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황유미 기자=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 조사결과, 사실상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결론이 나왔다. 하지만 법원행정처가 숙원 사업인 상고법원 도입 추진을 놓고 청와대와 협상을 시도한 정황이 포함된 문건이 확인되면서 논란이 일 것으로 보인다.
서울 서초구 대법원. [뉴스핌 DB] |
사법권 남용 의혹 관련 특별조사단(단장 안철상 법원행정처장)은 지난 25일 이 같은 내용이 포함된 192쪽 분량의 조사보고서를 김명수 대법원장에게 보고하고 언론에 공개했다.
조사단은 보고서를 통해 판사 성향 등을 분석한 문건은 존재했으나 이를 활용해 인사상 불이익을 주는 등 실행에 옮긴 사례는 확인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비판적 법관들에 대한 불이익 명단인 이른바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없었다는 것이다.
조사단은 "사법행정에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한 성향, 동향, 재산관계 등을 파악한 내용의 파일들이 존재했음은 확인했다"면서 "다만 비판적인 법관들에 대해 리스트를 작성해 조직적, 체계적으로 인사상의 불이익을 부과했음을 인정할 만한 자료는 발견할 수 없었다"고 밝혔다.
이어 "그러나 재판과 관련해 특정 법관들에게 불이익을 줄 것인지 여부를 검토한 것이나 특정 법관들에 대한 성향 등을 파악했다는 점만으로도 재판의 독립, 법관의 독립이라는 가치를 훼손하려는 것으로서 크게 비난받을 행위"라고 지적했다.
또한 조사단은 전임 양승태 대법원장 시절 숙원사업이자 입법 과제였던 상고법원 도입을 위해 박근혜 정부와 협상 전략을 모색하는 문건이 임종현 전 차장 등 법원행정처 관계자들의 컴퓨터에서 발견됐다고 밝혔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 보고서가 대표적이다. 보고서에는 상고법원 입법을 위해 박근혜 정부가 관심을 갖는 판결을 조사하고 판결 방향을 연구한 정황이 포함됐다.
'성완종 리스트 사건 재판 영향분석 및 대응방향', 전교조 법외노조 통보처분 효력 집행정치 관련 검토' 등 문건도 당시 정부가 관심을 보이는 재판을 통해 청와대와의 관계에서 유리한 위치를 선점하겠다는 구상과 관련된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단은 이를 사법행정권을 남용한 사례라고 비판했다.
'상고법원의 성공적 입법추진을 위한 BH와의 효과적 협상추진 전략'이라는 문건에는 상고법원 입법이 좌절될 경우 청와대와 원만한 유대관계를 유지할 명분이 없다는 점을 명확히 고지한다는 내용도 담겼다. 입법·사법·행정의 삼권분립이 심각하게 의심받을 수 있는 대목이다.
법원행정처가 일선 법원 재판에 개입하려한 정황도 드러났다.
법원행정처는 원세훈 전 국정원장의 항소심 판결을 분석한 보고서를 상고심을 담당한 대법원 연구관에게 건넨 것으로 파악됐다. 조사단은 이 보고서가 상고심에 영향을 줬다고 보기는 어렵지만 행정처의 시각이 재판부에 전달됐을 가능성을 언급하며 부적절했다고 지적했다.
조사단은 또 법원행정처가 긴급조치 피해자들의 손해배상 청구를 받아들인 판사들의 징계를 추진하려 한 정황도 확인했다.
이 같은 사태가 발생한 원인으로 조사단은 사법부의 관료화와 무리한 상고법원 추진 등을 꼽았다. 법원행정처에서 4년 7개월 동안 근무한 임종헌 차장을 예로 들며 행정처 고위 간부가 장기간 근무하는 관행도 문제로 지적했다.
이에 사법 관료화 방지책과 사법 담당자가 준수해야할 기준 마련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재판의 독립성이 침해될 경우 시정할 장치 마련 필요성도 강조했다.
다만, 조사단은 이번 의혹 관련자들에 대해서는 형사상 조치는 취하지 않기로 했다고 밝혔다. 조사단은 "직권남용죄 여부는 논란이 있고 그 밖에 범죄 혐의는 인정되지 않는 것으로 판단했다"며 "행위자별로 징계권자나 인사권자에게 내용을 전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사법부 블랙리스트 의혹은 지난해 초 법원행정처가 판사들의 성향을 정리한 파일을 관리 중이라는 얘기가 나오면서 의혹이 불거졌다.
지난해 4월 마무리된 1차 조사와 김명수 대법원장 취임 직후 시작된 2차 조사 모두 사법부 블랙리스트는 실체가 없다는 결론을 내렸다.
이에 1·2차 조사가 미진했다는 지적이 일었고 지난 2월 특별조사단을 꾸려져 관련 의혹을 다시 조사하는 데 이르렀다.
이 과정에서 특별조사단은 임종헌 전 차장과 이규진 전 양형위원회 위원, 기조실 심의관 2명 등 법원행정처 관게자 4명의 컴퓨터에서 나온 파일을 검증했다. 이를 통해 법원행정처가 법관 동향을 살폈다는 의혹과 관련 있음직한 파일 406개와 일선 법원에 재판에 개입한 정황이 담긴 문서가 발견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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