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황유미 기자] 성추행 논란으로 고은 시인을 비롯해 연극연출가 오태석, 이윤택씨의 작품이 교과서에 빠질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작품성만으로 평가해야한다는 의견과 작가의 사생활과 작품은 분리될 수 없다는 의견이 팽팽한 가운데 이들 작품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왼쪽부터) 시인 고은, 연극연출가 이윤택, 오태석 [뉴시스] |
◆ 수능에서도 출제된 '고은' 시 11개
고은 시인의 시·수필이 실려 있는 교과서는 11종에 달한다. 교육부 조사 결과 중학교 2학년 국어 검정 교과서 1종에 고은의 시 '그 꽃'이, 고교과정 6개 출판사 문학 교과서에는 '선제리 아낙네들' 머슴 대길이' '어떤 기쁨' 등이 포함돼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올해 고교 1학년이 쓰는 새 국어 교과서(2015 개정 교육과정)에도 '순간의 꽃'이 2개 교과서에 실려 있다.
해당 교과서들은 고은 시인에 대해 '참여 의식을 바탕으로 진솔한 삶의 내면을 드러내는 작품 세계를 보여주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다.
교과서에 실린 고은 시인의 작품 중에서는 '내려갈 때 보았네/ 올라갈 때 보지 못한/ 그 꽃' ('그 꽃' )이 가장 유명하다. 단순한 단어로 삶의 깨달음을 가장 함축적이고 압축적으로 보여준다는 평가를 받는 작품이다.
일제 강점기 속 민족의식과 공동체적 삶의 중요성을 전하는 '머슴 대길이'는 수능을 대비해 수험생들이 꼭 익혀야할 작품으로 꼽히고 있다.
'머슴 대길이'는 '나는 대길이 아저씨한테 가갸거겨 배웠지요 (중략) 일제 36년 지나간 뒤 가갸거겨 아는 놈은 나밖에 없었지요 (중략) 대길이 아저씨는 / 그는 나에게 불빛이었어요/ 자다 깨어도 그대로 켜져서 밤새우는 긴 불빛이었지요' 등으로 구성돼 있다.
고은 시인의 '선제리 아낙네들'은 2011학년도 수능 언어 영역에서 출제되기까지 했다. 작품 내용은 다음과 같다.
'먹밤중 한밤중 새터 중뜸 개들이 시끌짝하게 짖어댄다 (중략) 아쉬울 때 마늘 한 접 이고 가서/ 군산 묵은장 가서 팔고 오는 선제리 아낙네들 (중략) 못난 백성/ 못난 아낙네 끼리끼리 나누는 고생이라/ 얼마나 의좋은 한 세상이더냐 (후략)'
'선제리 아낙네들'은 선제리의 가난한 여성들의 삶을 형상화함으로서 토속적인 민중의 모습을 현실감 있게 그려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내용면에서는 고생스러운 삶 속에서도 공동체의식을 갖는 우리 민중의 모습을 애정 어린 시선으로 표현해 문학성이 인정됐다.
교육부는 교과서에서 고은 시인의 시를 삭제하는 것에 대해 조심스럽게 접근하겠다는 방침이다. 검정교과서의 경우에는 수정·보완 권한이 출판사와 집필진에 있기 때문.
교육부는 "발행사 혹은 저작자의 수정요청이 있을 경우 (수정·보완과 관련해) 내용을 검토할 예정"이라며 "검정체제 하에서 발행사와 저작자의 자율성은 존중받아야 하므로, 교과서 작품수정은 사회적 공감대 형성과 전문적인 판단에 근거해 신중하게 접근해야한다고 본다"고 입장을 밝혔다.
◆ '연극' 교과서 집필진 "이윤택·오태석 작품 빼라"…삭제 가능성↑
연극 연출가 이윤택과 오태석의 작품도 고등학교 연극교과서에서 제외될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보인다.
교육계에 따르면 두 사람의 작품은 고등학교 전문교과 일반선택 과목인 '연극' 교과서 3종에 포함된 것으로 우선 파악되고 있다.
'연기' '연극의 이해' '연극의 감상과 비평' 등 교과서다. 해당 교과서를 개발한 서울교육정보연구원에 따르면, 이윤택과 오태석의 작품이 각 교과서당 4곳씩 실려 있다.
이윤택의 '햄릿', 오태석의 '태' '로미오와 줄리엣' 등이 교과서에 포함된 작품이다. 3작품 모두 연극계에서 호평을 받는 작품으로 알려져있다.
이씨의 '햄릿'의 경우에는 한국 샤머니즘과 서구 영적 세계를 결합시키는 독특한 연출방식으로 원작을 새롭게 해석했다는 분석이다.
오씨의 '로미오와 줄리엣'은 셰익스피어 원작에 우리나라의 색, 소리, 몸짓을 더해 가장 한국적이면서도 세계적으로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으며 오씨의 대표작으로 꼽히고 있다.
단종 폐위를 배경으로 삶의 가치를 묻는 '태'는 과감한 생략과 압축 수법을 통한 무대처리와 조명사용 등으로 좋은 평가를 받은 바있다.
연극 분야 교과서 집필진은 22일 입장문을 내고 이씨와 오씨의 작품을 개정판 교과서에서 빼야한다고 밝혔다.
교육당국은 심의를 거쳐 교과서 수정을 결정할 예정이다. 다만, 집필진 모두가 작품 삭제를 요구하고 있는 만큼, 이씨와 오씨의 작품은 삭제될 가능성이 매우 높다.
서울교육정보연구원 관계자는 "교과서에 대한 수정·보완 요구를 받으면 그것을 바탕으로 심의 절차를 밟은 다음 수정할 수 있다"며 "따라서 당장은 어렵고 내년부터 (해당 작품이 삭제된 교과서 사용이) 가능할 것 같다"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수정 심의를 할 때 집필진의 의견을 적극적으로 듣는 자리를 마련하는 등 심의진도 관련 부분에 대해 깊이 있게 논의할 것"이라고 밝혔다.
[뉴스핌 Newspim] 황유미 기자 (hum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