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뉴스핌 한태희 기자] 정부가 올해 예산이 많이 남았음에도 불구하고 '일자리 창출'을 명분으로 추가경정예산(추경) 편성을 시사해 논란을 자초하고 있다. 정작 예산심사와 통과의 주도권을 쥔 국회는 추경 편성보다 지방선거를 앞두고 각 정당이 지방선거에 올인하는 상황에서 정부 홀로 추경이라는 공을 들고 운동장에 나가 몸을 풀고 있는 '뜬금없는 시츄에이션'이라는 지적도 나온다.
2일 기획재정부에 따르면 정부는 올해 주요 사업비 총 274조4000억원 중 1월말 기준 23조5000억원을 집행했다. 재정 집행률은 8.6%다. 이를 뒤집으면 재정의 91.4%가 남았다는 의미다. 돈으로 따지면 올해 쓸 수 있는 돈이 250조8000억원 남았다는 얘기다.
같은 기간 올해 정부 일자리 재정은 88% 가량 남아있다. 정부가 올해 일자리 재정으로 쓰기로 한 돈은 10조7000억원이다. 이 중 1월까지 1조3000억원을 집행했다
<자료=기획재정부> |
앞으로 집행할 수 있는 돈이 많이 남았는데도 정부는 벌써 추경을 거론하고 있다. 베이비붐 세대 자녀인 에코세대 취업난을 해소하려면 특별 대책 마련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김동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은 최근 9일간 추경을 3차례나 언급했다.
주목할 부분은 김동연 부총리의 첫 추경 발언이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고 온 직후 나왔다는 점이다. 청와대와 기재부에 따르면 김동연 부총리는 지난달 22일 오전 11시 청와대에서 문재인 대통령을 만나 한국GM과 미국과의 통상마찰을 포함한 경제 현안을 보고했다.
같은 날 오후 3시 김동연 부총리는 정부세종청사 기재부 기자실을 긴급방문했다. 김동연 부총리는 1달에 한 번 기자실을 찾아 경제 현안을 설명하고 관련 질문을 받는다. 하지만 바쁜 일정을 빌미로 '한달에 한번 기자실 방문'은 거를 때가 다반사다. 그러나 김 부총리는 이날 예정에도 없던 긴급 기자실 방문을 통보하고, 청년 일자리 특단 대책 발표를 예고했다. 이와 함께 추경도 자연스럽게 언급했다. 일자리 대책 재정 마련 방안으로 추경도 배제하지 않겠다는 취지다.
김동연 부총리는 다음 날인 23일에도 같은 취지로 추경 가능성을 이어갔고, 지난달 28일 국회 법제사법위원회 참석에서도 윤상직 국회의원(자유한국당) 질의에 같은 답변을 했다.
선거운동원들이 각 후보들의 지지를 호소하고 있다 <사진=뉴시스> |
일각에선 정부가 지방선거를 앞두고 추경카드를 꺼냈다고 분석했다. 추가경정예산은 경제 흐름이 답답하거나 활력을 불어넣을 필요가 있을 때 정부가 경기부양 측면에서 꺼내드는 카드다. 특별한 사정이 없을 경우 연초에 추경을 거론하는 것은 이례적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연초인데다, 최근 국내 경제지표가 나쁘지 않는 등 대내외적으로 상황을 고려하면, 추경을 선택하기에는 이르다는 목소리가 많다. 통계청이 2일 내놓은 산업활동동향을 보면 1월 생산과 소비(소매판매), 투자 등 국내 경기 상황을 보여주는 주요 지표가 모두 상승했다. 향후 경기 흐름을 보여주는 경기 선행지수 순환변동치는 보합세에서 상승 반전했다.
정부 스스로 경기 흐름이 나쁘지 않다는 지표를 내놓고, 추경을 경제수장이 이야기하는 것은 앞뒤가 맞지않는다는 주장도 설득력을 얻는다.
서울시립대 윤창현 경영학과 교수는 "지난해 추경 집행 결과를 보고 정부가 추경을 생각해야 하는데 너무 이르다"며 "(6월) 지방선거가 있고 한국GM 문제도 있으니 정부가 추경에 대한 운을 미리 띄운 것이라고 볼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뉴스핌 Newspim] 한태희 기자 (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