한 데다가 큰 차가 다니니 아이들에게도 위험하다"고 하면서 "일자리를 보장받지 못하는 것은 잘 몰랐다. 항상 식당에도 오시던 분들인데..."라고 말끝을 흐렸다.
또 다른 주민 C씨는 "삼표 공장의 이전문제도 있지만 주민들도 이전을 하고 있는 상황"이라며 "우리는 집을 옮기는 거지만 기사들은 일자리를 옮겨야 하는 게 아니냐"고 안타까워했다. 실제로 풍납 공장 기사 중 6명은 복원사업으로 인해 집도 옮겨야하는 풍납동 주민이다.
마지막으로 A씨는 "기사들에게 아무 대책없이 나가라는 것은 굶어죽으라는 것과 같다"며 "지금 이 상황에서 대책을 마련해주지 않은 채 일이 진행되면 우리들은 물리적인 충돌도 각오할 것"이라고 말했다. 누군가가 배제된 풍납공장을 둘러싼 갈등의 불씨는 점차 커지고 있었다.
[뉴스핌 Newspim] 민경하 기자 (204mkh@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