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핌=김근희 기자] 미국 제약협회(PhRMA)가 미국 무역대표부(USTR)에 한국의 약가 제도를 문제 삼으며 최고 수준의 무역제재를 가해달라고 요청했다. 한국 정부도 반박 자료를 내는 등 즉각 대응에 나섰다. 제약업계에서는 당장 큰 영향은 없지만, 미국 판매 허가를 기다리는 업체들도 있는 만큼 당분간 상황을 주시해야 한다는 의견이 나오고 있다.
◆ 美 제약협회 "한국 약가 제도 문제"
28일 관계부처 및 업계에 따르면 미국 제약협회는 이달 8일 USTR에 이 같은 내용의 '2018년 스페셜 301조 제안서'를 제출했다.
USTR은 매년 4월 말 교역국의 지식재산권 보호 수준을 평가하는 스페셜 301조 보고서를 발표한다. 미국 기업의 지재권을 침해하는 국가를 우선협상대상국, 우선 감시대상국, 감시대상국으로 나눠 이를 제재한다.
1988년 제정된 미국 종합무역법에 의해 신설된 통상법 301조는 교역상대국에 대해 차별적인 보복이 가능하는 등 보복 조항이 강화되어 '슈퍼 301조'라고 부른다.
이번에 미국 제약협회는 USTR에 한국을 캐나다, 말레이시아 등과 함께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청했다. 한국의 차별적 약가 제도 등이 미국 제약산업의 혁신을 저해하고 한미 FTA의 합의와 어긋난다고 주장했다. 우선협상대상국이 되면 관세부과, 수입제한 조치가 이뤄진다.
이 협회는 이번에 일본 등 11개국에 대해서도 '우선 감시대상국' 지정을 요구했다.
미국 제약협회 '스페셜 301조 제안서' 일부 내용 <자료=PhRMA> |
미국 제약협회가 문제 삼은 것은 한국의 약가 제도다. 한국이 다국적 제약회사에 불리하게 약가를 책정한다는 것이다. 특히 한국에서 임상시험을 하는 등 일정 조건을 충족해야 약가의 10%를 우대해주는 정책 등을 지적했다. 또 건강보험심사평가원, 국민건강보험공단 등의 평가를 거치며 신약 가격이 낮게 책정되는 것이 부당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보건복지부를 비롯한 한국 정부는 보험체계가 다른 한국과 미국의 약값을 단순 비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반박했다. 미국과 달리 한국의 공보험 기반이기 때문이다.
보건복지부 관계자는 "미국 제약협회는 약가 정책을 문제 삼아 2009년부터 한국을 우선 감시대상국, 감시대상국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요청했다"며 "한국정부는 매번 이에 대응했고, 현재까지 단 한 번도 한국이 무역제재 대상에 오른 적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미국 제약협회가 공세 수위를 높인 만큼 USTR의 최종 보고서 결과를 지켜봐야 한다는 의견도 나온다. 미국 제약협회가 한국을 우선협상대상국으로 지정해달라고 요구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제약업계 관계자는 "미국 제약협회가 요구하는 대로 약가를 책정하려면 한국의 약가제도 틀 자체를 바꿔야 하기 때문에 문제가 복잡하다"며 "만약 USTR이 한국에 무역제재를 가할 경우 범부처적인 대응이 이뤄질 것으로 보인다"고 예상했다.
◆업계 "당장 영향 적지만 결과 지켜봐야"
제약·바이오업계에서는 이번 무역제재 요청이 당장 큰 영향을 미칠 것 같지는 않다는 의견이 대부분이다. 국내 업체들의 미국 수출 비중이 작기 때문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의 2017 제약산업 통계정보'에 따르면 지난해 미국 수출액은 1억1628만달러(약 1257억원)으로 전체 수출액의 3.7%에 불과하다. 미국의 경우 의약품 허가가 까다로운 데다가 다국적 제약사들이 시장을 선점하고 있기 때문이다.
업계 관계자는 "국내 제약사의 경우 대미 수출 비중이 작다"며 "셀트리온, 삼성바이오에피스 바이오시밀러(의약품 복제약) 업체들이 미국에 제품을 공급하고 있으나 미국 현지 업체들이 제품 판매를 맡고 있기 때문에 영향은 거의 없을 것으로 보인다"고 했다.
셀트리온과 삼성바이오에피스는 각각 다국적 제약사인 화이자와 MSD를 통해 미국에서 제품을 판매하고 있다. 단순 수출형태가 아닌 판매사들이 가격을 책정하고 파는 형식이기 때문에 영향이 적을 것이란 관측이 나온다.
다만 SK바이오팜, 녹십자, 대웅제약 등 올해 미국 식품의약국(FDA)의 판매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국내 제약·바이오 업체들이 많은 만큼 업계도 4월까지 상황을 주시한다는 입장이다.
<사진=PhRMA> |
[뉴스핌 Newspim] 김근희 기자 (keun@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