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황수정 기자 = 배우 주종혁(36)이 연극 '컨설턴트'를 통해 관객과 만나고 있다. 누군가는 가수로 먼저 무대 위 모습을 만났겠지만, 이제는 어엿한 배우으로서 극을 이끌어가고 있다. 지난 24일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만난 주종혁은 차분하고 진중하면서도 그 속에 열정은 가득했다.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배우 주종혁이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5.24 yooksa@newspim.com |
연극 '컨설턴트'(연출 문삼화)는 무명작가 'J'가 의뢰를 받고 쓴 시나리오대로 누군가 실제 죽음에 이르게 되고, 의문의 남자 'M'의 권유로 '회사'라는 거대 조직에 합류하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는다. 지난달 개막해 벌써 많은 관객들과 만났고, 호평 속에 순항중이다.
"연습 때부터 지금까지 세차게 달려와서 시간 가는 줄도 모르겠어요. 숨가쁘게 재밌어요.(웃음) 배우들 모두 처음엔 당황하고 다 내려놨다가, 스스로 무언가를 재건하고 있더라고요. 그런 쌓는 재미를 통해 희망도 생기고, 최근에 공연이 더 재밌어졌어요. 컴퓨터를 잘 안하고 폰도 기사나 날씨, 은행 업무 정도만 해서 관객 반응은 잘 모르겠어요. 팬분들은 좋아하시는 것 같아요."
작품은 임성순 작가의 제6회 세계문학상 대상 수상작인 동명소설을 연극화했다. 주종혁은 연극을 만나기 전 이미 원작을 접했다고. 그는 "연극으로 각색되면서 메시지가 좀 더 명확해졌다"고 설명했다.
"원래 책 읽은 걸 좋아하는데 작품을 선택할 그 즈음에는 책을 좀 놓고 있었죠.(웃음) 그런데 '컨설턴트'를 집게 되면서 단숨에 다 읽었어요. 소재 자체가 굉장히 신박했고, 임성순 작가님의 필체도 재미있고 흥미로웠어요. 원작 때문에 작품을 해야겠다고 결심한 거죠. 처음 대본은 지금과는 조금 달라요. 사실 강승호 배우와 저만 첫 대본을 재밌어했어요.(웃음) 책을 읽고 만족스러원던 부분이 구조와 합리화에 대한 내용인데, 지금 대본에서 이게 명확하게 드러나요. 첫 대본도 매력있었지만 지금도 좋아요."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배우 주종혁이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5.24 yooksa@newspim.com |
주종혁이 맡은 캐릭터는 무명작가 'J'다. 극중 'J'는 누군가의 죽음을 설계하는 일종의 '살인 컨설턴트'다. 처음에는 지질한 무명작가였다가 진실을 알고 당황하지만 곧 돈, 명예, 여자 등 자본의 힘에 무릎 꿇고 괴물이 되어가는 인물이다.
"연출, 작가님들과 캐릭터에 대해 이야기를 많이 해요. 하지만 텍스트에서 드라마로 따라갈 때 캐릭터를 구현해내는데 부족함이 있고, 제대로 구현하지 못하면 관객들의 공감이 반감될 수 있잖아요. 연습 말미에 연출님께서 제가 원하는 대로 해보라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제가 느끼는 대로 하려고 했어요. 제 안의 너무 작은 부분을 차지하는 캐릭터라 한계도 있지만, 그래도 최대한 공통 분모를 끄집어내서 극대화하려고 노력했어요. 그래야 관객들이 공감되고 저도 공허하지 않으니까요.(웃음)"
극중 'J'는 펜 하나로 다른 사람의 생을 좌지우지 한다. 현대사회에서 우리는 'J'만큼은 아니지만 다른 사람의 삶에 영향을 끼치고 있다. 주종혁은 "다른 사람 인생에 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라면서도 "울타리는 키우려 노력한다"고 밝혔다.
"가끔 정의감 때문에 주변에 억울한 일 당하는 걸보면 저도 일종의 '컨설팅'을 해보고 싶긴 하죠.(웃음) 하지만 전 누구 인생에 크게 관여하지 않는 스타일이에요. 장단점이 있는 거지 정답이 없다는 걸 빨리 안 편이거든요. 다른 사람의 선택을 이해하고 인정해줘야 한다는 주의에요. 배우를 하면서 많은 사람에게 공감을 주려면 이해할 수 있는 울타리가 커야 한다고 생각해요. 그런 면에서는 더 나은 배우가 됐다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하지 말아야 하는게 많았거든요.(웃음)"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배우 주종혁이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5.24 yooksa@newspim.com |
'J'의 모습은 책임 회피를 위한 자기 합리화의 전형이다. 직접 살인하지 않고 그저 시나리오만 써주기 때문에 죄책감을 더는가 하면, 보상에 대해 만족하며 더욱 열심히 일하기도 한다. 주종혁은 "정답이 없으니까 사람들은 다 합리화를 할 수밖에 없다"고 말한다.
"저 스스로 비겁하지 않게 살려고 노력했다고 생각했는데 그 자체도 비겁한 거였어요. 비겁하지 않으려고 한 선택들 모두 제 합리화였던 거죠. 남들이 봤을 때 멋이든, 비굴이든 자기 고집을 꺾지 않는 것도 합리화하는 거라고 볼 수 있어요. 저는 더 올라설 기회들이 있었지만 쉬운 길을 안 가고 싶었던 고집 때문에 제발로 찼던 적이 많아요.(웃음) 어려운 길인 줄 알지만 좋고 옳다고 생각하면 그 길을 가야 미래에 도움이 된다고 생각하는 거죠. 지금도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일인데, 이것도 고집이라고 볼 수 있죠.(웃음)"
그의 이런 성향은 부모님의 영향이 크다. 미래를 철저하게 대비하는 아버지와 현실에 충실한 어머니의 아래 주종혁 삶의 가치관이 만들어졌다. 욜로(YOLO)로도 살아봤지만 그것도 한때. 주종혁은 덕분에 장점도 있다고 했다.
"아버지는 미래를 항상 대비하는 스타일이에요. 철두철미하고 위기관리 능력이 뛰어나시죠. 어머니께서도 미래를 준비하시지만 현실에도 충실하세요. 두 분의 영향을 받은 거죠. 군 제대하고 1년은 욜로로 지냈어요. 무언가를 위해 달리다보면 알맹이가 소진되는 경우가 많잖아요. 그럴 때면 여행을 가기도 하죠. 하지만 정말 중대한 결정을 할 때는 아버지의 영향을 많이 받는 것 같아요. 이런 성향이 인생을 바다에 비유했을 때 큰 파도를 만나지 않는다는 장점은 있는 것 같아요.(웃음)"
[서울=뉴스핌] 김학선 기자 = 배우 주종혁이 24일 오후 서울 대학로의 한 카페에서 진행한 뉴스핌과의 인터뷰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다. 2018.05.24 yooksa@newspim.com |
사실 주종혁은 그룹 '파란'으로 먼저 연예계에 데뷔했다. 조용하고 공부하는 집안에서 스스로를 '별종'이라고 말하는 그는 무대가 주는 즐거움을 포기할 수 없다고. 그에게 무대는 '마약' 같은 존재다.
"원래 대학교도 연출 전공이었어요. 좋은 배우들을 많이 만나면서 제가 작아보이고, 아는 게 많아지면서 겁이 생기더라고요. 최대한 더 저를 채워야겠다는 생각을 했어요. 가장 많은 걸 느낄 수 있는 곳이 무대라고 생각해서 택했어요. 힘들고 두렵지만 재밌어요. 술, 담배를 안 하는데 유일하게 중독된 게 무대에요. 마약 같은 거죠. 공연을 하면서 항상 고민도 많고 스트레스도 받지만, 그 어려운 걸 해냈을 때의 성취감만큼은 비견할 수 없어요.(웃음)"
현재 그는 무대만이 줄 수 있는 카타르시스를 '컨설턴트'를 통해 느끼고 있단다. 자신있게 작품에 대해 "재밌다"고 말하는 그. 무대에 대한 열정은 끝나지 않을 듯하다. 앞으로도 더 많은 작품, 무대 위에서 열연하는 모습을 볼 수 있길 바란다. 연극 '컨설턴트'는 오는 7월1일까지 대학로 TOM 2관에서 공연한다.
"무대는 평생 할 거에요. 안 불러주면 만들어서라도 해야죠.(웃음) 배우라면 어쨌든 제 안의 여러가지를 끄집어내야 하고, 그러려면 다양한 것들이 내제돼 있어야 하죠. 어떤 장르를 불문하고 다양한 시도를 할 거에요. 오디션도 보고 싶고요. 최근에 들어서 '컨설턴트'가 더 재밌어졌어요. 제 공연 회차가 이제 반밖에 안 남았으니 빨리 오셔야 해요.(웃음)"
hsj1211@newspim.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