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욕=뉴스핌] 황숙혜 특파원 =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24일(현지시각)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만남을 전격 취소한 데 대해 주요 외신들은 회담이 취소됐지만 두 인물의 ‘치킨 게임’이 종료된 것은 아니라는 의견을 내놓았다.
뿐만 아니라 북미 관계가 지난해보다 더욱 위험한 상황에 빠졌다는 지적이다. 외신들은 논평을 통해 일촉즉발의 전시 상황이 재점화될 가능성을 집중 부각시켰다.
트럼프 미국 대통령(좌)과 김정은 북한 조선노동당 국무위원장(우) [사진=로이터 뉴스핌] |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은 표면적으로 워싱턴 매파의 승리로 비쳐진다. 김 위원장에게 자발적으로 비핵화를 추진할 의사가 없다고 믿는 존 볼턴 국가안보보좌관을 포함해 강경론자들에게 힘이 실리는 결과가 초래됐다는 것.
보다 큰 틀에서 볼 때 트럼프 대통령의 지극히 충동적인 회담 수용이 결과적으로 실패로 돌아갔고, 이로 인해 그의 외교적 역량의 한계가 드러난 동시에 북미 마찰의 여지가 한층 고조됐다는 주장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짧게는 수일부터 길게는 수 개월까지 앞으로 김 위원장의 대응에 조명이 집중된 가운데 성급하게 회담을 추진했던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적으로 ‘성급한’ 행위를 취할 가능성이 열려 있다고 외신들은 판단했다.
우선 미국과 북한 사이에 정상회담이나 그 밖에 고위급 회담이 재개되는 일은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는 외신들의 공통된 의견이다.
트럼프 대통령이 이날 김 위원장 앞으로 작성한 서한에서 ‘언젠가 만나게 되기를 기대한다’고 밝혔지만 강경한 목소리를 내지 않은 사실이 다행스러울 뿐 크게 의미를 둘 만한 발언은 아니라는 것.
아울러 북미 정상회담의 전제로 제시했던 일괄적인 핵 폐기보다 낮은 수위의 협상에 나섰다가는 트럼프 대통령이 국내외에서 정치적으로 커다란 리스크를 떠안게 될 것이라는 의견에 힘이 실리고 있다.
문제는 사실상 시계제로의 상황에 빠져든 북미 관계의 향후 전개 양상이다. 이날 워싱턴 포스트(WP)는 칼럼을 통해 트럼프 대통령이 ‘전쟁 드럼’을 두드리기 시작할 것이라는 데 의심의 여지가 없다고 주장했다.
실제로 트럼프 대통령은 회담 취소 후 백악관에서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북한이 어리석은 행위를 할 경우 군사력을 동원할 준비가 돼 있다”고 강조했다.
회담 취소를 골자로 한 서한에서도 그는 미국의 핵 보유력이 사용되는 일이 없기를 신께 기도해야 할 만큼 막강하다고 밝혔다.
뉴욕타임즈(NYT) 역시 같은 목소리를 냈다. 회담 불발을 계기로 대북 경제 제재가 성공을 거둘 여지가 크게 낮아졌고, 이 때문에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 옵션을 꺼내 들 가능성이 열려 있다는 주장이다.
북한이 핵은 물론이고 화학 무기와 생화학 무기로 서울과 도쿄, 로스앤젤레스를 공격할 수 있는 군사력을 갖춘 상황에 무력 행사는 과거 어느 때보다 참담한 결과를 초래할 것이라고 신문은 강조했다.
또 미 국방부가 이 같은 문제에 대한 트럼프 대통령의 인식 부족을 크게 우려하는 것으로 보인다고 전했다.
외신들은 북한이 트럼프 대통령의 결정에 대해 침착하게 대응했으면 하는 것이 국제 사회의 바람이지만 지난해와 같은 미사일 도발과 핵 실험을 재개, 지정학적 리스크를 고조시킬 가능을 배제할 수 없다고 보도했다.
회담은 취소됐지만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의 ‘치킨 게임’이 끝난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예측하기 어려운 두 인물이 운전대를 잡은 차량에 국제 사회가 몸을 맡긴 형국이라고 외신들은 논평했다.
지난 수 개월간 양측의 밀월 관계를 뒤로하고 다시 최악의 시나리오를 경계해야 하는 상황을 맞았다는 진단이다.
[뉴스핌 Newspim] 황숙혜 뉴욕 특파원 higrace@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