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양진영 기자 =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가장 어두운 시대를 밝힐 희망의 메시지로 객석을 울린다. 우스꽝스러운 괴짜 노인 '돈 키호테'의 행동 하나, 말 한 마디가 멈춰있던 모두의 가슴을 다시 뛰게 한다.
세계적인 명작 뮤지컬 '맨오브라만차'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중이다. 홍광호, 오만석, 윤공주, 최수진, 이훈진, 김호영, 문종원, 김대종 등 스타 배우들이 모였다. 최고의 명작을 바탕으로, 이색적이기 그지 없는 형식, 완벽한 연기까지 어우러지니 그야말로 감동이 휘몰아친다. 1막 끝부터 잊을 만하면 울려 퍼지는 메인 테마곡 'The Impossible Dream'이 귓가에 들려올 때마다 가슴이 뭉클해진다.
◆ 객석을 쥐고 흔드는, 홍광호의 돈키호테·최수진의 알돈자·이훈진의 산초
뮤지컬 '맨오브라만차'는 신성모독 혐의로 지하 감옥에 갇힌 '돈키호테'의 작가 세르반테스가 이 원고의 내용을 감옥의 죄수들과 직접 연기하며 보여주는 형식을 취한다. 뮤지컬로 소설을 각색한 데일 와써맨의 놀라운 발상은 물론 그 완성도에도 감탄이 나온다. 이런 틀은 '맨오브라만차'의 배우들이 한계 없는 연기를 펼칠 수 있는 기반이 됐다. 덕분에 홍광호, 최수진, 이훈진의 능력치도 마음껏 발휘된다.
침착하고 이성적이지만 인간적인 면을 갖춘 세르반테스에서, 그가 창조한 주인공 알론조로 변신하는 홍광호는 마치 날개를 단 듯 무대 위를 누빈다. 스스로를 라만차의 기사 돈키호테라고 주장하는 알론조의 미치광이 같은 행동과 말은 끊임없이 객석을 웃게 하지만, 결국은 눈물을 쏟게도 만든다. 마치 다른 사람처럼 느껴지는 캐릭터의 전환을 자연스럽게 해내는 일도, 우스꽝스러운 분장과 말투, 액션(?)을 소화하는 일도 쉽지는 않은 일. 홍광호는 스스로 돈키호테 자체가 되어 객석을 그의 편으로 만들고, 완벽히 몰입하게 했다.
최수진이 연기하는 알돈자는 비참하기 그지없는 삶을 사는 억센 여자다. 하지만 미친 노인네로 보이는 알론조의 진심 어린 말에, 처음 느껴보는 소중한 대우에 감동하고 스스로의 가치를 깨닫는다. 최수진은 숱한 수난을 겪는 여성의 절망, 잠시 품었던 희망, 다시 나락으로 추락하는 과정의 감정을 촘촘하게 표현해 냈다. 이훈진은 '산초 그 자체'라는 찬사를 증명하는 탁월한 연기로 객석의 애정을 독차지한다. 알론조가 현실과 맞닥뜨리고 상처받을 때, 산초가 울먹이기 시작하면 객석 역시 눈물바다가 된다.
◆ 참을 수 없는 불편함 속, 모두의 상처를 어루만질 위대한 메시지
신성모독이라는 죄로 종교재판에 무고한 사람이 회부되고, 죽어나가던 때를 살았던 작가 세르반테스. 그가 '돈키호테'에서 그려낸 세상은 소위 '미친 세상'이다. 꿈, 정의, 사랑 같은 것보다 현실에 찌들어 아무렇게나 살아가는 것이 당연해진 세상, 스스로를 기사 돈키호테라 칭하고 이룰 수 없는 꿈을 향해 나아가겠다는 알론조가 손가락질을 당하는 시대, 현재의 부조리와 무엇 하나 다를 것이 없다. "꿈을 이룰 수 없어도, 나의 길을 따르겠다"는 단순하고 순진한 메시지가 큰 반향을 주는 이유가 여기 있다.
알돈자가 처한 상황과 그가 당하는 모든 일들은 아무리 수위 조절을 해도 불편함을 피할 길이 없다. 하지만 그의 운명마저도, 알론조가 현실을 깨닫고 결국 죽음에 이르는 것조차도, 너무나도 현실이다. 안주하지 않고, 꿈을 좇으라며 희망을 부르짖지만, 결국은 비극으로 가득한 '돈 키호테'. 원작이 주는 메시지가 무대와 넘버를 통해 더 강렬하게 가슴으로 전해져 올 때, 감동 그 이상의 깨달음이 찾아온다. 현실에 안주할 용기밖에 남지 않은 이들이 반드시 볼 만한, 가치있는 작품이라 할 만하다. 오는 6월3일까지 블루스퀘어 인터파크홀에서 공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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