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극 '사물함' [사진=국립극단] |
[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수족관은 밖에서 보면 평화롭다. 그러나 그 속에 어떤 일이 일어나는지 우리는 알 수 없다. 만약 수족관 속에 있던 물고기 한 마리가 사라진다면, 다른 물고기들은 공간이 넓어져서 좋아할까, 무관심할까, 혹은 '니모를 찾아서'처럼 없어진 물고기를 찾아나설까.
연극 '사물함'은 마냥 즐겁게만 보이는 청소년들의 삶 속에 들어가, 그동안 무의식 속에 자리하고 있던 청소년에 대한 고정관념과 편견을 깨부수는 작품이다. 지난해 국립극단 청소년극 창작 인큐베이팅 프로그램 '예술가청소년창작벨트'에 선정돼 낭독공연을 거쳐, 지난달 20일 개막했다.
작품은 편의점에서 최저시급도 받지 못하고 일하던 중 창고가 무너져 죽은 고등학생 다은(김윤희)과 직간접적으로 얽힌 친구들 혜민(조경람), 한결(이리), 연주(정연주), 재우(정원조)의 이야기를 담는다. 다은의 사물함에서 원인 모를 썩은 냄새가 나면서 그의 죽음에 대한 소문, 전과 달라진 학교 생활 등을 통해 청소년들이 겪고 있는 부조리한 현실을 전한다.
연극 '사물함' [사진=국립극단] |
다은은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집안의 가장으로, 다른 친구들이 학원을 다닐 때 편의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일을 하며 SNS 라이브를 하는 것이 다은의 유일한 취미였고, 방송 내용은 편의점에서 유통기한이 지난 폐기 음식을 리뷰하는 것이었다. 많아봤자 세네 명의 시청자임에도 다은은 활발하게 라이브 방송을 진행했다. 다만 가난하다는 이유로 온갖 루머에 시달렸고, 친구도 별로 없었다.
혜민의 부모는 다은이 일하던 편의점의 주인이었고, 편의점이 입주한 건물의 소유자는 한결의 할아버지였다. 혜민과 한결은 다은의 죽음이 자신들과 연관 없다고 계속해서 부정한다. 재우는 다은을 통해 몰래 담배를 사던 친구로, 다은의 죽음을 방관하는 자신들의 모습에 실망한다. 이들 사이에 다은의 유일한 친구였던 연주가 과외에 합류하면서 균열이 가기 시작한다.
학교는 작은 사회다. 부모로부터, 선생으로부터 매일 들었던 말을 사실 누구보다 학생들이 가장 많이 느꼈을 테다. 권력과 부, 성적에 의해 계층과 차별이 존재하고, 미성년이라는 이유만으로 스스로 결정도 할 수 없는 상태. 극 중 자신들을 '수족관에 갇힌 물고기'라고 칭한 것처럼, 안전한 보금자리를 제공하는 부모의 말을 거스를 수도 없고, 벗어나면 더 힘들 것을 알기에 애써 보이지 않는 척, 들리지 않는 척 불안한 생활을 이어나간다.
연극 '사물함' [사진=국립극단] |
친구가 죽었음에도, 슬퍼하거나 애도하는 모습은 찾아볼 수 없다. 다른 사람들의 수군거림에 자신이 오르내리지 않길 바랄 뿐이다. 여전히 가장 큰 고민은 성적이고, 누가 몇 문제를 더 맞췄는지 중요하다. 다은의 사물함에서 이상한 썩은 냄새가 나고, 온갖 추측을 하며 궁금해하지만 열어보지 못하는 이유. "모른다는 것만큼 좋은 핑계가 있어?"라고 반문하는 연주의 말대로, 이들은 직면한 문제에서 그저 벗어나고 싶을 뿐이다.
친구의 죽음으로 불안해하는 인물들의 감정은 극의 처음부터 끝까지 끌고가는 가장 주된 요소다. 여기에 사다리꼴도 사각형도 아닌 비대칭의 독특한 무대는 불안정하고 불완정한 시기의 청소년과 극의 전반적인 감정을 더욱 높이는 역할을 한다. 다만 무대의 3면을 쓰면서, 목소리가 잘 들리지 않거나 등만 보고 있어야 하는 장면이 있는 등 불친절한 부분은 조금 아쉽다.
극 중 연주는 자신이 과외에 합류하게 된 이유로 "너네라면 다은이 얘기를 안 할 것 같았다"고 말한다. 그러나 이후 "다은이가 죽은 후 너무 조용해서 왔다. 너희들 중 누구 한 명이 죽었어도 이랬을까"라고 고백한다. 가까이 들여다보니 차갑고 아프기만한 아이들의 사회, 결국 돌아봐야 할 것은 어른들이다. 연극 '사물함'은 오는 6일까지 국립극단 소극장 판에서 공연된다.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