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장주연 기자 = 좋은 의미로든, 나쁜 의미로든 화려한 데뷔였다. 첫 작품으로 칸 레드카펫을 밟았고, 그 레드카펫을 밟기 위해 출국하던 날 태도 논란으로 대중의 뭇매를 맞았다. 영화 ‘버닝’의 해미, 배우 전종서(24) 이야기다.
전종서의 데뷔작 ‘버닝’은 유통회사 알바생 종수(유아인)가 어릴 적 동네 친구 해미를 만나고, 그녀에게 정체불명의 남자 벤(스티븐 연)을 소개받으면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담았다. 이창동 감독이 8년 만에 내놓은 신작으로 지난 19일 폐막한 제71회 칸국제영화제 경쟁부문에 초청돼 화제를 모았다.
‘버닝’의 열기가 조금은 가신 31일 서울 종로구 삼청동에서 전종서를 만났다. 마주한 그는 예상 외로 침착했으며, 생각보다 더 단단했다.
[사진=CGV아트하우스] |
“데뷔 전까지 베일에 싸여있던 건 일종의 마케팅이었던 거 같아요. 저에 대한 자료가 없는 것도 사실이었고요. 이렇게 공개되고 나서 관객들을 포함해서 이분 저분들을 만나고 영화에 관해 이야기하고 인터뷰하는 지금은 뭔가 얻어지는 게 많은 시기죠. 저를 알리고 있는 듯하지만, 저를 더 알아가는 과정 같아요. 또 개인적으로는 나에게, 이 시대에 꼭 필요한 영화를 만나서 좋고요.”
그에게 직접 들은 ‘전종서’ 관련 정보를 풀어보자면 이렇다. 1994년생으로 현재 세종대 연극영화과에 재학중이다. 예나 지금이나 착실한 학생은 아니었다. 연기에 대한 뻔한 이론이 싫었고, 남들 흉내에만 그치는 연기가 싫었다. 그래서 직접 연기 선생님을 찾아다녔다. 선생님을 만난 후에는 2년 동안 소속사를 찾아다녔다.
“이론 수업은 왜 들어야 하는지 모르겠더라고요. 반면 동기들과 함께 무대를 만드는 건 재밌었어요. 하지만 그건 학점 인정이 안됐죠. 그래서 밖으로 나와 연기 선생님을 찾아다녔어요. 그리고 ‘연기는 가르쳐주는 게 아니다. 너를 알아야 한다. 계속 탐색하고 고민하라’고 말해주는 선생님을 어렵게 만났죠. 덕분에 내가 어떤 사람이고, 내 안에 어떤 모습이 있는지 알게 됐고요. 소속사는 미팅을 정말 많이 했어요. 웬만한 우리나라 소속사는 다 했죠. 근데 항상 그들은 ‘갑’이고 전 ‘을’도 아닌 ‘정’이더라고요. 함께 같은 곳을 향해 걸어가는 게 아니었죠. 절 마음대로 단정 짓고는 찍어내서 가공시키려고 했어요. 마치 마켓 과자처럼요. 누구도 절 있는 그대로 봐주지 않았죠. 이러다 제가 무너질 듯해서 다시 학원으로 돌아가려고 했을 때 저 자체로 존중해주는 지금의 소속사를 만났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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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렇게 현 소속사 마이컴퍼니와 전속 계약을 체결한 전종서는 3일 후 ‘버닝’ 오디션을 봤다. 오디션은 6~7번에 걸쳐 진행됐다. 첫 번째를 제외하고는 모두 대화 형식이었다. 일각에 알려진 것처럼 어떤 영화인지, 누구의 영화인지 모르고 오디션에 임한 건 아니다.
“이창동 감독님은 물론, ‘버닝’에 대한 기본 정보는 있었어요. 다만 이창동 감독님이 어떤 분이신지, 그 영향력이 어느 정도인지를 몰랐다는 거죠. 직접 겪은 감독님은 되게 부드러운 분이셨어요. 신인 배우가 아닌 한 사람으로서 저를 받아들여 주셨어요. 굳이 어떤 대화를 나누지 않아도 옆에서 보고 느낄 수 있는 게 너무 많았어요. 사소한 거에도 관심이 있고 사람에 애정이 있으신 분이었죠. 배우들도 마찬가지였어요. 덕분에 낯선 현장에서 어려울 수 있었던 것들이 어렵지 않았죠. 거기서 느낀 고마움은 간과하고 싶지 않아요. 반드시 갚아나갈 기회가 있을 거라 믿어요.”
첫 현장은 낯설었지만, 연기는 크게 어렵지 않았다. 이 또한 이창동 감독과 동료 배우들의 도움이 컸다. 하지만 그보다 더 큰 이유는 전반적으로 시나리오 자체에 공감했기 때문이다. “실제 우리의 삶, 제 사람의 일부와 닮아있었다”는 게 전종서의 설명이다.
“전 해미의 모든 행동이 결핍에 의한 거라고 생각하죠. 저도 결핍 때문에 많이 방황했거든요. 거리에 있는 사람에게 기댄 적도 있고 해미가 춤을 추듯 그렇게 자유를 표현하기도 했죠. 돈이 없으면서 돈을 쓰기도 했고요. 그런 면에서 혜미를 많이 이해했고, 나중에는 사회 구성원으로서, 청춘으로서, 배우로서 내가 가질 수 있는 영향력은 뭐고, 어떤 곳을 지향해야 할까 고민도 많이 하게 됐죠. 또 내가 사는 곳, 시대가 어떤 색깔인지 생각하게 됐고요. 안타까운 건 나이였죠. 제가 조금 더 연륜이 쌓이면 더 많은 걸 읽을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마치 생텍쥐페리의 ‘어린 왕자’처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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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종서가 처음 공식 석상에 오른 게 지난 4월24일 진행된 ‘버닝’ 제작보고회니 정식 데뷔를 한 지 이제 겨우 한 달. 하지만 앞서 언급했듯 전종서는 짧은 시간 너무 많은 사람의 입에 오르내렸다. 모두 우호적인 시선이었다면 좋았겠지만, 그중에는 질타와 비난도 많았다.
“다양한 것들이 있었죠. 근데 좋은 말과 시선, 혹은 좋지 않은 말과 시선이 과연 저를 향하는 걸까 싶어요. 많은 사람이 영화처럼 분노를 표출할 곳과 사랑을 표현할 대상이 필요한 게 아닌가 하죠. 전 하루에도 여러 번 현실이 가짜 같다는 생각이 들어요. 지금 쏟아지는 관심도 모르겠고, 그걸 그대로 수용하고 싶지도 않죠. 그게 제가 연기를 사랑하는 이유 중 하나는 아니니까요. 칸에 간 것도 마찬가지죠. 전 그 자리가 제자리가 아닌 걸 스스로 너무 잘 알아요. 그냥 구성원으로 따라간 거죠. 기뻤던 건 작업이 끝나고 못만날 줄 알았던 좋은 분들과 함께 또 어딘가를 향했다는 정도예요.”
신인 배우에게는 빠질 수 없는 ‘앞으로의 전종서’에 대한 질문을 마지막으로 던졌다. 그는 그저 묵묵히 걸어가고 싶다고 했다. 언제 어떻게 변할지는 모르겠지만, 지금처럼 자신을 잃지 않고 싶다고, 다만 흐르는 시간이, 그리고 세월이 자신을 조금 더 유연하게 만들어줬으면 좋겠다고 했다.
“백지에 이제 선 하나 그린 거잖아요. 그게 어떤 그림, 이미지가 될지는 그 수많은 선이 레이어드 돼야 알 수 있는 거죠. 그래서 당장의 어떤 것에 집착하고 싶지 않아요. 물론 다른 사람들이 보기에는 지금 당장 보이는 모습, 들리는 말이 전부라고 판단될 수 있지만, 그래도 전 더 멀고 넓고 깊은 곳을 보고 싶죠. 또 시간을 두고 여러 경험을 하다 보면 유연성도 생기고 균형도 찾을 수 있을 거라 생각해요. 그러니까 지금은 서툴면 서툰 대로 저를 두고 싶죠. 저를 잃고 싶지도 않고 꼭두각시처럼 바비 인형처럼 존재하고 싶진 않아요. 그래도 제가 괜찮은 인간이라면, 건강하게 산다면, 상대를 진정성 있게 대하고 진심으로 사랑한다면 큰일이 일어나진 않을 거라 믿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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