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뉴스핌] 김근희 기자 = 제약·바이오 업계가 다음 달부터 시행되는 '주 52시간 근무제'를 앞두고 골머리를 앓고 있다. 영업사원들의 저녁 접대, 주말 학회에 대한 정부의 가이드라인이 명확하지 않은 데다 연구·개발(R&D)의 특성상 일이 연속적으로 계속되기 때문이다.
14일 업계에 따르면 유한양행, GC녹십자, 대웅제약, 종근당 등 대형 제약사는 오는 7월부터 주당 법정 근로시간을 52시간(법정 근로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해야 한다.
◆ 영업직, 저녁·주말 접대 多…"가이드라인 명확지 않아"
<사진=게티이미지뱅크> |
근로기준법 개정안에 따르면 오는 7월부터 300인 이상 기업은 주 52시간이 적용된다. 50~299인 기업은 2020년 1월1일, 5~49인 기업은 2021년 7월1일부터 이를 시행해야 한다.
당장 다음 달부터 주 52시간이 시작되지만, 주요 제약 업체들은 아직 관련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영업사원들의 저녁 접대와 주말 학회 활동을 근무시간으로 봐야 하는지 알 수 없기 때문이다.
제약사 영업사원들의 경우 업무 특성상 외근과 저녁 접대가 많다. 특히 주말에는 각종 학회 등을 열기 때문에 이를 모두 근무시간으로 인정할 경우 주 52시간이 훌쩍 넘는다.
A 제약사 관계자는 "영업사원들의 근무 시간을 어디까지 인정해줘야 할 지 아직 정하지 못했다"며 "주 52시간 초기에는 시행착오를 겪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지난 12일 고용노동부가 관련 가이드라인을 내놓기는 했지만, 이 또한 명확하지 않다는 지적이 나온다. 노동부는 가이드라인을 통해 업무상 지인과의 식사, 주말 골프 등 거래처 접대는 사용자 지시나 승인이 없으면 근로시간이 아니라고 명시했다.
B 제약사 관계자는 "노동부에서 가이드라인이 나왔지만 이마저도 불명확하다"며 "저녁 접대 때 법인카드 사용 등에 제한이 생길 것"이라고 말했다.
이로 인해 일각에서는 주 52시간 근무제로 인해 영업 마케팅이 위축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 주 52시간, R&D엔 직격탄
가장 큰 문제는 주 52시간이 신약 개발과 생산에도 영향을 미친다는 것이다.
영업사원과 생산직의 경우 가이드라인만 명확해지면 탄력근무제, 출퇴근 조정, 대체 휴가 등의 제도를 사용할 수 있지만, R&D 인력의 경우 이마저도 어렵다는 것이 업계의 의견이다.
특히 R&D 인력이 많은 바이오 기업들은 고심하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에 따르면 2016년 기준으로 근로자 300명 이상 바이오 기업은 전체의 약 12.9%다. 이들은 당장 7월에 주 52시간 근무제를 도입해야 한다.
이승규 한국바이오협회 부회장은 "주 52시간 시행을 앞두고 바이오 기업들의 걱정이 많다"며 "R&D의 경우 일의 맺고 끊음이 정확히 나뉘지 않고, 세포 분리, 정제 과정을 옆에서 지켜봐야 한다"고 설명했다.
한국바이오협회의 조사 결과 R&D 업무는 경우 몇 달 간의 프로젝트 단위로 진행되고, 이마저도 고정적이지 않다. 이 때문에 근무일과 근무 시간을 사전에 예측할 수도 없어 탄력적 근무제를 도입하기도 어렵다.
셀트리온, 메디톡스 등 주요 바이오 업체들은 R&D 인력을 추가로 채용하고 있지만, 작은 바이오 벤처들의 경우 인력을 추가 채용하기도 쉽지 않다.
업계 관계자는 "R&D 인력은 박사급의 고급 인력이기 때문에 추가로 채용하는 데도 한계가 있다"며 "추가 채용은 결국 인건비 상승과 실적 저하 문제로 이어져 기업 입장에서도 부담"이라고 지적했다.
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신종플루 등 전염병이 유행할 경우에도 문제가 생길 수 있다. 전염병이 돌 경우 빠르게 치료제를 개발하고, 생산해야 하는데 주 52시간의 덫에 걸릴 수 있기 때문이다.
한국제약바이오협회 관계자는 "기업들 모두 주 52시간 근무제를 수용하려고 하지만 현실적으로 어려운 측면이 있다"며 "R&D의 경우 무조건 주 52시간을 맞추기는 힘들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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